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경호의 직격인터뷰

“연착륙으로 가는 통로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2008년 금융위기 예측했던 신현송 국제결제은행 국장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유럽과 한국 등 전 세계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속도감 있게 금리를 올리고 있다. 지난달 중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1994년 이후 28년 만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전 세계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인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달 하순 연차보고서를 냈다. 핵심은 고인플레이션이 임박했으며, 인플레이션이 고착하기 전에 각국 중앙은행이 ‘빠르고 결단력 있게(quickly and decisively)’ 행동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수준의 금리 인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BIS는 고인플레가 고착되는 상황을 막으려면 각국 중앙은행이 단기적 고통, 심지어 경기 침체도 감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BIS는 1년 전 2021 연차보고서 제목을 ‘험난한 팬데믹 탈출(A bumpy pandexit)’로 달았다. 그때 보고서 내용처럼 팬데믹 탈출은 고난의 길이었고, 값비싸고 오래갈 생채기를 남겼다.

중앙은행이 빠르고 결단력 있게 행동해 임금-물가 동반상승 막아야
재정건전성은 물가 안정에도 핵심, 중앙은행도 관심 가져야 할 과제
2008년 위기는 은행, 지금은 자본시장 취약이 문제 … 거시 운영 잘 해야
한국은 글로벌 시장의 차입국 아닌 채권국, 과도한 공포 느낄 필요없어

BIS 조사연구의 총책임자인 신현송 BIS 조사국장에게 최근의 국제금융 흐름과 연차보고서의 내용을 직접 들어봤다. 인터뷰는 화상 대화와 e메일로 진행됐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이 최근 스위스 바젤의 BIS 사무실에서 브리핑하는 모습. 신 국장은 “BIS는 중앙은행을 회원으로 하는 국제기구이며, 역사적으로 중앙은행 본연의 임무는 통화를 발행하고 통화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며 “요즘 BIS가 부각되는 이유”라 고 말했다. [사진 국제결제은행]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이 최근 스위스 바젤의 BIS 사무실에서 브리핑하는 모습. 신 국장은 “BIS는 중앙은행을 회원으로 하는 국제기구이며, 역사적으로 중앙은행 본연의 임무는 통화를 발행하고 통화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며 “요즘 BIS가 부각되는 이유”라 고 말했다. [사진 국제결제은행]

올해 연차보고서에서 경제주체인 기업과 노동자의 인플레이션 대응이 달라지면서 고인플레이션이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플레 심리가 확산하고 고착화하는 티핑포인트에 가까워지고 있고 이게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이 될 수 있다고 썼다. 한국에서도 대기업과 빅테크를 중심으로 임금 인상폭이 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심화 메커니즘의 핵심에 임금과 물가의 상호 상승작용이 있다. 일단 경제가 고인플레 국면으로 들어가면, 임금-물가 상승작용이 시작된다. 이렇게 되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비용이 상당히 커진다. 중앙은행은 저인플레에서 고인플레 국면으로 전환되는 것을 우선 막아야 한다. 이런 전환은 급격히 일어나는 만큼 중앙은행이 시의적절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게 특히 중요하다.”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은 없을 것

그래도 현재의 인플레이션 환경이 1970년대 오일쇼크 때보다는 좋다(benign)고 분석했던데.
“1973년 석유파동 때는 브레튼우즈 시스템이 붕괴된 지 얼마 안 돼 국제금융제도가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지금은 각국의 통화정책 체계와 금융 질서가 견고해 1970년대식의 스태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는 정책 여지가 넓다. 또 그때에 비해 현재 유가상승폭이 훨씬 작다. 세계경제 구조도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개선됐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대비 에너지 사용량, 즉 한 단위의 실질 국내총생산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양이 1973년 이후 현재까지 약 40% 정도 줄었다. 석유 의존도도 많이 낮아졌다. 전력발전에 사용되는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예상보다 빨리 하락한 덕분이다.”
그래서 괜찮다는 얘기는 아닐 텐데.
“물론이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높은 변동성은 세계 경제 성장에 부담을 주고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연착륙(soft landing)으로 가는 통로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연차보고서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상황에선 가계와 기업부문의 의사결정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기 전에, 신속하게 인플레이션을 다시 낮은 수준으로 유도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요약하자면, 장기간 지속되는 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실제 일어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위기 후엔 중기적으로 재정여력 확충해야

선진국은 코로나 대응을 위한 재정 투입을 줄이고 정상화하고 있는데, 한국은 뒤늦게 올해 2차 추경에서 수십조원의 자영업자 손실보상을 단행했다. 물가를 잡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BIS 방침에 따라 개별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코멘트는 할 수 없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경제위기 또는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정부 지출이 있은 후에는 정부가 중기적으로 재정 여력을 다시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재정·통화정책 정상화를 촉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성장친화적인 투자와 공급 측면의 구조조정을 다시 도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거시정책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
성장친화적인 투자와 공급 측면의 구조개혁은 요즘 한국에서도 강조한다.
“기업의 설비투자와 같은 성장친화적 지출과 공급측면의 구조조정 정책은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통화·재정정책을 장기적으로 정상궤도로 돌려놓는 데 도움이 된다. 만약 재정지출 여력이 제한될 경우, 성장친화적인 조세제도 도입도 좋은 방안이다. 교육을 통해 인적자본을 키우고 지속가능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조합을 확보하는 것도 공급측면 구조조정 정책의 예다.”
재정건전성 관련해 선진국과 개도국 입장이 다를 수 있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은 모든 국가들에 중요하지만, 특히 개발도상국, 그중에서도 정부 부채를 중앙은행 발권력을 동원해 매입하려는 유혹에 취약한 나라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역사적으로 정부 부채를 중앙은행의 화폐 발행을 통해 매입한 국가들은 화폐가치 폭락을 경험했다. 1980년대 부채위기를 겪은 남미국가들이 대표적이다. 중앙은행 본연의 임무인 화폐가치를 지키는 데 실패한 나라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완전히 분리돼 있다는 주장은 틀렸다. 경제가 잘 돌아가는 평시에나 대체로 맞는 주장이다. 한 국가의 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중앙은행의 화폐발행을 통해 재정적자를 메꾼다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한 덩어리로 묶인다. 둘 간의 부정적 상호작용이 생겨 인플레이션과 환율 변동으로 화폐가치를 지킬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재정건전성은 물가 안정에도 핵심 사안이며 중앙은행이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하는 문제다.”

