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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금리 역전 초읽기…과거 역전기, 오히려 해외 자금 유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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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발점은 같아졌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이야기다. 긴축에 가속을 올리는 미국이 한국을 앞지르는 건 시간문제다. 당장 다음 달 한·미 금리 역전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돈이 흐르는 속성상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는 커진다. 다만 과거 금리 역전기의 사례를 볼 때, 오히려 자본이 유입된 만큼 심각한 자본 유출은 없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 15일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자이언트 스텝)하며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1.5~1.75%가 됐다. 금리 상단이 한국의 기준금리(연 1.75%)와 같다. 한은이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더라도, Fed가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 금리는 역전된다.

한국이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 미국이 빅스텝(0.5%포인트 인상)에 나서도 미국 금리가 한국을 앞지르게 된다. 금리 역전뿐만 아니라 격차도 더 벌어질 전망이다. Fed가 공개한 점도표 상 올해 연말 금리 수준은 연 3.4%로, 금융권에서 예측하는 올해 연말 한국의 기준금리 수준(연 2.75~3%)보다 높은 상황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1.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1.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통상 자본은 더 많은 수익률을 좇아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자본 유출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다만 과거 한·미 금리 역전됐던 3번의 시기에는 오히려 외국인 자본이 순유입됐다.

LG경영연구원과 한은 통계 등에 따르면 금리 역전 기간 외국인들의 증권투자자금(주식+채권) 유출입은 ▶1999년 6월~2001년 3월(+174억 달러) ▶2005년 8월~2007년 8월 (+347억 달러) ▶2018년 3월~2020년 2월 (+165억4000만 달러) 등으로 모두 순유입을 기록했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금리 역전에도 자본이 빠져나가지 않는 데는 여러 요소가 섞여 있다. 우선 국가 간 자본 이동에는 환율도 중요한 고려 요인이다. 외국인이 한국의 채권·주식을 사고팔 때는 달러화→원화→달러화로 바꾸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원화 강세(환율 하락) 흐름이면 금리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환차익으로 이를 메울 수 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원화 가치 상승(환율 하락)에 대한 기대가 형성될 경우, 외국인 자금 유출이 억제될 수 있다”며 “반대로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에 대한 전망이 확산될 경우, 외국인 자금 유출이 가속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국의 경제 상황이나 반도체 경기 등도 자금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중국 경제 상황도 외국인 자본 유출의 주요 변수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 리스크가 부각됐던 2015년 7~12월에는 195억 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는 세계금융위기인 2008년 6~11월 347억 달러가 유출된 뒤 최대 규모다.

지난 4월 한은 금통위 의사록에도 “중국의 금융 불안이 심화했던 기간에 국내에서 외국인 자금이 유출됐던 사례가 있다”며 “내외(한미)금리차 문제와 중국 성장 둔화에 따른 금융 불안 이슈가 중첩될 경우 그 여파가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한은은 금리 역전이 발생하더라도 단기간에 외국인 자본이 급속히 빠져나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는 지난 9일 “소비 회복세와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는 등 우리나라 펀더멘털(기초 체력)을 고려했을 때 급격한 자본 유출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채권자금의 경우 단기성 자금보다 장기투자 성격이 강한 해외 중앙은행 및 국부펀드 자금이 많다는 것도 급격한 자본 유출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다만 최근 외국인 자본은 한국 시장에서 꾸준히 빠져나가고 있다. 주식 시장에서는 '셀코리아'가 한창이다. 2021년에 174억4000만 달러어치를 자금을 빠져나갔고, 올해에는 지난달까지 95억200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채권 시장으로 들어오는 자금도 감소 추세다. 채권 투자 자금 유입 규모는 지난 1월(31억6000만 달러), 2월(34억9000만 달러)에서 3월(5억4000만 달러), 4월(4억7000만 달러), 5월(20억6000만 달러)로 줄었다. 지난해 채권시장에는 외국인 자금 561억5000만 달러가 순유입됐다.

미국의 빠른 긴축 속도도 부담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미국 통화정책 정상화의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단기간에 가파른 금리 인상(9분기에 걸쳐 기준금리 총 4.25%포인트 인상)이 이뤄지는 시나리오가 발생할 경우, 외국인 자본 유입은 평소보다 420억 달러 줄어들게 된다. 통상적으로 18개월 동안 평균 329억 달러의 외국인 자본이 순유입되는데 해당 시나리오 때는 같은 기간 동안 90억 달러가 순유출된다는 추정을 토대로 낸 결과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자본이 이동할 때는 환전 수수료 등 이동에 따른 비용이 수반되는 데다 환율 등 다양한 고려 요소가 있는 만큼 단기간 소폭의 금리 역전만으로 대규모 자본 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다만 양국 간 금리 차가 장기간 상당 폭으로 벌어질 경우 자본유출이 심해질 수 있는 만큼 한은도 꾸준히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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