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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5년간 해외수주 0…'원전 국대' 꾸린다, 제일 먼저 갈 곳 [원전 강소기업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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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탈원전 여파는 한국형 원전의 수출길도 막았다. 탈원전에 따른 원전 산업 생태계 위축이 원전을 수입하려는 국가에도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줬기 때문이다. 원전 수출에 적극적인 윤석열 정부는 범정부 조직과 한·미 원전 동맹을 바탕으로 수출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다만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달라 주도권의 적절한 배분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원전 5년에 해외 수주는 ‘0’

한국이 처음으로 수출에 성공한 UAE 바라카 원전 공사 현장. 중앙포토

한국이 처음으로 수출에 성공한 UAE 바라카 원전 공사 현장. 중앙포토

2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문재인 정부 5년간 한국이 주도하는 해외 원전 사업 수주는 한 건도 없었다고 했다.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은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한국전력이 수주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2018년 8월 협상에서 빠졌다. 한국이 시공을 맡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은 2018년 11월 운영권 일부를 오히려 프랑스에 뺏겼다. 그나마 낭보를 전한 이집트 엘다바 원전은 러시아가 이미 수주한 주기기 등 핵심 1차 계통을 뺀 2차 계통 사업이라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는 최근 원전 수출 부진에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원전은 건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과 유지 관리까지 50~100년이 걸리는 장기 사업이다. 이 때문에 기술이전과 관리 능력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탈원전으로 원전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 수입국에는 불안 요소로 보일 수밖에 없다. 주한규 서울대 핵공학과 교수는 “미국이 원전 산업계가 무너지면서 부품 조달 비용 등이 급격히 올라가며 경쟁력을 잃었다”면서 “산업 생태계를 위축시키는 한국의 탈원전 정책이 수입국 입장에서 좋게 보일 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국가대표’ 수출 돌파구 찾는다

정부의 소극적 태도도 한몫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원전 수출은 국가 대항전으로 불릴 만큼, 경제·외교적 역량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원전에 부정적이었던 문 정부에서는 원전 관련 부처와 기관 일부를 제외하고는 원전 수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원전 10기 수출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과거와 달리 범정부가 참여하는 ‘원전 수출 전략 기획단’을 꾸려 수주전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최근 정부는 ‘원전 수출 전략 기획 준비단’을 출범했는데, 기획재정부·외교부·방사청 등 원전과 직접 연관성이 없는 조직까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원전 수출을 위한 일종의 ‘국가대표’ 조직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다양한 부처가 기관이 참여하는 것은 과거와 달리 원전 수출에 국가 전체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예컨대 2008년 UAE 바라카 원전 수출 사례에서도 보듯 원전 수입국은 원전 외에 외교·군사적 지원을 추가로 바랄 때가 많다. 실제 정부가 최근 원전 수출에 공들이고 있는 체코와 폴란드는 한국과 방산 협력을 원하는 곳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 수출은 한마디로 대통령의 비즈니스인데, 금융·외교·문화·교육·군사 등 다방면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면서 “정부가 이왕 범정부 조직을 꾸리기로 했으니, 대통령 주도하고 민간도 참여하는 조직을 만들어 원전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양날의 검 ‘원전 동맹’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용산 대통령실 청사 강당에서 한미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미 정상은 원전 동맹을 주요 의제로 논의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용산 대통령실 청사 강당에서 한미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미 정상은 원전 동맹을 주요 의제로 논의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정부는 수출 대응 범정부 조직 외에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원전 동맹을 수출 활성화에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원전 수출 1위였던 러시아가 최근 전쟁으로 경쟁력이 약화한 만큼 한·미 원전 동맹의 효과를 더 극대화할 수 있다. 특히 수출에 있어 중요한 외교력을 미국과 동맹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동유럽은 미국이 영향력을 더 미칠 수 있는 지역이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맺으면서, 수주 경쟁 상대가 프랑스 한 곳으로 좁혀진 점도 긍정적이다. 다만, 주도권을 놓고 적절한 양국의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미국이 자신의 원전을 수출하는데 한국이 건설·제작만 참여하는 구조라면, 한국이 독립적으로 원전 수주전에 뛰어드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나을 수 있어서다.

SMR(소형모듈원전) 같은 차세대 원전 기술 확보와 상용화에도 미국과 동맹을 잘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SMR은 세계적으로 미국만 유일하게 상용화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이 이번 원전 동맹을 통해 독자적 SMR 상용화에도 성공한다면, 미래 원전 수출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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