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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흑돼지보다 뷔페가 합리적"…제주에 '호캉스' 열풍 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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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지난 3일 현충일 연휴를 앞두고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가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현충일 연휴를 앞두고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가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익숙한 여행지 제주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2년 넘게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호텔을 중심으로 새로운 여가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활력을 불어넣었다.

최단기간 600만 돌파 

20일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제주를 찾은 내국인 관광객은 휴일인 지난 19일 기준 636만3429명으로 1년 전보다 26% 이상 증가했다. 내국인 기준으로 500만명 돌파(5월20일), 600만명(6월11일) 돌파 등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관광객이 늘고 있다. 해외여행이 여전히 정상화하지 않은 가운데 억눌린 여행 수요가 제주로 몰렸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코로나 상황이 끝나더라도 제주도를 찾는 내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2년 사이 국내·외 특급호텔들이 앞다퉈 제주에 들어서는 게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고급호텔 격전지 된 제주 

신호탄은 그랜드하얏트 제주가 쏘아 올렸다.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 12월 제주 드림타워에 문을 연 이 호텔은 제주에선 찾아보기 힘든 ‘도심형’ 복합리조트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5~10분 거리 시내에 있지만 지상 38층의 높이 덕에 바다와 한라산이 한 눈에 보인다.
서귀포 중문관광단지도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1월 그랜드조선 제주가 개장했고, 롯데호텔 제주는 최근 수영장 등 주요 부대시설을 재단장했다. 다음달 22일엔 파르나스호텔 제주가 옛 하얏트리젠시 제주 자리에 새롭게 문을 연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 밖에 올해 JW 제주 리조트앤스파, 반얀트리 카시아 리조트 등이 개장하고 오는 2024년엔 고급 리조트 전문기업 아난티의 호텔·리조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코로나 끝나고 외국인들 모시려고 짓냐고요? 외국인도 오시겠지만 기본적으로 제주는 내국인이 주 고객이에요. 코로나 전에도 국내 관광객 비중이 대략 90%였어요.” 호텔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앞으로도 국내 고객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라산·만장굴’ 아성 깨진다

특급호텔들의 잇단 투자는 국내 호캉스(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 문화의 확산과 큰 관련이 있다. 제주도 예외가 아니다. 제주관광공사의 내국인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주여행에서 자연경관을 가장 고려한다는 답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75.1%에서 지난해 38.9%로 대폭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휴양·휴식 자체가 큰 이유라는 답은 17.4%에서 35.9%로 크게 늘었다. 음식·미식탐방을 꼽은 비율이 3배 가까이 늘었으며 2년 전만 해도 미미했던 숙박이나 쇼핑에 대한 관심도 급부상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랜드하얏트 제주 8층에 마련된 야외수영장에서 이용객들이 석양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롯데관광개발]

그랜드하얏트 제주 8층에 마련된 야외수영장에서 이용객들이 석양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롯데관광개발]

제주에서 만난 이재화(36·서울)씨는 “최근 큰 프로젝트가 끝나서 운전하거나 돌아다니지 않고 호텔에서 푹 쉬는 게 목적”이라며 “창밖으로 제주의 하늘과 바다가 보여 충분히 기분이 좋다”고 했다. 자연명소 관광이 중심이고 숙박은 부차적인 요소로 여겨졌던 제주여행에서 호텔의 중요도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랜드하얏트 제주 38층에 있는 '라운지38' 바에서 내려다 본 풍경. [사진 롯데관광개발]

그랜드하얏트 제주 38층에 있는 '라운지38' 바에서 내려다 본 풍경. [사진 롯데관광개발]

호캉스 문화는 고급호텔 선호로 이어지고 있다. 6월 현재 제주에는 5성급 특급호텔 15곳이 있다. 성수기엔 대부분 1박에 40만원이 넘지만 본격적인 휴가철을 앞두고 평균 70~80%의 높은 예약률을 보인다. 신한카드 카드사용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에서 4성급인 1급호텔 소비는 2019년보다 43% 줄어든 반면 특급호텔은 65% 증가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더 크게…30% 이상이 ‘스위트룸’

