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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찬노숙' 극한의 바이크패킹…한반도 536㎞ 산길 내달리다 [포토버스]

중앙일보

입력

코리아에픽라이드 참가자들이 강원도 정선 가덕산 임도를 달리고 있다. 사진 코리아에픽라이드

코리아에픽라이드 참가자들이 강원도 정선 가덕산 임도를 달리고 있다. 사진 코리아에픽라이드

#극한의 바이크패킹, 코리아에픽라이드에 참가하다

강원도 양양에서 경북 영덕까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따라 산악 536㎞, 총 상승고도 2만1000m(에베레스트 높이 2.3배)를 자전거로 달리는 ‘코리아에픽라이드’가 지난 5일 강원도 양양군 현북리 면옥치야영장에서 열렸다. 외부의 도움 없이 라이더 스스로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며 며칠을 달려야 하는 바이크패킹(자전거 야영) 이벤트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임도를 달리고 있는 기자. 나뭇가지에 카메라를 고정시킨 후 셀프타이머로 촬영했다. 김성룡 기자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임도를 달리고 있는 기자. 나뭇가지에 카메라를 고정시킨 후 셀프타이머로 촬영했다. 김성룡 기자

평소 자전거를 즐겨 타며 바이크패킹에 관심이 많던 기자는 지난해 말 이벤트 공지를 보자마자 참가를 결정했다. 이날 출발지에 모인 참가자는 모두 30여 명. 자전거에 매단 짐들이 만만찮다. 기자의 자전거에도 텐트와 침낭, 버너, 식기, 여벌의 옷, 자전거 수리 도구 등 5개의 가방이 달렸다. 무게는 모두 합쳐 12㎏이 넘었다. 시작부터 3일간 계속된 비, 고산지대의 추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떨어지지 않던 졸음. 낯선 산속에서의 노숙 등 기자의 코리아에픽라이드 이야기가 지금 출발한다.

코리아에픽라이드 530km 정체 경로와 고도표. 김성룡 기자

코리아에픽라이드 530km 정체 경로와 고도표. 김성룡 기자

코리아에픽라이드 출발 지점인 강원도 현남면 면옥치야영장에 대회 하루 전 날 도착한 참가자들이 야영을 하고 있다. 사진 코리아에픽라이드

코리아에픽라이드 출발 지점인 강원도 현남면 면옥치야영장에 대회 하루 전 날 도착한 참가자들이 야영을 하고 있다. 사진 코리아에픽라이드

주최측에서 배포한 GPS 트랙을 바탕으로 코스 공략을 위해 만든 메모. 식사를 할 수 있는 곳과 각 산들의 정상 부분이 표시돼 있다. 김성룡 기자

주최측에서 배포한 GPS 트랙을 바탕으로 코스 공략을 위해 만든 메모. 식사를 할 수 있는 곳과 각 산들의 정상 부분이 표시돼 있다. 김성룡 기자

#D-1 준비된 자들이 모여들다

대회 신청(올해 1월 1일) 후 5개월 동안 차곡차곡 준비한 짐들을 자전거에 매달고 양양으로 향했다. 캠핑 경험도 전혀 없는 기자에게 바이크패킹은 설렘만큼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출발은 다음 날(5일) 오전 8시. 해 질 녘에 출발지인 양양 면옥치야영장에 도착해 텐트를 설치하고 주최 측이 마련해 준 간단한 식사를 했다. 이번 대회 참가자는 총 30명, 이 중 풀코스는 기자를 포함 16명, 나머지 14명은 그보다 짧은 109㎞를 달린다. 다른 사람들의 자전거와 텐트, 가방 등 장비를 살펴봤다. 자전거는 대부분 산악자전거였고 ‘오프로드용 로드바이크’인 그래블(Gravel)도 몇 대 눈에 띄었다. 내일 오전 출발을 위해 1인용 텐트에 들어가 눈을 감았다. 땅 위에 등을 맞댄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코리아에픽라이드 참가자들이 출발지인 강원도 양양 면옥치야영장을 출발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코리아에픽라이드 참가자들이 출발지인 강원도 양양 면옥치야영장을 출발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코리아에픽라이드 첫날 박종하 씨가 양양군 미천골 임도를 달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코리아에픽라이드 첫날 박종하 씨가 양양군 미천골 임도를 달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어두운 산길. 라이트가 꺼지면 주위는 암흑세계로 변한다.김성룡 기자

