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준호의 직격인터뷰

“누리호 개발 성공하면 장 지진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7.01 00:32

업데이트 2022.07.0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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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누리호 엔진개발 주역 한영민 항공우주연구원 엔진개발부장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발사를 앞두고 일주일 전부터 매일 밤, 발사대에서 엔진이 폭발하는 꿈을 꿨습니다. 2018년 시험 발사 때도, 지난해 10월 첫 발사 때도 그랬습니다. 이번엔 성공하느라 그랬는지, 21일 발사 이틀 전에 폭발하는 꿈을 꾼 게 전부였습니다.”

탱크 같은 인상을 한 남자의 속마음은 여렸다. 그간 새카맣게 타들어갔을 것 같은 얼굴에서 소년 같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의 핵심인 액체연료 로켓 개발을 책임져온 한영민(54)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엔진개발부장. 누리호 발사 성공 3일 뒤인 지난달 24일 대전 항공우주연구원에서 만난 그의 얼굴엔 그날의 흥분이 여진처럼 남아 수시로 올라왔다. 2000년 추력 13t의 항우연 첫 액체 과학로켓인 KSR-3를 시작으로 로켓엔진 개발에 몰두해온 지 22년의 세월이다. 한 부장을 만난 곳은 항우연 ‘동(動) 특성 실험실.’ 75t 로켓엔진 4개를 묶은 클러스터링 상태에서 각각의 엔진 연소기를 움직여보는 짐벌링(Gimbaling)을 실험하는 곳이다. 수차례 연소시험을 거쳐 거무스름한 빛을 한 높이 2.9m 거대한 엔진 묶음이 하늘을 보고 뒤집어져 있었다.

항우연 입사 후 22년간 로켓 개발
“발사 전날 탑돌이하며 성공 기도”
75t 발사체 개발, 러시아가 도움 줘
미국의 전략물자 통제 푸는게 숙제
한국 독자기술로 개발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심장인 로켓엔진을 개발한 한영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엔진개발부장이 지난 달 24일 오후 대전 항우연에서 75t급 액체 로켓엔진 4기가 묶여진 누리호 1단 클러스터링 앞에 섰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독자기술로 개발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심장인 로켓엔진을 개발한 한영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엔진개발부장이 지난 달 24일 오후 대전 항우연에서 75t급 액체 로켓엔진 4기가 묶여진 누리호 1단 클러스터링 앞에 섰다. 프리랜서 김성태

발사에 성공한 소감이 궁금하다.
“너무 기뻤다. 1, 2단이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센터(MDC) 안은 긴장감 때문에 개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발사 879초 뒤 고도 700㎞에서 3단 엔진이 정지되고 성능검증위성이 분리되는 순간, 나를 포함해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서로 껴안고, 손뼉 치고, 울기도 했다. 나도 몰랐는데 녹화 장면을 보니 동료에게 손으로 하트를 크게 그리는 장면까지 나왔다. 나중에 아내가 ‘나한테는 평생 한 번도 안 해주더니 어떻게 직장 사람들에겐 그런 걸 해주느냐’고 핀잔을 줬다. 가족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날이 아닌가 싶다.”
원래 발사는 15일이었다. 두 차례 연기 때 심정이 어땠나.
“첫 발사 예정일인 15일은 바람이 너무 강해서 어쩔 수 없이 연기한 거라 담담했다. 다음날 아침 흐린 날씨 속에 조립동에서 다시 누리호를 꺼내는데, 햇빛이 딱 그곳에만 비쳤다.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오늘은 잘 되겠다’고 기대를 했는데, 발사체를 세우고 전기적 신호를 점검하는데 센서 오류 신호가 떴다. 1단 산화제 탱크 센서였다. 1, 2단을 분리해 센서를 고치려면 장마철 지나고, 태풍도 오고 한 두 달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센서 하나 때문에 결국 또 발사를 못 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답답했다. 다음날 회의에서 센서 문제라면 굳이 1, 2단을 분리하지 않고 사람이 점검창 안으로 들어가서 수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됐다. 실제로 안으로 들어가보니 사람이 충분히 설 수 있는 공간이 돼 센서를 교체할 수 있었다. 그렇게 21일 발사가 최종 결정됐다.”
최종 발사 전날 잠은 제대로 잤나.
“나로우주센터 기숙사가 발사장 아래, 조립동에서 7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공학을 한 사람이 이러면 안되지만, 조립동을 탑돌이하면서 ‘하느님, 어머님, 부처님 이번 발사는 무사하게 안전하게 꼭 성공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나는 무교지만, 예전에 가톨릭 교회를 다닌 적이 있고, 집사람 쪽은 불교다. 뭐든 기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 밤은 엔진이 폭발하는 꿈도 안 꾸고 잤다.”
엔진이 폭발하는 꿈을 자주 꿨다는 말인가.
“2018년 시험발사체 때도 그렇고 지난 1차 발사 때도 그렇고, 발사 일주일 전부터 발사대에서 로켓엔진이 폭발하는 꿈을 매일 꿨다. 이번엔 발사 이틀 전에 한 번 꾸는 정도였다. 엔진이 워낙 고에너지의 장치이다 보니 액체산소와 케로신(연료)이 만나게 되면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처음 시동 점화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이때 폭발하게 되면 1단뿐 아니라 2, 3단에 채워진 연료와 산화제까지 연쇄 폭발해 정말 큰 데미지를 입는다.”
세계 7대 우주강국 도약의 주역인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의 심장을 순수 기술로 개발한 한영민 누리호 엔진 개발부장이 24일 오후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75t급 액체연료 엔진 4기가 묶여진 누리호 1단 로켓 엔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김성태/2022.06.24.

