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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꼬리 수익률' 떼고, 연금 부자 탄생?...디폴트옵션 12일 도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00조원에 달하는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본격 시동을 건다. 오는 12일부터 디폴트 옵션이 도입되며 퇴직연금이 ‘쥐꼬리 수익률’이란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 시장과 투자자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5일 국무회의에서 사전지정운용제도의 주요 내용을 규정하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12일부터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사전지정운용제(디폴트옵션)가 도입된다. 확정급여(DB)형은 회사가 퇴직연금의 운용 손익을 떠안고 퇴직금을 고정적으로 지급해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내 연금의 '기본설정값'이 생긴다  

디폴트 옵션은 DC형과 IRP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가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 상품을 별도로 결정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는 경우, 미리 지시한 운용 방법대로 전문기관에서 적립금을 대신 운용해주는 제도다. 말 그대로 ‘기본설정값(디폴트)'에 따라 돈을 굴려주는 것이다. 한번 설정하면 가입자가 별도 지시를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해당 방식으로 연금이 운용된다.

근로자 입장에서 디폴트 옵션 도입으로 달라지는 건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회사와 연금 운용사가 상의해 디폴트 옵션 상품군을 정하면, 해당 내용이 퇴직연금규약에 기재된다. 근로자는 이 중 하나를 디폴트 옵션으로 골라야 한다. 이후에는 신규 가입 혹은 기존 상품 만기 이후 4주 안에 별도 운용지시가 없으면 2주의 대기기간을 거쳐 선택한 옵션에 따라 연금이 운용된다.

현재 디폴트 옵션에 들어올 상품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과 타깃데이트펀드(TDF), 머니마켓펀드(MMF), 부동산인프라펀드 등이다. 오는 10월에 열릴 첫 번째 심의위원회 승인을 거쳐 시장에 상품이 나올 예정이다. 근로자가 디폴트 옵션을 처음 행사할 수 있는 시점은 오는 10월이다.

두 번째로 달라지는 점은 위험자산에 100% 투자할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현재 퇴직연금의 위험자산 한도는 70%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디폴트옵션을 이용하면 적립금 전액을 주식과 펀드 등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보다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해진다.

만년 2%대 연금 수익률 높아질까? 

디폴트 옵션의 도입 취지는 ‘잠자는 연금을 깨우자’다. 현재 DC형 퇴직연금은 가입자인 근로자가 직접 펀드를 선택해 적극적으로 운용할 수 있지만, 전문성이나 관심이 부족한 탓에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상품에 담겨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적립금 295조6000억원 중 원리금 보장형(255조4000억원) 전체의 86.4%를 차지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익률은 쥐꼬리 수준이다. 2021년 기준 퇴직연금 전체 연간수익률은 2.0%에 불과하다. 원리금보장형의 수익률이 1.35%에 그친 탓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평균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연금 수익률은 수년간 2%대로 노후 보장에서는 부족한 실정이었다”며 “해외도 비슷한 문제의식에 디폴트 옵션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1981년 도입한 미국의 ‘401K’ 퇴직연금의 경우 최근 10년간 연평균 8.6%대의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피델리티자산운용에 따르면 2021년 2분기 기준 401K 퇴직연금 계좌에 금융자산 100만달러 이상을 보유한 근로자는 41만2000여명에 달한다. 호주는 1992년 ‘마이슈퍼’ 디폴트 옵션, 영국은 2012년 ‘네스트(NEST)’를 각각 시작했다.

약세장으로 돌아선 증시, 디폴트 옵션 변화 적을 수도

다만 디폴트 옵션이 당장 퇴직연금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긴 힘들 것이란 지적도 있다. 주식 시장이 약세장으로 들어서며 열기가 식어서다. 실제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던 증권사 퇴직연금 1분기 수익률은 대다수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근로자들이 주식 비중이 높은 실적배당형 상품을 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황세운 실장은 “퇴직연금 수익률은 장기 투자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오히려 시장이 과열됐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차분할 때 (실적배당형) 상품을 가입하는 게 투자자 입장에서는 좋다”고 말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원리금보장형 상품도 디폴트 옵션에 포함된다. 미국은 디폴트 옵션에 투자 상품만 담을 수 있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본부장은 “젊은 연금 투자자는 직접 주식에 투자하고, 퇴직을 앞둔 고령층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유지하는 만큼 디폴트 옵션이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다기보다는 연금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디폴트 옵션이 퇴직연금 시장에 가져올 지각변동 속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은행과 보험,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은 TDF 목표연도를 잇따라 늘리며 상품군을 확대하고 다양한 상장지수펀드(ETF)를 내놓는 등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은행과 보험업계도 디폴트 옵션 관련 부서를 신설하며 고객 잡기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하반기 연금고객관리센터를 신설하고, 삼성생명도 DC/IRP 부서를 새롭게 꾸렸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연금에 대한 고객의 관심이 커지는 만큼 은행도 원리금보장형 상품 외에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하반기부터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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