어두운 산길. 라이트가 꺼지면 주위는 암흑세계로 변한다.김성룡 기자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 속 정자에서 첫날 밤. 비가 들이치는 줄도 모르고 단잠을 잤다. 김성룡 기자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 속 정자에서 첫날 밤. 비가 들이치는 줄도 모르고 단잠을 잤다. 김성룡 기자

#1일 차 : 밀려오는 졸음에 앞바퀴가 비틀 거렸다

강원 양양~강릉시 성산면(누적 137㎞)
드디어 출발이다. 면옥치야영장을 나서 곧바로 임도로 진입했다. 첫 코스는 경치 좋기로 유명한 미천골임도.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모두 각자의 페이스로 라이딩에 나섰고, 다시는 길 위에서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첫날 라이딩 목표는 최소 150㎞에서 최대 200㎞였다. 2일 차엔 200~250㎞, 3일 차엔 130㎞를 탄 뒤 영덕 버스터미널에서 서울로 출발한다는 게 함께 라이딩에 나선 박종하 씨와 나의 계획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계획은 첫날부터 실패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르막은 높았고, 그만큼 진행 속도는 더뎠다. 목표를 146㎞ 지점인 강릉 성산면까지 가는 거로 수정을 했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속도는 더욱 느려졌다. 비를 맞으며 라이트 불빛에 의존해 산을 오르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졸음이 밀려왔다. 똑바로 가야 할 자전거 앞 바퀴가 졸음에 좌우로 비틀거렸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더 이상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던 그때, 어둠 속에서 정자 하나가 나타났다. 비를 막아줄 수 있는 정자는 이런 날 최고의 야영지다. 젖은 옷을 벗어 정자 가운데 펼쳐놓고,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은 채 침낭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삼척시 하장면 광동호 주변 도로를 달리는 박종하 씨. 김성룡 기자

