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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정치의 귀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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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호 30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화제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북미 최고 권위의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준결선에서 가장 난이도 높기로 유명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1시간 넘게 쉬지 않고 연주해 유튜브 생중계를 지켜보던 전 세계 시청자들을 열광케 하더니 결선에선 리스트 곡 못지않게 고난도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벽하게 해석해 내며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었다. 임윤찬이 신들린 듯 연주를 마치자 지휘자가 눈물을 훔치는 듯한 영상이 또 다른 화제를 낳기도 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그의 결선 영상은 열흘 만에 350만 조회수를 넘어서며 콩쿠르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산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며 사는 게 꿈이지만 그러면 수입이 없으니 이렇게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란 그의 신세대다운 당돌함에 네티즌도 크게 환호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명훈과의 협연 등 연주 일정이 줄을 잇고 있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맛보는 클래식의 귀환이다. 공연계는 혜성 같은 그의 등장을 계기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위축됐던 음악 애호가들의 발걸음이 다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총체적 경제 비상시국 극복 위해선
더 늦기 전에 실종된 정치 복원해야

‘탑건:매버릭’도 화제다. 1986년 레전드 영화 이후 36년 만의 속편에 포털 사이트 평점이 9.5~9.8을 기록할 정도로 압도적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게 바로 시네마-극장이 필요한 이유” “시네마의 시대는 끝났어. 알아.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등의 리뷰에도 공감이 쇄도하고 있다. 전투기 추격신은 가히 압권이다. 스타워즈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협곡 전투신을 CG 우주선이 아닌 현존하는 F-18로 멋지게 재현해 냈다. 여기에 1편 등장 후 퇴역한 F-14까지 깜짝 소환하며 올드팬들의 향수도 한껏 자극했다.

극중 탑건들은 “중요한 건 전투기가 아니라 파일럿”이라고 끊임없이 되뇐다. 무인기 시대에도 작전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여전히 기계가 아니라 사람일 것이란 믿음이다. 날것의 리얼리티에 대한 대중의 환호. CG가 지배하는 스크린에서 오랜만에 맛보는 클래식의 귀환이자 아날로그의 귀환이다. 1962년생 환갑의 나이에도 온몸으로 직접 연기하는 톰 크루즈의 투혼은 덤이다. 영화계와 극장가는 ‘범죄도시2’에 이어 이번 영화의 흥행을 계기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위축됐던 영화팬들의 발걸음이 다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무대와 화면에서 일상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세게 오는 오늘의 한국 사회다. 무엇보다 경제가 총체적 비상시국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중산층과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고 대출이자 폭등으로 영끌족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코인 폭락에 절망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코로나 직격탄에 신음했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망연자실할 뿐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파도가 밀려올 것이란 우려도 적잖다.

더 심각한 건 정치는 여전히 실종 상태라는 점이다. 이처럼 상황이 위중한데도 그 많은 정치인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가. 위기 대응에 당력을 총동원해도 부족할 판에, 모든 메시지를 경제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여야 할 것 없이 내부 당권 다툼에만 매몰돼 있는 그들은 대체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 정치인인가. “통증을 못 느끼면 공감도 못하는 법”이라는데 저리도 태연히 틀에 박힌 발언만 반복하는 건 국민의 고통이 전혀 와닿지 않기 때문이란 말인가.

2022년도 어느새 절반이 지났다. 더욱 혹독할 하반기를 맞아 정치권이 민생을 지키는 방파제가 돼달라는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젠 우리 국민도 공연장이나 스크린에서 느끼는 만족감을 현실 정치에서도 한 번쯤은 맛봐야 하지 않겠나. 더 늦기 전에 여야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정치의 귀환(return)을 모색하지 않으면 언제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을 반납(return) 처리할지 모른다. “문제는 경제야!”라는 빌 클린턴의 경고는 지금 한국 사회에도 똑같이 유효하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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