Opinion :리셋 코리아

수학은 창조적 혁신 끌어낼 강력한 도구

중앙일보

입력 2022.07.13 00:28

지면보기

종합 29면

금종해 고등과학원 교수, 대한수학회장

금종해 고등과학원 교수, 대한수학회장

대한수학회는 2년 전 숙원이던 과제 2개를 추진하기로 했다. 첫째는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 추진이고, 둘째는 한국 수학의 국제수학연맹(IMU) 등급을 최고로 상향하는 것이었다. 올해 둘 다 성공했다.

대한수학회는 1년여 준비 끝에 지난해 11월 국제수학연맹에 한국 수학 국가 등급을 4그룹에서 최고 등급인 5그룹으로 승격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에는 세계수학자대회(ICM) 한국 수학자 초청 강연 실적 등 국제적인 한국 수학자들의 연구 활동을 요약하고, 한국 수학자들의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 실적, 국내 대학들의 수학 연구·교육 활동 등 한국 수학 연구의 총체적 역량을 기술하였다. 국제수학연맹 집행위원회는 만장일치로 한국 수학을 5그룹으로 승격 추천하며 회원 투표에 부쳤다. 그 결과 한국 수학은 지난 2월 5그룹 승급이 확정되었다. 일본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세계 수학계의 변방에 머물던 한국 수학의 최고 등급 승격은 한국 기초과학 발전사에서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빠른 추격자 전략’ 성공 이뤘으나
이젠 혁신 지원 소프트 파워 절실
5대 강국 위해 수학 역량 키워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런데 지난 5일 더 큰 경사가 있었다.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이다. 대한수학회는 내부 논의를 거쳐 지난해 2021년 2월 허 교수를 필즈상 수상 후보자로 국제수학연맹에 추천했었다. 허 교수는 한국에서 성장하면서 중·고교 교육에 적응을 잘하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과 대학원 교육은 제 기능을 했다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천재성이 매몰되거나 사라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우회하기는 했어도 재능이 발현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도와주었다는 점에서 한국 대학과 대학원 교육이 정상 가동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또 일리노이대 박사과정으로 진학 후 1년 만에 쓴 논문은 박사과정생 허 교수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는데, 그 논문의 핵심 방법과 아이디어는 국내 대학 석사과정 시절 터득한 것이다.

허 교수의 성장 과정은 한국의 중·고교 교육의 문제점을 반성할 계기가 되었다. 한국 교육은 배우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데,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들여야 한다. 시험 잘 치는 훈련, 반복적 문제 풀이, 실수 안 하기 훈련은 많이 받으면 성적은 오를지 모르나 학생의 학습 능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되며, 사고의 확장성을 저해하는 최악의 학습법이다. 새로운 내용을 배우면 그와 연관된 내용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이 일어나도록 해야지, 지금 배운 내용으로 시험 잘 쳐야겠다는 생각에 갇히면 사고를 확장할 기회가 없어진다.

과거보다 수학·과학의 교과 내용이 대폭 삭감되었어도 사교육은 줄지 않고 있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늘고 있다. 대학 이공계 진학자들의 수학·과학 기본 소양 부족으로 이공계 교육이 위기에 다다른 지 오래다. 시험 잘 보는 훈련을 받는 대신 그 시간에 새로운 내용을 배우게 할 수 없을까?

기술패권 전쟁과 지역 국지전, 기후위기 등 복잡한 세계정세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담보할 전략을 세워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화학공학, 전자공학,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로 이어지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공학을 위주로 한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루었다. 이제 세계 5대 강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준비할 때다. 향후 100년의 세계 경제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수소 경제, 바이오 등 신산업에 기반을 둔, 혁신을 지원하는 소프트 파워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소프트 파워를 통한 혁신의 근간에는 수학이 있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할 한국 수학계의 역량은 충분하다. 한국의 국제수학연맹 최고 등급 상향과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이를 뒷받침한다. 국제수학연맹 5등급 국가 상향은 대한민국 수학의 연구 수준이 세계 정상급임을 공인받은 것이고,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한국의 수학 인력 양성 체계가 세계적 인재를 길러내기에 충분할 만큼 잘 구성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수학의 사회적·산업적 기여와 역할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시점이다.

세계 선진국들은 수학을 현재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처하고 창조적 혁신을 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인식하고 있으며, 전방위적으로 수학적 역량을 키우기 위하여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금종해 고등과학원 교수, 대한수학회장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