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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박지원·서훈 직접 고발…"'서해피격·탈북자 북송'에 직권남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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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6일 박지원ㆍ서훈 전 국정원장을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탈북어민 북송사건’과 관련해 고발했다. 국정원이 직접 직전 원장을 고발한 극히 이례적 일이다.

 2020년 9월 북한군이 피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의 배우자가 6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전날 대통령실과 해양경찰이 발표한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 연합뉴스

2020년 9월 북한군이 피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의 배우자가 6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전날 대통령실과 해양경찰이 발표한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 연합뉴스

국정원은 이날 오후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과 관련 첩보 관련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 등으로 박 전 원장 등을 고발했다”고 밝혔다. 서 전 원장에 대해선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과 관련 당시 합동조사를 강제 종료시킨 혐의로 고발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특히 두 전직 원장을 고발한 근거와 관련 “국정원의 자체 조사 결과”라고 명시했다. 국정원 조사에서 최소한의 혐의를 확인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국정원은 두 사람을 고발하면서 국정원법 상 직권남용죄 외에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죄(박 전 원장), 허위 공문서작성죄(서 전 원장) 등 구체적 혐의를 적시했다.

2021년 서훈 당시 국가안보실장(왼쪽)과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이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2021년 서훈 당시 국가안보실장(왼쪽)과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이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박 전 원장이 연루됐다고 밝힌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2020년 9월 21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소연평도 어업지도선에 타고 있다가 실종돼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뒤 해상에서 시신이 소각된 사건이다. 당시 군과 정보당국은 감청 등을 통해 수집한 SI(특수정보) 등을 근거로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월북으로 추정할 근거가 없었다”며 당시 수사 결과가 뒤집혔다.

탈북어민 북송사건은 2019년 11월 북한 선원 2명이 배에 탑승했던 선원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지만, 정부가 판문점을 통해 이들을 북한으로 추방한 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에 관련해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많은 국민이 의아해하고 문제 제기를 많이 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며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 이은 재조사가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이던 1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지난 2020년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의 유가족과 면담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이던 1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지난 2020년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의 유가족과 면담하고 있다. 뉴스1

실제 국정원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에 “지난달부터 국정원에 두 사건과 관련한 자체조사 TF(태스크포스)가 구성됐다”며 “혐의의 근거는 입장문을 통해 밝혔고, 구체적 사안은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의힘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선 자체 진상조사 TF를 운영해왔다. TF단장을 맡은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이날 조사 결과 발표에서 “이 사건은 개인에 대한 조직적인 인권침해와 국가폭력 사건”이라며 “(정부가) 희생자 구조 노력 없이 죽음을 방치하고,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조직적 월북몰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사건에 관여한 당사자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서욱 전 국방부장관, 서주석 전 안보실 1차장 등을 지목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브리핑 직후 국정원은 고발의 대상을 ‘박ㆍ서 전 원장 등’이라고 명시했다. 두 사람 외에도 추가 고발 대상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태경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위원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하태경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위원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박 전 원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첩보를 삭제한 일도 없고, 한ㆍ미 당국이 함께 수집한 첩보를 국정원이 삭제한다고 없어지느냐”며 “국정원의 고발 내용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페이스북에도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할 원장도 직원도 아니다. 소설쓰지 말라. 안보장사 하지 말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정원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사람을 아예 뿌리뽑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박 전 원장이 “첩보를 삭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데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본지에 “국정원은 첩보 관련 ‘보고서 등’을 삭제했다고 밝혔다”며 박 원장의 주장을 재차 반박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4일 오후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을 제막을 마친 후 박지원 당시 국가정보원장에게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4일 오후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을 제막을 마친 후 박지원 당시 국가정보원장에게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연합뉴스

서 전 원장은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관련 “사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필요한 협조를 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언론에 전달했지만, 아직 미국에 머물고 있다.

국정원의 고발 조치에 대해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전례가 없는 정치적 행위”라며 “살아있는 권력에 충성하는 국정원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인 윤영찬 의원도 “전형적 정치공작으로, 진실이 밝혀지면 국정원과 여권이 오히려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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