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휴가중 몸 던진 아들…부모의 20년 추적뒤 드러난 전말

중앙일보

입력 2022.06.29 05:00

업데이트 2022.06.29 09:27

“애가 집에 다른 사람 있냐고 자꾸 물어봐. 밤새 잠도 못 자더라고. 이상해서 아침 먹이고 병원 문 열자마자 데려가려고 했는데, 잠깐 한눈판 사이에 그렇게 될 줄은….”

아버지는 20년 전의 일을 잊지 못한다. 지난 2002년 6월 20일, 전날 군에서 100일 휴가를 맞아 서울 집에 온 아들은 아침이 밝자 투신해 숨졌다. 아들 소모(사망 당시 21살)씨는 성실하고 온순하기만 했던 맏이였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해병대에 가겠다는 아들을 겨우 설득해 육군으로 보낸 터였다. 소씨의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보낸 아들, (나라가) 곱게 돌려보내 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지난 2002년 군 100일 휴가 중에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소모씨의 생전 모습. [사진 유족 제공]

지난 2002년 군 100일 휴가 중에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소모씨의 생전 모습. [사진 유족 제공]

극단적 선택 시도했다고 '영창행'

군 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는 유족 측의 재조사 신청에 따라 2020년부터 소씨의 죽음의 배경에 대해 조사했다. 진상규명위는 헌병단 조사 내용을 토대로 당시 소씨가 2002년 2월 입대해 같은 해 5월 제8보병사단에 배치된 이후 가혹행위를 당한 정황을 확인했다.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고인의 내무반에서는 선임병들이 점호가 끝난 후 지휘관들로부터 지적받은 부분이나 잘못한 부분에 대해 후임병들에게 욕설을 쏟는 이른바 ‘결산’이라는 행위를 하곤 했다.

가혹행위를 받던 소씨는 그해 5월 경계근무 중 공포탄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고 한다.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소속 부대는 소씨를 관심병사로 지정하는 대신 오히려 ‘7일 영창’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조사에 따르면 포대장이 ‘경계근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소씨를 입창시키고, 군의관에게 입천장에 상처가 없는 것으로 진단서를 작성하게 했다고 한다.

영창에서 나온 이후 부대 내 현금이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고, 소씨가 모든 직속 상급자에게 도둑으로 오해받은 정황을 확인했다는 게 진상규명위 측 설명이다. 이후 소씨는 야간 근무가 없는데 기상해 전투복을 착용하거나, 지나가는 간부 차량을 보고 “모친이 탔다”고 말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절도 사건 일주일 뒤, 휴가를 받고 나간 소씨는 자택에서 몸을 던졌다.

사망 이후 사건 은폐·조작한 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출범 3주년 맞아 보고회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14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연 3년 조사활동보고회에서 송기춘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10.14   see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출범 3주년 맞아 보고회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14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연 3년 조사활동보고회에서 송기춘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10.14 see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진상규명위는 소씨가 사망한 뒤 부대가 고인의 수양록, 학습장, 편지 등을 파쇄하고 부대원들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건을 조작·은폐한 상황도 파악했다. 진상규명위 조사관은 당시 부대 병사들을 찾아 상황을 물었다. 고인의 부대 동료들은 “소씨를 영창에 보내기 위해 군의관이 서류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포대장이 병사들을 모아놓고 ‘자살 미수 사건으로 영창 보냈다는 이야기를 포함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채재광 진상규명위 조사관은 “당시 사건 관계자 9명 중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대대장 외에 나머지는 직접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포기할 수 없었던 父母의 싸움

군에 제출한 소모씨 유족의 입장문. [사진 유족 제공]

군에 제출한 소모씨 유족의 입장문. [사진 유족 제공]

2002년 당시 소씨의 죽음은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현 군사경찰단)이 조사했다. 군 사망자의 순직 여부를 결정하는 육군 보통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고인의 죽음을 ‘비전공상사망’으로 판정했다. 군에서 행한 공무와는 상관없는 사망이라는 의미다.

헌병단 조사 이후에 부모는 2005년 보훈처에 “부대 내에서 심한 폭언과 집단따돌림 등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정신병이 발병해 자살하게 됐다”며 국가유공자로 인정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2심까지 갔지만, 재판부는 국가유공자법상 ‘자해행위’에 해당해 국가유공자로 볼 수 없다는 판단,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20년 5월 유족은 다시 진상규명위에 진정을 냈다. 소씨의 아버지는 “그렇게 멀쩡했던 애가 이상해졌는데 군은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한다”며 “가해자들이 전혀 책임도 지지 않고, 죽은 애만 덮어쓰고 갔다”고 주장했다.

진상규명위는 가혹행위와 부대 관리 소홀 등이 주된 원인이 되어 소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방부에 순직으로 재심사할 것을 지난 2월 요청했다. 채 조사관은 “2014년 군인사법 개정으로 군 복무 중 구타·가혹행위 등 부대적인 요인으로 자해사망(자살)한 경우에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순직 결정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조사된 내용에 비춰보면 순직 결정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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