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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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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문화부장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2022 Z세대 신조어 퀴즈’ 중 이런 게 있다. “Z세대가 활용하는 ‘여름이었다’의 의미와 가장 가까운 영화 장르는?” ①호러 ②하이틴 ③액션 ④코미디.

신조어 ‘여름이었다’에는 두 개의 뜻풀이가 있다. ‘여름의 청량함을 아련하게 회상할 때 쓰는 문구’ 또는 ‘아무 소리나 쓰고 감성적이고 아련한 문구처럼 보이게 할 때 쓰는 문구’.

그림책 표지

그림책 표지

SNS 등에 실제 여름날의 풍경 또는 여름날의 추억 등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영상을 올리면서 해시태그(#)를 붙여 ‘#여름이었다’고 쓴다면 이건 첫 번째 뜻풀이에 해당한다. 꼭 여름이 아니어도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의 순간임을 알리는 해시태그로 쓰이기도 한다. 지난해 열렸던 도쿄 올림픽 양궁 혼성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품에 안은 안산 선수가 메달수여식 후 소감을 묻는 인터뷰에서 “여름이었다”고 답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퀴즈 정답이 ‘②하이틴’ 장르인 것도 여름이 인생의 청춘을 대표하는 가장 풋풋하고 싱그럽고 푸른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번째 뜻풀이와 용례는 여름과 전혀 상관없다. 온라인에 떠도는 뜻풀이와 용법을 그대로 옮기면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써놓고도 문장 끝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그럴싸하게 보인다” “정말 개빡치는 일도 끝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낭만이 된다”고 한다. 두 번째 용례를 즐겨 쓰는 Z세대의 심리는 아마도 ‘비아냥’과 ‘바람’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