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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뛴 물가가 한은 빅스텝 등떠미는데…'오버킬' 우려도 솔솔

중앙일보

입력

치솟은 물가를 보는 한국은행의 속내가 복잡해지고 있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외환위기 이후 24년여 만에 6%대로 치솟았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통화정책의 중심에 물가를 두겠다고 천명한 만큼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좀 더 다가서게 됐다. 고민은 차갑게 식어가는 경기와 부풀어 오른 가계부채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설명회에서 물가안정목표를 발표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설명회에서 물가안정목표를 발표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6.0% 올랐다.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한은이 오는 13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관심은 인상 폭이다. 물가 관련 지표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전망을 키우고 있다. 한은 안팎에서는 물가상승률 6% 돌파를 빅스텝의 가늠자로 삼아왔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6%라는 상징적 숫자를 본 이상 7월 금통위 때 빅스텝 인상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일반인의 물가 상승 기대감(기대인플레이션)도 어느 때보다 높다. 지난 6월 기대인플레이션은 3.9%로 전달보다 0.6%포인트 올랐다. 2012년 4월(3.9%) 이후 최고치인 데다, 상승 폭도 2008년 관련 통계 작성 후 가장 컸다. 국제 유가 등 공급 측면의 인플레 요인이 사라지더라도 기대인플레이션은 상품 가격과 임금을 끌어올려 물가 상승을 장기간 이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물가 상황 점검 회의에서 “임금과 물가 간의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고물가 상황이 고착되지 않도록,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확산을 각별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임박한 한·미 금리 역전도 한은이 금리 인상의 보폭을 키울 이유다. 현재 한국(연 1.75%)과 미국의 기준금리(연 1.5~1.75%) 상단은 같다. 한은이 7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리고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26~27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스텝을 밟으면 금리가 역전된다.

금융권에서는 Fed가 이번 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리가 역전되면 외국인 자본이 유출돼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의 요인이 된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를 주고 사와야 하는 원유 등의 수입 가격도 오르게 된다. 물가 상승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기대인플레이션과 소비자물가 상승 등을 감안했을 때 7월 금통위에서 빅스텝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이라며 “빅스텝 인상이 다수론이 된 만큼 서프라이즈한 이벤트가 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급격한 경기 둔화는 한은의 고민거리다. 매달 전년 대비 두 자릿수씩 늘어나던 수출은 지난달 증가율이 한 자릿수(5.4%)로 내려왔다. 한은은 수출이 둔화하더라도 거리 두기 완화로 민간소비가 늘어나며 경제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고물가로 소비자의 지갑도 점차 닫히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6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6.4로 전달보다 6.2포인트 떨어지며 2021년 2월(97.2) 이후 처음으로 100 밑으로 떨어졌다. CCSI가 100보다 낮으면 소비심리가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금리 급등으로 늘어나는 가계의 이자 부담도 한은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는 1859조4000억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5%로 미국(76.1%), 중국(62.1%), 일본(59.7%) 등 주요국에 비해 높다.

특히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은 지난 5월 기준 77.7%(잔액 기준)에 달해 금리가 오르면, 이자 상환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한은의 베이비스텝(0.25% 인상)을 예상하는 이유다. 박정우 노무라 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현 단계에서 급격한 금리 인상은 가계의 금융 비용 부담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7월 금통위 때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때문에 물가 중심의 통화 정책을 강조했지만, 한은의 속내도 복잡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1일 “가파른 물가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면서도 “빅스텝은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물가 상승이 경기에 미칠 영향과 환율, 가계 이자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7월 빅스텝 인상 가능성이 커졌지만 여전히 변수가 많다”며 “실물경기 둔화와 가계부채 문제 등으로 금리 인상 속도에 낼 경우 통화 정책이 실물 경제 침체를 유발하는 '오버킬(overkill)'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금통위원들도 빅스텝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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