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전당대회 출마를 저울질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민주당 원로들에게 사실상 전대 불출마를 요청받았다. 하지만 이 의원은 거취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이 의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식당에서 권노갑(92)ㆍ김원기(85)ㆍ임채정(81)ㆍ정대철(78)ㆍ문희상(77) 등 민주당의 상임고문 다섯명과 비공개 오찬 회동을 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논의의 핵심은 “전대에 출마하는 것이 당의 단합과 단결을 위한 필요한 길인지 더 깊이 고민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권노갑 고문은 오찬을 마친 뒤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고문들은 한 목소리로 '너무 가까운 시각으로만 보지 말고, 긴 미래를 내다보면서 더 큰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며 “모두가 출마가 이르다는 공감대를 피력했다”고 말했다.
김원기ㆍ임채정 고문도 본지에 “전당대회가 계파전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했다.
원로들은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례를 구체적으로 들며 “지금은 당대표가 아니라 먼저 초선 의원으로서 성과를 내고 인정받아야할 시점”이라는 쓴소리를 했다.
권 고문은 “김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반대만을 위한 반대가 아닌 대안으로 국민을 감동시켰고, 노 전 대통령도 의정활동을 통해 대통령이 됐다”며 “이 의원은 당의 중진이나 간부를 한 적이 없고, 장관도 안 해봤는데도 대통령 후보가 됐으니, 먼저 1등 국회의원이 되는 게 오히려 대통령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인사도 “지금 전대에 나가는 것은 당과 본인에게 득(得)이 될 게 하나도 없다”며 불출마를 강하게 요청했다.
이밖에 “주변에 강성이 너무 많다. 그 사람들의 얘기에만 귀기울이지 말고, 당과 국민 전체를 보고 가야한다”는 말도 여러차례 언급됐다. ‘개딸(개혁의 딸들)’로 대표되는 강성 지지자들에 휘둘리는 ‘팬덤정치’를 경계한 말이다.
당내 최고 원로 그룹의 일치된 불출마 요청에도 이 의원은 이날 똑부러진 답을 하지 않았다.
이 의원은 원로들의 조언을 들은 뒤 “전대 출마가 저에게 오히려 해(害)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출마를 권유하고 있다”며 “이 자리에서 (출마 여부에 대한)결정을 말하긴 어렵지만, 고견을 충분히 듣고 가슴에 새기겠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원로들은 “명확한 답은 없었지만, 이 의원이 결국 불출마로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다.
권 고문은 본지 통화에서 “‘가슴에 새기겠다’고 했으니,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모든 고문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기대에 반한 결정을 할 가능성은 없느냐’고 재차 묻자 “당과 본인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날 오찬에 대해 당내에선 “출마의 명분을 쌓기 위한 수순”이란 평가가 많다.
친(親)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민심을 청취해보니 ‘민주당의 지도자감이 안 보인다’고 한다”며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 ‘내가 안 할 테니 너도 하지 말라, 네가 하지 않으면 나도 안 한다, 누구는 책임 있으니 나오지 말라’고 하는 행태에 (국민들이) 분노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