삼척시 하장면 광동호 주변 도로를 달리는 박종하 씨. 김성룡 기자

비를 맞으며 강릉시 성산면 임도를 달리는 박종하 씨. 김성룡 기자

비를 맞으며 강릉시 성산면 임도를 달리는 박종하 씨. 김성룡 기자

이틀 동안 내린 비를 맞고 망가져버린 자전거용 GPS 기기(왼쪽)와 자작한 휴대폰 거치대. 김성룡 기자

이틀 동안 내린 비를 맞고 망가져버린 자전거용 GPS 기기(왼쪽)와 자작한 휴대폰 거치대. 김성룡 기자

#2일 차 : 비 맞은 GPS, 오작동으로 갈 길을 잃다

강원 강릉시 성산면~삼척시 하장면(일일 124.8㎞, 누적 261.8㎞)
오전 5시 새들의 지저귐에 눈이 떠졌다. 바람이 분다. 비가 들이쳐 텐트와 침낭이 젖어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그런 줄도 모르고 잠만 잘 잤다.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산에서 내려간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약 9㎞를 달려 성산면에 도착,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준비한 레인 재킷이 비를 온전히 막아주지 못했다. 편의점에서 우비를 산 다음 아랫단을 조금 잘라 걸쳤다. 이날 최종 목적지는 누적 261㎞ 지점인 삼척시 하장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간에 보급이 가능한 곳은 누적 195㎞ 지점의 작은 가게 하나뿐. 도착해보니 가게는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 컵라면을 팔았지만 뜨거운 물은 제공이 안 된다고 해서, 가게 한쪽에 버너를 설치하고 라면을 끓였다. 우비 속에 다운 재킷을 입었는데도 몸이 떨려왔다. 라면 국물을 들이켰지만, 추위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산 2개를 넘으면 하장면이었지만 그 거리는 66㎞, 앞으로 6~7시간을 더 가야 한다. 8시 이전에 하장면에 도착해 식사도 하고 정비도 할 계획이었지만 가도 가도 남은 거리가 줄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설상가상 자전거용 GPS 기기가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GPS 기기는 라이딩 중 내가 지나온 길을 저장하고, 속도와 시간 등을 기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목적지까지 길안내 기능을 수행한다. 처음 가는 길 위에서 내비게이션이 없다면 그건 완주를 할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다행히 버튼이 눌리지 않을 뿐 길안내 기능은정상적으로 작동한다. 하장면에 도착하니 밤 11시. 종일 비를 맞아 도저히 야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우리는 한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숙박시설 이용은 대회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긴 했지만, 종일 비를 맞은 상태에서 마땅히 야영할 곳을 찾지 못했다. 무엇보다 6월의 강원도는 너무 추웠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젖은 옷을 벗어 세탁기를 돌리고, 샤워기로 가방에 묻은 흙과 모래를 제거했다. 보조배터리 충전을 위해 프레임 백을 열었는데 물이 흥건했다. 외장 배터리와 전화기 충전 케이블이 작동하지 않는다. 드라이어로 GPS 기기를 말려봤지만 이젠 전원도 들어오지 않았다. 앞이 깜깜했다. 지금까지 지나온 기록이 모두 날아간 것이다. 자전거 라이더에게 라이딩 기록이 삭제됐다는 건, 여행자에게 지난 여행지에서의 찍은 사진들이 모두 사라진 것과 같은 것이다. 남들에게 라이딩을(여행지 방문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앞으로  길안내도 문제다. 그리고 GPS 기기는 비싸다. 수십만 원이 날라갔다. 정말 멘탈 붕괴다. 아직 절반도 가지 못했는데 여기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모텔 사장님이 주신 라면 2개를 끓여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의 산길을 지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의 산길을 지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임도. 길가에 열린 산딸기도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 된다. 김성룡 기자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임도. 길가에 열린 산딸기도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 된다. 김성룡 기자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에 들어섰다. 고도가 올라가니 구름 속을 라이딩하는 기분이다. 김성룡 기자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에 들어섰다. 고도가 올라가니 구름 속을 라이딩하는 기분이다. 김성룡 기자

#3일 차 : 동반자의 중도 포기, 혼자 남겨지다

강원 삼척시 하장면~경북 봉화군 석포면(일일 62.1㎞, 누적 323㎞)
오전 5시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비가 잠시 멎은 듯했다. 마음을 다잡고 남은 코스를 타기로 했다. ‘라이딩 기록’이 아니라, 실제 내가 이 길을 ‘라이딩’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이제부터는 라이딩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낙동정맥이 시작되는 삼수령(해발 935m)을 오른다. 길안내를 하던 종하 씨의 GPS 기기가 오락가락하더니 작동을 멈췄다. 석포까지는 영동선 기찻길을 따라 내려가면 되지만, 산악 구간이 시작되는 그 이후가 문제였다. 종하 씨는 라이딩 중단을 선언했다. GPS 기기  없이 진행은 무리라는 판단과 더불어 지금 속도로 완주할 경우 목요일에 있는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자전거 문제도 있었다. 프레임 가방과 시트 튜브의 마찰로 카본 재질의 튜브가 마모돼 구멍이 뚫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석포에서 멈춘 우리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남은 200㎞ 구간은 나홀로 달려야 한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에서 마주친 고랭지 배추밭. 김성룡 기자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에서 마주친 고랭지 배추밭. 김성룡 기자

