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통령 호화관저 쳐들어가 목욕한다…스리랑카 분풀이 점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 있는 대통령 관저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전날 스리랑카 시위대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대통령 관저를 장악했다. [EPA=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 있는 대통령 관저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전날 스리랑카 시위대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대통령 관저를 장악했다. [EPA=연합뉴스]

경제난에 분노한 스리랑카 시민들의 시위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이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시민들은 대통령 관저 침대에서 잠을 자거나 욕조에서 목욕하는 등 ‘점거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에 따르면 대통령 관저를 점거 중인 반정부 시위대는 고타바야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물러날 때까지 관저 점거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점거 이틀째 수천 명의 스리랑카 시민들이 자녀와 함께 대통령 관저로 몰려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영국 식민지 시대 지어진 대통령궁이 사실상 무료 박물관이 되었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관저 전역을 돌아다니며, 책상 서랍을 열어 비우고, 대통령의 소지품들을 뒤졌다. 고타바야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앉아 대통령 흉내를 내며 사진을 찍었다.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관저 욕실 욕조에서 목욕하거나 침대에 누워 최신형 TV에서 나오는 크리켓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관저 내 수영장에선 수많은 이들이 물놀이를 즐겼다. 딸·손자들과 관저를 찾은 61세 시민 찬드라와티는 로이터통신에 “내 인생에서 이런 화려한 곳을 본 적이 없다”며 “우리가 고통받는 동안 그들은 호화로움을 즐겼다”며 분노했다.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오른쪽)과 고타바야의 형 마힌다 라자팍사 전 총리가 지난 2019년 대통령 선거 직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오른쪽)과 고타바야의 형 마힌다 라자팍사 전 총리가 지난 2019년 대통령 선거 직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앞서 지난 9일 고타바야 대통령은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의 TV 성명을 통해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보장하겠다”며 13일에 사퇴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시위대는 그가 국민 앞에서 직접 사임하겠다고 말한 적 없음을 문제 삼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고타바야 대통령은) 평화적 정권 이양을 약속했지만 어떤 공식 연설이나 문서도 없이 은신처에 머무르고 있다”며 “10일에도 국민에 조리용 천연가스 공급 명령을 내리는 등 여전히 국정에 관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BBC는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고타바야는 현재 스리랑카 해역에 있는 해군 함정에 은신해 있으며 형 마힌다 전 총리도 한 해군기지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지난 5월 형 마힌다 라자팍사 전 총리가 사퇴한 후에도 고타바야 대통령이 2개월간 사임을 거부하는 등 집권을 계속하려 했던 데 불신이 상당하다. 학생 시위대 지도자인 라히루 위라세카라는 AFP통신에 “우리는 그(고타바야)가 실제로 떠날 때까지 이 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리랑카 시민들이 10일(현지시간) 대통령궁 내 침대에 누워서 TV를 시청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리랑카 시민들이 10일(현지시간) 대통령궁 내 침대에 누워서 TV를 시청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 있는 대통령 관저를 점거한 시위대가 관저 내 침대에 누워 있다. [AF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 있는 대통령 관저를 점거한 시위대가 관저 내 침대에 누워 있다. [AFP=연합뉴스]

다만 시민들은 과도한 폭력 행위를 벌이진 않고 있다. NYT는 “경찰과 군 병력이 있는 가운데 관저엔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낙서, 플라스틱병 파편 등이 나도는 걸 제외하면 큰 피해는 없다”며 “시민들은 관저 쓰레기를 줍고, 식물에 물을 주거나, 1700만 스리랑카 루피(약 6100만원)를 발견해 경찰에 돌려줬다”고 전했다.

10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시민들이 대통령궁 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시민들이 대통령궁 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고타바야 대통령이 나서지 않을 경우 상황은 악화할 수 있다. 이날 스리랑카 야권 지도자들이 나서 현 정권 퇴진 이후의 정부 구성 방안 등을 협의했으나 구체적 합의가 이뤄진 건 없다. 스리랑카의 정치 분석가이자 인권변호사인 바바니 폰세카는 로이터에 “고타바야가 실제 사임할지에 따라 스리랑카의 정치적 상황은 당분간 매우 불확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위대는 전날 스리랑카 중앙은행을 습격하고,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 자택에 불을 지르는 등 격렬한 움직임을 보였다.

스리랑카 시위대들이 10일(현지시간) 대통령 관저 사무실 책상에 앉아 대통령 사무를 보는 것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리랑카 시위대들이 10일(현지시간) 대통령 관저 사무실 책상에 앉아 대통령 사무를 보는 것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리랑카 사태는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세계적 인플레이션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국가부채가 많고 경제 정책이 미숙한 개발도상국은 식량·연료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며 “잠비아·레바논·파키스탄·라오스 등에선 스리랑카 같은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중국의 역할을 촉구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신흥 시장에서 자본유출이 계속되며, 이들 국가 중 약 3분의 1은 빚더미에 앉았다”며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에 막대한 돈을 빌려준 중국이 부채 탕감 속도를 높이지 않으면 글로벌 경제에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