세계 7대 우주강국 도약의 주역인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의 심장을 순수 기술로 개발한 한영민 누리호 엔진 개발부장이 24일 오후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75t급 액체연료 엔진 4기가 묶여진 누리호 1단 로켓 엔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김성태/2022.06.24.

실제로 엔진이 폭발한 적이 있었나.
“그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있었다. 2020년 5월 2단 엔진 고공연소시험을 할 때다. 액체산소와 케로신이 나올 때 바로 점화제를 넣어야 하는데, 점화제쪽 필터가 막혀 점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액체산소와 케로신이 많이 나와버렸다. 2단 엔진은 고도 50㎞ 이상 고공에서 연소되는 거라 진공챔버 안에서 시험을 하는데, 폭발이 일어나 엔진과 챔버 설비에 많은 손상을 입었다. 다행히 개발진은 1㎞밖에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안 다쳤다. 미국 스페이스X도 발사 후 2단이 비슷한 원인으로 폭발한 적이 있다. 우리로선 큰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다.”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그중에서도 외부에서 항우연을 바라보는 불신이 참 힘들었다.  2018년 75t 엔진 1개를 장착한 시험발사체를 쏘아올릴 땐 우리도 ‘이게 잘 날아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많았다. 하물며 외부에서야 어떠했겠나. 국내 우주공학과 교수들도, 또 외국에서도 ‘항우연이 저 엔진을 개발해서 과연 날릴 수 있을까’하는 의심의 시각이 많았다. 교수님들 중에는 ‘항우연이 75t 엔진을 개발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얘기한 사람도 있었다.”
발사체 개발에 러시아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나로호 개발 때 러시아와 우주기술협력 협정도 맺었고, 공식·비공식적으로 러시아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게 사실이다. 그 전까지 우리는 발사체 전체를 한 번도 조립해본 적이 없었고, 발사대와 조립동을 지어본 적도 없었다.”
2013년 나로호 발사 후 러시아가 추력 210t의 최신형 앙가라 엔진을 남겨두고 갔는데.
“처음엔 지상검증용 발사체(GTV)라 당연히 모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실제 로켓엔진이었다. 솔직히 엔진 개발자 입장에서 욕심이 났다. 앙가라 엔진은 다단연소 사이클 엔진으로는 세계 최고의 엔진이라 ‘넘사벽’이란 생각을 많이 했다. 예전에 러시아에 가 보면 우주 관련 박물관에서나 RD-170이나 180 같은 러시아 우주로켓 엔진을 볼 수 있었다. 연소기 4개가 묶여있는 추력 800t급 엔진이었다.”
누리호 다음 차세대 발사체의 엔진 개발도 담당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차세대 발사체에 들어가는 엔진 추력은 100t으로, 나로호 1단에 쓴 러시아 앙가라 엔진처럼 다단연소 사이클이다. 1단부에 이걸 5개 달고, 2단부에는 10t 엔진 2개를 쓴다. 엔진출력을 40%에서 100%까지 조절하고, 재점화도 할 수 있다. 스페이스X처럼 거꾸로 내려올 수 있는 기본적인 구조를 갖춘 셈이다. 그렇다고 재사용을 목적으로 차세대 발사체를 개발하는 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기술들도 많이 필요하다. 아마도 차세대의 다음 발사체에서는 그런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
나로호에 쓴 앙가라 엔진이 본격적으로 도움이 되겠다.
“아직 엔진을 잘라보진 않았다. 로켓 내부에 들어가 엔진 시스템 구성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정도는 했다. 엔진의 사이즈, 밸브 위치, 배관 구성 등 배치도를 파악한 정도다. 하지만 앙가라 엔진은 추력이 200t을 넘는다. 우리 차세대 발사체용 엔진과는 추력이나 압력에서 차이가 크다. 때문에 리버스 엔지니어링(역공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앙가라 엔진이 도움은 되겠지만, 어차피 설계는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한다. 이미 기초연구 차원에서 2016년부터 10t급 다단연소 사이클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일본에는 우주로켓 기술을 전수했는데 왜 한국은 안 도와주나.
“누리호 개발 당시 75t 엔진 연소기 시험설비가 국내에 없어 러시아는 물론 미국에도 알아봤는데, 미 국무부가 답변을 하지 않았다. 3개월 정도 답변을 기다렸는데, 알아보니 미 국무부가 답변을 하지 않는 건 거절하는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은 우주발사체나 로켓 기술이 다른 나라로 확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은 1970년대에 미국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중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동아시아에서 한 나라 정도는 지원해야 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젠 우리도 자력으로 우주로켓을 개발했는데, 미국이 달라지지 않을까.
“미국은 도와주지 않았는데 자력으로 발사체를 개발한 나라가 있으면 이너서클로 넣어주는 전례가 있다. 인도가 그랬다. 현재론 한국이 개발한 우주발사체에 미국 부품이 들어간 위성은 쏘아올릴 수 없다. 미국의 전략물자통제 정책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의 예에서 보듯 미국도 결국 우리나라를 인정해줄 거라 생각한다. 한·미 미사일협정이 저렇게 빨리 풀릴 줄 누가 알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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