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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냉골학대' 분노 부른 판결…"XXX 사퇴" 판사 이름 깠다 [이슈추적]

중앙일보

입력

양부모의 학대로 피해아동의 머리에 생긴 상처에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고 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양부모의 학대로 피해아동의 머리에 생긴 상처에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고 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학대 양부모, 1심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경남 김해에서 발생한 ‘입양아 냉골학대’ 사건의 1심 재판부가 학대 양부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자 아동보호·의사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판결을 놓고 “솜방망이 처벌”이란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판사의 이름까지 적시하며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20일 성명서를 내고 “아이가 가해자들에게 돌아가 결국 사망에 이르러야, 그때서야 제대로 가해자들을 단죄하겠다고 나설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해당 판사를 향해 “즉각 사직하라”고 했다.

한국지역아동센터협의도 “아동학대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가해자들로부터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는 경우 정인이 학대 사건에서 보았듯이 결국 사망에 이르러서야 끝난다”며 “즉시 법관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가 잇따라 성명을 낸 것은 최근 ‘입양아 냉골학대’ 사건의 1심 판결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다. 앞서 창원지법은 지난 17일 아동복지법 위반(유기방임 등) 혐의로 기소된 40대 양부모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아동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명목으로 어린 피해아동을 사실상 배제·고립시켜서 희생하게 하는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부모로서 기본 의무를 저버렸다”면서도 “현재 부양이 필요한 미성년 자녀(피해아동 이외)가 한 명 더 있고, 이전에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20년 12월 양부모와 분리되기 직전, 피해아동이 신고 있던 신발. 밑창이 다 닳아 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2020년 12월 양부모와 분리되기 직전, 피해아동이 신고 있던 신발. 밑창이 다 닳아 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피해아동, “얼어 죽기 싫다” 양부모 신고 

입양아 냉골학대는 2020년 12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A군이 경남 김해시의 한 경찰 지구대에 양부모를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당시 양부모는 A군이 태어난 2010년부터 입양해 양육해왔지만 A군이 학교 등에서 말썽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양모와 불화가 계속되자, 2020년 2월 A군을 양부가 임차한 빌라 원룸에서 살게 했다.

이후 A군은 2020년 12월까지 1년 가까이 원룸에서 부모 없이 홀로 지냈다. 양부모는 직선거리로 약 450m 떨어진 아파트에서 살면서 하루 1번씩 원룸에 들러 음식을 제공하기만 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양부는 원룸의 보일러를 틀어주지 않고, 찬물로 A군을 씻게 한 ‘냉골학대’를 했다. A군이 “날씨가 춥다. 온수를 틀어 달라”고 해도 “군대 사람들은 원래 찬물로 씻고 추운 것을 훈련한다”며 보일러를 틀어주지 않았다. 버티다 못한 A군은 “얼어 죽기 싫다”며 경찰에 양부모를 신고했다.

양부모는 냉골학대 외에도 정서적 학대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양모는 2020년 4월 초에서 5월 하순 사이 점심때 A군이 지내는 원룸을 들러 점심을 차려주면서 책으로 머리를 때렸다. “평소 말을 듣지 않고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A군에게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 마라, 나가서 들어오지 마라, 야이 X잡 쓰레기야”라고 욕설도 했다.

피해아동이 재판부에 쓴 편지. 과거 아동학대 피해사실을 학교 교사에게 말했지만, 양모가 시켜 '선생님이 잘못했다'라는 취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피해아동이 재판부에 쓴 편지. 과거 아동학대 피해사실을 학교 교사에게 말했지만, 양모가 시켜 '선생님이 잘못했다'라는 취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아동보호·의사단체 “솜방망이 처벌, 가정복귀 암시”

1심 판결 내용이 알려지자 아동보호·의사 단체는 20일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판 성명을 냈다. 특히 재판부가 “피해아동의 정서적 치료를 위해서는 향후 보호기관 및 전문가와의 협의 하에 피고인들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판시한 것에 대해 “피해아동의 원가정복귀를 암시한다”며 반발했다.

재판 과정에서 엄벌탄원서를 내는 등 강력 처벌을 주장해 온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반복된 범죄행위에 대해 집행유예의 솜방망이 처벌로도 모자라 부모가 아이 치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가정 복귀를 암시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도 같은 날 “아동을 학대행위자로부터 분리하고 보호하는 아동학대예방사업의 근간을 뒤집는 판결”이라며 “아동학대행위자 입양부모의 자격박탈에 대한 논의는커녕 심각한 학대후유증이 있는 아동을 학대 행위자에게 다시 보호시키고자 한다는 판결”이라고 했다. 청소년복지학회, 한국아동단체협회,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미혼모가족협회, 미혼모네트워크도 향후 공동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앞서 2017년에도 “A군이 양모의 학대로 온몸에 멍이 들고 갈비뼈가 붓는 학대를 당했다”며 ‘파양 조치’ 등 학대 양부모와의 영구적인 분리를 주장해왔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피해 아동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이중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5월 25일 재판부에 ‘정서적 학대로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다’라는 요지의 전문가의견서를 보내면서 “피해자를 가해자들로부터 영구적으로 분리하는 조치(파양 등)가 분명히 필요하다”고 했다.

창원지방법원 전경. 사진 창원지방법원 홈페이지

창원지방법원 전경. 사진 창원지방법원 홈페이지

법조계 “친생자로 신고돼 있어 파양 조치 안 돼”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의 경우 당장 파양은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양부모가 2010년 A군을 입양하면서 친생자로 출생신고를 해서다. 민법상 양부모가 입양아를 학대 또는 유기할 경우 검사가 가정법원에 파양을 청구할 수 있지만, 친생자로 기록돼 있어 파양 절차 자체를 밟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검찰 측 설명이다.

창원지검 관계자는 “결국 양친자관계를 해소하려면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거쳐야 한다”며 “그럴 경우, 현재 미성년인 피해아동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시설의 장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 후견인 자격으로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A군이 머물고 있는 경남의 한 아동보육시설 관계자는 “피해아동이 스스로 판단해 원하면 해당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피해아동이 원하지 않으면 향후에도 원가정으로 복귀되지 않기 때문에 급하게 진행하기보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며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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