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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파일] 대통령의 사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94호 31면

전민규 사진팀 기자

전민규 사진팀 기자

권력자에게 사진은 대중에게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꽤 강력한 수단이다. 대통령의 사진은 특히 더 그렇다.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의 관심거리기 때문이다. 입고 있는 옷, 신발 등은 물론이고 작은 손짓, 눈빛 하나까지 때로는 큰 의미가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10일 당선 이후로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 줬다. 통의동 첫 출근날 당선인 신분의 윤 대통령은 첫 민생 행보로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시장 골목 식당에서 꼬리곰탕을 먹으며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다음날에는 동해안 산불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소방관 등 산불 진압 관계자들에게 무료식사를 제공한 한 중식당을 찾아 짬뽕으로 식사했다. 그 후에도 김치찌개와 피자, 육개장 등으로 식사를 하는 윤 대통령 사진이 잇따라 공개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종로의 한 피자집에서 참모진과 식사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종로의 한 피자집에서 참모진과 식사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이 같은 윤 대통령의 ‘소탈한 점심’ 사진은 신문 1면을 장식하기도 했고, 소통과 탈권위를 상징하며 ‘식사정치’라는 말까지 다시 소환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계속 되풀이하면 곧 무덤덤해지고 나아가 짜증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식사 사진이 계속 공개되자 누리꾼들은 “먹방 유튜버인 줄…”, “안물안궁(안 물어보았고 안 궁금하다). 국가운영 비전이 보고 싶다”와 같은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이미지에 금세 피로감을 느낀 것이다. 비슷비슷한 사진이 반복되면서 정작 중요한 대통령의 국정 운영 관련 사진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됐고, 애초에 전하려 했던 ‘소통’, ‘소탈’ 같은 메시지도 퇴색됐다.

대통령의 사진은 대통령실을 통해 공식적으로, 김건희 여사 팬카페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이 채널을 통해 공개된 몇몇 사진은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인과 평론가들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고, 온라인에서는 소모적인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구 선진국은 치밀한 계획을 통해, 공산권 국가들은 강력한 통제를 거쳐 국가 지도자의 이미지를 공개한다. 미국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백악관 미디어 담당관은 대통령의 일정을 분석해 사진과 영상에 담길 대통령의 이미지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다. 그런 이유로 사진기자들의 촬영 포지션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다.

북한도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은 주위 배경이나 등장인물 등 작은 요소 하나까지 잘 만든 각본에 따라 촬영되는 것은 물론 공개 여부와 시기에도 메시지를 담는다. 때로는 수개월 동안 사진을 공개하지 않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필요한 타이밍에 사진을 공개해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데 능숙하다.

취임한 지 50일 가까이 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을까. 기자의 기억에는 반복과 불필요 그리고 정돈되지 않은 장면들의 연속이다. 5·18 기념식을 맞아 광주에서 여야 가리지 않고 손에 손을 맞잡고 화합한 모습이나,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지만 소소한 사진의 남발로 인해 국가 최고지도자의 이미지가 동네 옆집 아저씨처럼 너무 가볍게 각인된 건 아닐까. 오죽하면 윤 대통령 참모가 “탁현민 같은 홍보기획 전문가 어디 없나”라는 말을 했을까. 이전 대통령들과 다르게 윤 대통령은 다양한 방면에서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의 사진이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좀 더 품격 있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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