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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휘어도 대치동 포기 못해…고물가 시대 서글픈 ‘에듀푸어’

중앙일보

입력

서울 강동구에서 고등학교 3학년 딸을 키우는 이모(47)씨는 최근 자녀의 여름방학을 앞두고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물가가 올라 생활비 지출을 줄이는 와중에 학원에서 여는 ‘방학 집중특강’ 등으로 자녀의 사교육비는 늘어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얼마 전 과외를 하나 그만뒀는데도 사교육비로만 한 달에 300만원이 넘게 나간다. 특강 수강료에 교재비까지 합하면 100만원은 더 든다”면서도 “수험생 부모도 ‘고3 1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우려 속 물가 인상이 이어지면서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입시를 위해서라면 가계 출혈을 감수하면서 고액 학원으로 자녀를 보내겠다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 일각에선 가계 형편이 나쁜데도 자녀 사교육에 무리하게 돈을 쓰는 ‘에듀푸어(Edu-poor)’가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시행된 2022학년도 수능 채점결과를 발표한 9일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 앞.    연합뉴스

지난해 시행된 2022학년도 수능 채점결과를 발표한 9일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 앞. 연합뉴스

대치동 80만원 특강, 하루 만에 마감

지난 3일 한국은행이 6~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5%대로 예상하면서 고(高)물가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여름방학 특수’를 앞둔 학원가엔 큰 타격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교육의 메카’로 통하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양천구 목동, 성남 분당구 일대 학원들은 이달 초 방학을 앞두고 특강을 개설한다는 공지를 일제히 올렸다. 대치동의 한 수학학원에 개설된 수강료 80만원 ‘과외식 특강’은 공지가 올라온 다음 날 마감됐다고 한다.

성남 분당구의 고등학교 3학년생 학부모 신모(49)씨는 “원래도 아이 학원비가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이었는데 수능이 다가오면서 부담이 더 커졌다. 식비나 다른 생활비를 줄이는 식으로라도 교육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교육계가 학부모와 수험생의 불안을 이용해 과도한 이익을 챙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 목동의 학원으로 재수생 자녀를 등원시키는 한 50대 학부모는 “학원에서 교재를 만들 때마다 몇십만원을 더 내라고 하는데 인상분의 근거가 없다. 생필품 비용은 아껴도 자녀 교육비는 못 아끼는 부모 마음을 볼모 삼아 횡포를 부린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학력 저하 불안에 사교육비 역대 최고치

사교육 참여율 및 주당 참여시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사교육 참여율 및 주당 참여시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교육부에 따르면 코로나 불황이 지속한 지난해에도 사교육비 총액은 23조 4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고등학생의 경우 64만 9000원으로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았다. 코로나 시국에도 사교육 시장은 건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까지 학교에서 비대면 수업이 이뤄지면서 자녀의 학력 저하를 걱정하는 부모가 늘어난 것도 사교육비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강남구의 한 학원 관계자는 “학교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다 보니 상담 때 전국단위 시험 성적 하락을 걱정하는 학부모가 많아졌다. 학원 자체 모의고사 응시생도 예년보다 대폭 늘었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난 10여년 간 0교시 폐지와 시험 금지 등 공교육의 역할이 줄어들게 한 정책들 때문에 사교육 수요가 늘어났다. 사교육비를 인위적으로 줄이거나 법으로 금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고 진단했다. 이어 “공교육과 사교육이 공존할 수 있게 학교와 학원이 계약을 맺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수강료 바우처를 지급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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