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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석의 100년 산책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의 무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 DC 부근에 가면 마운트버넌이라는 곳이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저택과 농장이 보존되어 있다. 미국인은 물론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관광지의 하나이다. 농장 안을 거닐면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워싱턴은 두 차례의 대통령 임기를 끝내고 주변의 간곡한 연임 권고를 거부하고 사저로 돌아와 살았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면 워싱턴은 “나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지금 백악관에 계십니다. 이름만 부르기 어색하면 파머(farmer·농부)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미국은 영국 전통을 따라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면 응당 국회의사당 안에 안장될 것으로 여겼다. 그 분위기를 잘 아는 워싱턴은 자기는 내 농장 집, 내가 지정한 장소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지금도 살던 저택 왼쪽 그것도 돌들이 쌓여 있던 경사지에 잠들어 있다. 여러 차례 국회의사당으로 이장할 것을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유언에 따라 옮기지 못했다. 보초 군인 두 사람이 교대해서 경호를 서고 있다.

개인농장과 일반인 묘소에 묻혀
민주정치는 인간다운 삶의 유물

한국에선 대통령 묘소 찾지 않아
무궁화대훈장 셀프 수상 멋쩍어

국민 먼저 생각한 안창호·김성수
정치는 목적 아닌 인간 위한 수단

워싱턴 “농부라고 불러주세요”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가 살아 있을 때 창고 비슷이 사용하던 건물 안에는 그의 애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가 바이블을 얼마나 애독했는지를 엿보게 한다. 섬기는 사람이 참다운 지도자라는 아메리카의 정신적 원천을 암시해 준다.

내가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던 미국의 지도자는 워싱턴보다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그는 워싱턴보다 26년 선배였고 필라델피아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필라델피아 어디에 가든지 그의 삶의 향기와 흔적이 남아있다. 필라델피아라기보다 프랭클린시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다. 그의 무덤을 찾아보고 싶어 찾아다니다가 안내를 받아 발견한 곳은 일반인과 같은 묘소에 누워있는 비교적 큰 돌비석 무덤이었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가이지만 찾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으면 초창기 아메리카의 실정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독립선언문을 기초했고 미국 헌법제정에도 참여했다. 대서양을 왕복하면서 영국과 유럽의 문화 사상계와 교류도 많았다. 학문과 정신계의 친구들은 모두 유럽에 있었다. 미국인은 그를 과학자와 발명가로 평가할 정도로 존경하나 정규적인 과학교육은 전무했고 학교교육도 받은 바가 없었을 시대의 사람이다. 지극히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아메리카를 건설했다.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에 교회와 대학이 설립되었고 정치지도자보다 사회지도자들이 나라를 건설했다. 그 기반에는 기독교의 휴머니즘이 깔려있다. 어떻게 보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아니고 반석 위에 세워진 건물이었다는 인상을 준다. 정치적인 것은 인간적인 것의 부산물이었고, 민주정치는 인간다운 삶의 유물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는 지금까지 10명의 우리나라 대통령과 함께 지냈다. 그런데 한 번도 어느 대통령의 무덤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물론, 내 편협 된 견해일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을 계기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정치 노선을 굳건히 한 데는 존경심을 갖는다. 그러나 왜 철없는 경무대(현 청와대) 측근들의 장막에 가려 4·19 때 애국심을 호소하는 젊은이들에게 발포를 허락했는지 애석한 마음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그렇다. 국민을 절대빈곤에서 경제건국의 기틀을 만든 공로는 인정하면서도 유신헌법을 만들고, 인권경시의 과오를 범했는지 유감이다.

최근에는 나도 모르고 있던 두 가지 사실을 알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묘역과 시설이 그렇게 넓은 줄은 몰랐다. 그리고 역대 대통령들이 무궁화대훈장을 셀프 수상했다는 사실이다. 국회에서 생전이나 사후에 증정하는 것으로 알았다. 구소련의 흐루쇼프 수상이 셀프 영웅훈장을 받았고 같은 독재국가에서는 관례가 되어 있다. 김정은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 출신이니까 받고 싶었을 것 같다. 민주주의 국가 원수의 셀프훈장은 어울리지 않는다. 앞으로는 무궁화대훈장을 국민이 드리고 싶은 정치지도자가 많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직과 진실, 인간의 기본 가치

그런데 나는 지금도 도산 안창호의 묘지를 찾아갈 때가 있다. 나만이 하고 싶은 말씀을 드린다. 이장하기 전에는 인촌 김성수의 묘소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들은 정치계에 몸담고 살면서도 국민계몽과 교육을 더 소중히 여겼다. 국민 모두의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정치의 목적으로 삼았다. 국민에게 모든 것을 바쳤지 국민과 정치를 통해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가 아니었다. 나라를 위해 태어났다가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베푸는 생애를 살았다. 개인적으로 대면했을 때도 인간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자신을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처했다.

정치는 정권과 공존한다. 그 정권욕에 빠지면 국민은 정치의 수단이 된다. 두 사람에게는 정권욕이 없었다. 항상 더 유능한 인재를 찾아 양보하는 모범을 보였다. 명예를 탐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교육과 종교계의 지도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도산과 인촌에게서는 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정직과 진실, 공정과 정의, 휴머니즘의 기본가치인 인간애 등은 정치적 사회가치의 기본이다. 그분들은 인격과 더불어 그 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정치 그 자체는 목적이 못 된다.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구현하는 수단과 과정임을 보여 준 지도자들이다. 우리 위해 사시다 가신 지도자 중의 지도자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