최근 선보인 특급호텔들의 특징은 대형화·개인화로 요약된다. 그랜드하얏트 제주의 경우 1600개 객실 전체가 침대에 별도의 응접실이 있는 스위트급이다. 14개의 레스토랑과 바가 있어 입맛과 분위기에 따라 음식과 주류를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제주 시내 한가운데 떠 있는 수영장과 스파, 각종 카페와 쇼핑몰까지 있어 한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설계됐다. 대부분 내국인 고객인데도 6월 주말 기준 1000실 안팎으로 객실이 차고 있다.
친구와 이 호텔을 찾은 김지선(35·서울)씨는 “제주에서 갈치구이 한 끼만 먹어도 두 사람이면 7만원이 넘고 흑돼지나 회는 더 비싸다”며 “호텔 패키지로 뷔페와 맥주와 와인 등을 무제한으로 즐기는 게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랜드하얏트 제주의 '코너 스위트' 내부 모습. [사진 롯데관광개발]

그랜드하얏트 제주의 '코너 스위트' 내부 모습. [사진 롯데관광개발]

파르나스호텔 제주 외관 모습. 왼쪽 신관 전체를 스위트급 객실로 채웠다. [사진 파르나스호텔]

파르나스호텔 제주 외관 모습. 왼쪽 신관 전체를 스위트급 객실로 채웠다. [사진 파르나스호텔]

옛 하얏트리젠시 제주 자리에 문을 연 파르나스호텔 제주도 건물 2개 동 중 한 개를 스위트룸으로 채워 전체 307개 객실 중 27%가 스위트급이다. 그랜드조선 제주 역시 248개 객실 중 스위트급 객실이 72실(29%)이다. 특히 어린이 특화객실로 재단장한 ‘더 스위트’(약 81평)의 경우 1박에 200만원이 넘는데도 7~8월 중 절반이 찼다.

그랜드조선 제주의 '더 스위트' 어린이방. 2층 침대 계단 뒷쪽의 통로를 통해 어른용 방과 연결된다. [사진 조선호텔앤리조트]

그랜드조선 제주의 '더 스위트' 어린이방. 2층 침대 계단 뒷쪽의 통로를 통해 어른용 방과 연결된다. [사진 조선호텔앤리조트]

뷔페보다 ‘라운지’가 좋은 이유  

롯데호텔 제주 라운지의 '와인&위스키바' 모습. 이소아 기자

롯데호텔 제주 라운지의 '와인&위스키바' 모습. 이소아 기자

호텔 부대시설도 개인의 경험이나 공간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재정비하고 있다.
롯데호텔 제주는 간단한 식사나 음료를 제공하는 ‘더 라운지앤바’를 에스프레소바, 와인&위스키바, 식사용 별실 등으로 세분화했다. 야외수영장에도 공개적인 선베드 외에 별채를 만들었다. 올 하반기엔 언제든 제주 숲길을 느낄 수 있는 호텔 내 야외 정원도 선보일 계획이다.
 최명훈 롯데호텔 제주 매니저는 “코로나 이후 국내에서도 이국적인 곳, 안전하고 프라이빗한 여행을 선호하는 고객들이 늘고있다”며 “호텔에만 머물러도 제주의 자연·음식·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롯데호텔 제주의 야외 수영장 '해온'. 국내 최대 규모 온수풀이다. 이소아 기자

롯데호텔 제주의 야외 수영장 '해온'. 국내 최대 규모 온수풀이다. 이소아 기자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제주도는 관광 인프라가 충분히 쌓여 이제 자연과 럭셔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며 “심적 부담 없이 해외 못지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고급 시설들이 점점 각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텔들도 어떻게 제주의 특색과 전통이 함께 살아나도록 접목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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