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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경찰·노동·공기관 적 됐다...與 일각서 "尹 너무 거칠다"

중앙일보

입력

2003년 2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청암동 한국노총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산별노조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3년 2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청암동 한국노총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산별노조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정부가 출범 초기 국정운영 동력을 잃었던 건 노동계와의 대치 탓이 크다. 노동계와 가까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화물연대 파업에 “엄정한 법 집행”을 말하고, 이어 철도노조 파업은 강제진압하면서 노·정 간 대화 창구는 닫혀버렸다. 핵심 지지층인 노동계를 잃으면서 노 전 대통령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국정운영의 힘도 빠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노무현 정부 때) 결과적으로 노동 분야는 참여정부의 개혁을 촉진한 게 아니라 거꾸로 개혁 역량을 손상시킨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노무현 정부 초반 국정을 지켜본 문 전 대통령은 정부 초기 대치 전선(戰線)을 만드는 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취임 직후부터 경찰·노동·공공기관과 대치한 尹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출범 한 달반 만에 세 곳에 대치 전선을 만들었다. 상대는 경찰, 노동계, 공공기관이다.

경찰과는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을 두고 부딪혔다. 13만명에 가까운 경찰의 반발을 사고 있고, 27일 김창룡 경찰청장은 청장직을 던지며 반대 뜻을 사실상 공식적으로 밝혔다. 노동계와는 주 52시간제 개편 등 노동시장 개혁이 대치점이다. 양대 노총은 하반기 연이은 투쟁을 예고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2016년 민중총궐기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를 다음 달 열 것이라고 밝혔다. “파티는 끝났다”(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 선전포고에 공공기관은 “전 정부가 시키는 대로했을 뿐”이라며 내부적으로 ‘부글부글’하는 분위기다.

임기를 한 달여 남기고 사의를 표명한 김창룡 경찰청장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 청장은 최근 행정안전부의 경찰 통제안 발표에 따른 조직 내부 반발과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의 질책 등을 수습하기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 공동취재

임기를 한 달여 남기고 사의를 표명한 김창룡 경찰청장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 청장은 최근 행정안전부의 경찰 통제안 발표에 따른 조직 내부 반발과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의 질책 등을 수습하기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 공동취재

여당에선 “너무 러프하다(거칠다)”는 반응도 나온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중요한 이슈인데 사전 조율을 거친 뒤에 발표되는 게 아니라, 대통령실과 정부가 충분히 미리 준비하지 않은 채로 러프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 고용노동부가 전날 발표한 주 52시간제 개편 방침에 대해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여당은 대표·최고위원·중진 모두 리더십 부재

특히 사실상 여당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이어서 대치 전선만 늘리는 건 “감당이 힘들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여당 내엔 크다. 과거엔 정부가 출범하면 당 지도부는 청와대가 추진하는 정책을 메시지나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재 국민의힘 상황으로는 그럴 여력이 안 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다음 달 당 윤리위원회 징계 결정을 앞두고 있어 리더십 위기 상태다. 이 대표의 페이스북 메시지도 윤 대통령을 보조하기보다는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을 공격하는 데 초점이 맞춰 있다. 그의 페이스북에선 경찰국 신설이나 노동시장 개편 등에 관련된 메시지를 찾기 힘들다.

최고위원들도 이 대표와 배현진 최고위원의 갈등으로 표출됐듯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다. 당 중진 의원들도 구심점이 없어 사분오열하는 당내 갈등 상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윤핵관’ 권성동 원내대표도 야당과 국회 원 구성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며 입법적으로 윤석열 정부를 보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지성 시대의 공성전’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지성 시대의 공성전’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국민의힘 한 의원은 “당이 내홍 상황이다 보니 대통령실과 당이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당이 혼란 상황이어서 보조가 안 되는데 대통령실과 정부가 계속 사회 갈등 상황을 키우면 감당이 되겠나”라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은 입당 자체가 늦어 당내 리더십이 취약하고, 이 대표는 과거 무게감 있고 설득하는 당 대표와 달리 자기중심적이어서 리더십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갈등이 커지면 여권의 위기로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선을 넓히는 게 지지율에 하락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개혁도 중요하지만 완급 조절도 중요한데 윤석열 정부는 너무 출범 초반에 몰아붙이는 느낌이 있다”며 “대치 전선을 여러 개 만드는 게 지지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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