변동금리대출 많은 나라, 금리 인상에 취약

한국은 가계부채 걱정이 많다. 1분기 말 현재 1859조원으로 GDP 대비 104.3%에 달한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얘기하겠다. 금융위기 때 태풍의 눈에 있던 선진국은 가계부채를 많이 정리한 반면, 금융위기 충격을 별로 받지 않은 주변국과 개도국은 가계부채가 계속 늘었다. 경기부양 목적으로 미래 소비를 현재로 당겨서 쓴 거다. 이미 부채가 많은 상황에선 정책 효과도 미미할 것이다. 특히 변동금리 주택담보 대출 비중이 큰 나라는 금리 인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는 세대간 형평성 문제도 있다. 기성세대의 경우 주택가격 상승으로 혜택을 보는 반면, 젊은 세대는 주택 구입을 위해 더 많은 부채를 짊어져야 한다. 이러한 세대간 분열은 단순히 경제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신 국장은 2010년 한국 정부에서 일할 때 당시 추경호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현 경제부총리), 이창용 당시 G20 정상회의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장(셰르파, 현 한국은행 총재) 등 관료들과 함께 은행 선물환 규제, 외국인 채권 과세, 외환건전성부담금(일명 은행세) 등 외환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주류 경제학계에선 인정하지 않는 생소한 정책이었다. 외환시장 개입 아니냐는 국제금융기구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랬던 정책이 이제는 글로벌 표준이 됐다. 신 국장은 “금융위기 이후 학계와 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면서 이제 거시건전성 정책이 주류가 됐다”고 말했다.

거시건전성 3종 세트는 어떤 의미인가.
“경제학에 나오는 차선의 이론(theory of the second best)처럼 규제라는 불완전 요소를 이용해 역시 불완전 요소인 글로벌 유동성의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이 철학적 토대였다.”
요즘 외환시장이 불안하다. 환율이 달러당 1300원을 넘어섰다. ‘3종 세트’가 있으니 괜찮은 건가.
“그렇게 단적으로 얘기할 문제는 아니다. 2008년과 지금은 위험요인이 다르다. 그때는 은행부문이 취약해서 3종 세트로 정밀수술을 한 것이다. 지금은 비은행부문인 자본시장이 문제여서 뾰족한 방법은 없다. (한국 얘기라기보다는) 글로벌 시각에서 얘기한 거다.”
방법이 없다니 걱정이다.
“거시정책을 튼튼하게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 2010년 이후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차입자가 아니라 채권자로 바뀌었다. 그때보다 근본은 탄탄해졌다.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다.”
민간의 해외투자 자산이 많아진 만큼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이 과거보다 덜해졌다는 주장이 있다.
“경상수지만 볼 게 아니라 대외자산의 포트폴리오 전체를 봐야 한다. 기관투자가가 해외의 외화표시 채권에 많이 투자하면 단기 차입인 헤징 수요도 커진다. 자본시장에서 장단기 불일치가 없도록 해야 한다. 외환위기 때도 장단기 불일치로 뼈아프게 당하지 않았나. 이같은 만기불일치 문제에 대응하려면 국가의 안전자산인 외환보유액이 절실하다.”

주식·채권값 동반하락, 물가 잡혀야 끝나

최근 주식·채권·코인 등 금융자산 가격이 동시에 급락했다.
“2000년 이후 통상 주식과 채권가격이 반대로 움직여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근 주식과 채권의 동반하락은 특이한 현상이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중요한 거시 위험요소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은 인플레이션과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에 취약하다. 최근의 달러 강세는 국제 자금시장 상황을 더 경직시켰다. BIS 연구에 따르면 강한 달러는 보다 긴축적인 국제금융시장 여건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암호자산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금의 금융시장 상황이 주식-채권-암호자산의 세 가지 악재(triple whammy)가 동시에 터진 것이다. 주식과 채권의 양의 상관관계는 인플레이션이 다시 통제될 때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코인 가격 급락이 지금보다 더 심해지면 코인에 투자한 금융회사의 도산 등으로 이어져 시스템 리스크로 비화할 가능성은 없나.
“현재 시점에서 암호화폐 가격의 폭락이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와 같은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험을 야기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향후 탈중앙화 금융(DeFi)이 더욱 보편화되면, DeFi의 취약성이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을 저해하고 나아가 거시경제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현송 국장

1959년 대구 출생.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옥스퍼드대와 런던정경대,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프린스턴대 교수였던 2006년에 2년 뒤 금융위기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고 실제 위기가 터지면서 주목받았다. 2010년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일하며 외환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도입했다. 2014년 국제결제은행(BIS) 경제자문역 겸 조사국장에 임명됐다. 미국·유럽 출신이 아닌 비서구권 학자가 임명된 것은 BIS 역사상 처음이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