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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霖雨(임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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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호 31면

한자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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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를 나타내는 한자어 중 ‘霖雨(임우)’라는 단어가 있다. ‘霖雨(임우)’는 ‘霖(장마 림)’과 ‘雨(비 우)’로 구성된 한자어로 한국·중국·일본 등 한자문화권에서 모두 장마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다.

‘雨(우)’는 상형 글자로, 갑골문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의 모습을 본떠 그린 것이다. ‘霖(림)’은 숲(林)에 비(雨)가 내리고 있는 모양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 漢(한)나라의 許愼(허신)이 쓴 중국의 가장 오래된 字典(자전)인 『說文解字(설문해자)』에 따르면, 이 글자는 의미를 나타내는 ‘雨(우)’와 소리를 나타내는 ‘林(림)’으로 구성된 형성 글자로, 사흘 이상 내리는 비를 뜻한다. 이 두 글자가 합쳐져 ‘계속해서 내리는 큰비’를 의미하다가, 지금은 주로 여름철 장마를 의미한다. ‘霖雨(임우)’는 『세종실록』에 ‘지난가을에 장마 비[霖雨]로 인하여 소금을 굽지 못하였다’ 등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에 장마로 인한 나라의 재난과 관련된 기록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霖雨(임우)’는 장마라는 뜻 이외에도 적절한 때 내리는 ‘時雨(시우)’, 또는 단비인 ‘甘雨(감우)’를 의미한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유교 경전 중 하나인 『書經(서경)』 ‘說命上(열명상)’에 商(상)나라 高宗(고종)이 신하 傅說(부열)에게 “만약 큰 강을 건너면 그대를 배와 노로 삼을 것이며, 만약 큰 가뭄이 들면 그대를 단비로 삼을 것이다(若濟巨川用汝作舟楫, 若歲大旱用汝作霖雨)”라는 구절이 유명하다. 여기 나오는 ‘霖雨(임우)’는 이후 많은 동양 고전에서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윤택하게 하는 인재 혹은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보필하는 재상 등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됐다.

장마는 때에 따라 사람들에게 근심을 주는 ‘霖雨(임우)’가 될 수도 있고, 모두가 기다리고 바라는 ‘霖雨(임우)’가 될 수도 있다. 올해 장마는 세상을 윤택하게 하는 ‘임우’가 되길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이 쓴 시 한 구절을 읽으며 장마의 끝을 기다려 본다.

꽃을 심고 사람들은 꽃만을 볼 줄 알지(種花人只解看花)/꽃이 진 뒤 잎이 더욱 화사한 줄은 깨닫지 못하네(不解花衰葉更奢)/정말 좋구나. 한 차례 임우가 지나간 뒤(頗愛一番霖雨後)/여린 가지마다 돋아나는 연노란 싹들이(弱枝齊吐嫩黃芽). (丁若鏞(정약용) 『茶山詩文集(다산시문집)』 제3권 ‘池閣(지각)’ 중)

노혜정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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