경북 영양군의 자작나무 숲. 김성룡 기자

경북 영양군의 자작나무 숲. 김성룡 기자

경북 영양군 장수포천을 건너기 위해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김성룡 기자

경북 영양군 장수포천을 건너기 위해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김성룡 기자

4일째 마지막 야영지인 경북 영양읍 신기리의 한 정자에 텐트를 쳤다. 김성룡 기자

4일째 마지막 야영지인 경북 영양읍 신기리의 한 정자에 텐트를 쳤다. 김성룡 기자

#4일 차 : 큰 산 6개를 넘어야 한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영양군 영양읍(일일 147㎞, 누적 470㎞)
오전 4시 기상, 5시에 라이딩을 시작했다. 석포 제련소 때문인지 석포의 편의점은 24시간 영업을 했다. 도시락과 라면, 행동식을 잔뜩 챙겨서 반야계곡을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100㎞ 떨어진 영양군 수비면까지는 큰 산 6개를 넘어야 한다중간에 보급할 곳은 없다. 다행히 내내 내리던 비가 대회 4일째엔 그쳤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오르막 끝엔 신나는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남은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한두 번 길을 벗어나긴 했지만, 커다란 화면의 휴대폰길 안내는 오히려 GPS 기기보다 보기 편했다. 종하 씨가 떠나며 주고 간 보조 배터리도 넉넉히 남아 있었다. 혼자 가는 길은 동행이 있을 때와는 또 달랐다. 내 페이스대로 진행할 수 있었고, 온전히 나 자신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수비면에서 피니시 지점인 영덕까지 100㎞ 구간에도 보급 포인트는 없다. 참 지독하게 오지만 골라서 설계한 코스다. 먹거리든 잠자리든 라이더 스스로 해결하게 하려는 설계자의 의지가 느껴졌다. 홀로 야간 라이딩은 무리라 생각하고 해가 떨어지기 전 최대한 진행한 후 누적 470㎞ 지점인 영양읍 신기리 정자에 텐트를 펼쳤다. 큰 나무 아래 멀리 계곡이 보이는 아늑한 곳이었다. 잠자리에 누워 헤드 랜턴을 끄니 사위는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남은 거리는 약 60㎞, 오전 중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오전에 영덕에 도착해 오후에 버스를 타고 집에 갈 생각을 하니 어둠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밤이라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마지막 밤을 지낸 경북 영양읍 신기리 정자. 두 개의 큰 느티나무는 수령 250년의 보호수로 마을의 당산나무다. 김성룡 기자

마지막 밤을 지낸 경북 영양읍 신기리 정자. 두 개의 큰 느티나무는 수령 250년의 보호수로 마을의 당산나무다. 김성룡 기자

마지막 날 라이딩을 시작하기 전 챙겨둔 삼각김밥과 에너지바로 아침을 먹는다. 집에서 만들어온 드립백으로 커피도 내렸다. 김성룡 기자

마지막 날 라이딩을 시작하기 전 챙겨둔 삼각김밥과 에너지바로 아침을 먹는다. 집에서 만들어온 드립백으로 커피도 내렸다. 김성룡 기자

마지막 날 아침 경북 영덕군 창수면의 풍경. 보리가 노랗게 익었다. 김성룡 기자

마지막 날 아침 경북 영덕군 창수면의 풍경. 보리가 노랗게 익었다. 김성룡 기자

경북 영덕 풍력발전 단지 정상에서. 이제 산 하나만 넘으면 피니시다. 김성룡 기자

경북 영덕 풍력발전 단지 정상에서. 이제 산 하나만 넘으면 피니시다. 김성룡 기자

5일째 되는 날 처음으로 내 그림자를 보았다. 김성룡 기자

5일째 되는 날 처음으로 내 그림자를 보았다. 김성룡 기자

#5일 차 : 변덕스러운 건 날씨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

경북 영양읍~영덕 오천야영장피니시(일일 60㎞, 누적 536㎞)
온갖 새소리에 눈이 떠졌다. 어둑해질 때 봤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었다. 특히 정자 옆 커다란 느티나무는 수령 250년의 보호수로 마을의 당산나무였다. 좋은 기운이 느껴졌다. 영덕풍력발전단지를 포함해 산 4개를 넘으면 끝이다. 양양을 출발한 지 5일째 되던 날 태양이 만든 기자의 그림자를 처음 봤다. 태양이 작열하니 차라리 비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덕스러운 건 날씨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오후 1시 목적지에 도착했다. 손뼉 쳐주는 관중도, 대회 관계자도 아무도 없다. 살짝 허무한 마음이 든다. 대회 주최자인 엄기석 대장에게 도착 지점에서 찍은 셀카와 함께 문자 메시지로 완주 소식을 전했다. 산악 536㎞ 라이딩 중 사흘 내리 내린 비와 GPS 기기 고장, 동행하던 친구의 중도 포기 등 위기가 많았지만, 그 험한 길에서 자전거 펑크나 다리에 쥐 한 번 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 그렇게 라이딩을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보는데 저기 멀리 보이는 산과 마을의 풍경이 다 내가 지나온 길 같아서 괜스레 눈물이 났다. 줄기차게 달려온 지난 5일의 경험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상상해 본다.

