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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후남의 영화몽상

아이들이 연기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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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후남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영화 ‘브로커’에는 가족이 아닌데 가족인 것처럼 뭉쳐 다니는 이들이 나온다. 겉보기에는 세탁소 주인인데 실은 불법 입양을 주선하는 브로커 상현(송강호), 그와 손잡고 베이비박스의 아기를 빼돌리는 동수(강동원), 베이비박스 앞에 아기를 두고 갔다가 하루 만에 다시 찾으러 온 미혼모 소영(이지은)과 소영의 아기 우성(박지용)이다. 소영이 우성에게 새 부모를 찾아주는 데 동의하면서 세 어른과 한 아기는 입양을 원하는 후보자들을 만나는 여정에 오른다.

그리고 도중에 끼어드는 멤버가 있으니, 보육원생 해진(임승수)이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해진은 보육원 탈출을 수없이 감행하고 다시 붙들려오기를 반복한 점에서 문제아 같지만, 쉽게 주눅 들지 않는 활달한 아이다. 특히 자기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야말로 해맑은 어린아이다. 보육원에 들른 상현과 소영을 부부라 여기며 자기를 입양해 달라고 하는 것부터 어른들의 허를 찌른다. 이후로도 해진은 계산된 것 같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스크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세 어른과 두 아이가 유사 가족처럼 나오는 영화 ‘브로커’. [사진 CJ ENM]

세 어른과 두 아이가 유사 가족처럼 나오는 영화 ‘브로커’. [사진 CJ ENM]

이 영화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역 배우들에게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내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여러 산문집에서도 밝혔다시피 그는 아역배우에게는 대본을 주지 않는다. 글로 쓰인 대사를 달달 외우게 하는 대신 현장에서 그때그때 말로 알려준다. 전체 줄거리를 미리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아이들은 어느 순간 그 이야기를 본인 나름대로 이해하게 돼요. 그러다가 ‘아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이렇게 자발적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그에 따라 행동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가 지난해 출간된 산문집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에 수록된 평론가 정성일과 대담에서 한 말이다. “기본적으로 촬영이 재밌다고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것” “아이의 적성에 맞게끔 방식을 바꿔나가는 것”에 대한 강조는 영화감독이 아니라 교사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의 영화 중에 ‘아무도 모른다’는 연기가 처음이었던 아역 배우 아기라 유야에게 2004년 칸영화제 트로피를 안겨줬다. 개인적으로 무척 감동한 영화였지만, 14세 소년에게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시상한 심사위원단의 판단은 의구심이 들었다. 어린 배우가 짊어지기에 너무 큰 스포트라이트를 안겼단 점에서다.

이후 18년 만에 아시아 배우로 다시 남우주연상을 받은 사람이 ‘브로커’의 송강호다. 아역들에게 촬영현장이 재밌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감독은 앞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브로커’ 때도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를 신경 쓰지 않고 함께하고 있는 배우들과 소통하는 데 익숙해지고 즐거워하고 있으면 아주 잘 됩니다.” 그나저나 우성 같은 갓난 아기를 찍을 때도 감독만의 방법론이 있었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