드디어 도착. 5일 강원도 양양을 출발해 5일째 되는 날 피니시 지점인 경북 영덕 오천 캠핑장에 도착했다. 김성룡 기자

드디어 도착. 5일 강원도 양양을 출발해 5일째 되는 날 피니시 지점인 경북 영덕 오천 캠핑장에 도착했다. 김성룡 기자

자전거용 GPS 기기 고장으로 초반 3일 이동한 로그가 빠졌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서 피니시 지점인 경북 영덕까지 200km 라이딩의 궤적. 김성룡 기자

자전거용 GPS 기기 고장으로 초반 3일 이동한 로그가 빠졌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서 피니시 지점인 경북 영덕까지 200km 라이딩의 궤적. 김성룡 기자

자전거에 부착했던 가방들. 한꺼번에 무게를 달아보니 12kg이 넘었다. 김성룡 기자

자전거에 부착했던 가방들. 한꺼번에 무게를 달아보니 12kg이 넘었다. 김성룡 기자

#코리아에픽라이드는 계속 된다

코리아에픽라이드는 올해가 3회째다. 1, 2회는 주최자인 엄 대장이 지인들과 그룹라이딩을 한 것이었고 본격적으로 참가자를 모집해 연 이벤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극한의 코스를 설계한 이유에 대해 엄 대장은 "첫째, 한국 오지의 아름다운 길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둘째, 하루 이틀의 라이딩으로는 경험하지 못할 문제들(체력, 장비 트러블, 정신력 등)에 대한 해결 능력을 키워 일상에서 부딪히는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함을 길러주고 싶었다. 셋째, 물 한 모금도 귀한 최소화 된 상황을 만들어 그 동안의 일상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되돌아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고 밝혔다.

코리아에픽라이드를 기획하고 주최한 엄기석 대장(왼쪽)과 가장 빠른 기록으로 3박4일 만에 완주에 성공한 이수윤 씨(가운데), 유일한 여성 완주자 이성희 씨. 사진 코리아에픽라이드

코리아에픽라이드를 기획하고 주최한 엄기석 대장(왼쪽)과 가장 빠른 기록으로 3박4일 만에 완주에 성공한 이수윤 씨(가운데), 유일한 여성 완주자 이성희 씨. 사진 코리아에픽라이드

이번 라이딩을 가장 빠른 시간인 3박4일에 마친 참가자 이수윤(48) 씨는 "평소 1000㎞ 이상 해외 바이크패킹 대회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참가를 결정했다"며 "첫날 달려보니 하루 150㎞씩 달릴 수 있을 것 같아 꾸준히 달려서 결승점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유일한 여성 완주자인 이성희(53) 씨는 "너무 재밌었다. 몸이 힘든 건 당연하지만, 좋아하는 자전거와 산, 캠핑이 모두 있어 내겐 종합선물세트 같은 일주일이었다 "며 "태백 가덕산에서 비박할 때 하늘에서 쏟아지던 별을 잊을 수가 없다"고 완주 소감을 밝혔다.

2022 코리아에픽라이드 536㎞ 풀코스 참가자는 16명, 이중 완주자는 8명이다. 나머지 절반은 혹독한 날씨와 장비와 체력의 문제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완주 기록은 3박4일~6박7일까지 다양하다. 기자의 4박5일 완주는 두 번째 빠른 기록이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오르막을 오르며 '이런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해. 다시 나올 일은 없을거야' 다짐을 했지만, 내년엔 어떤 코스를 달리게 될까 벌써부터 기대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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