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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여아' 미스터리…죽은 아이-사라진 아이 '바꿔치기' 추리극 [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대법서 뒤집힌 구미여아 사건…“바꿔치기 증거 부족”

경북 구미에서 방치돼 숨진 3세 여아 친모 A씨의 첫 재판이 열린 지난해 4월 22일 오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정문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숨진 여아를 추모하기 위해 사진 앞에 차려 놓은 밥상이 눈길을 끌고 있다. 뉴스1

경북 구미에서 방치돼 숨진 3세 여아 친모 A씨의 첫 재판이 열린 지난해 4월 22일 오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정문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숨진 여아를 추모하기 위해 사진 앞에 차려 놓은 밥상이 눈길을 끌고 있다. 뉴스1

지난해 2월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3세 여아 사망사건’과 관련해 친모에 대한 징역 8년형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사건 초반 숨진 여아의 외할머니로 알려졌던 피고인이 실제로는 친모였다는 것은 인정되지만, 피고인이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바꿔치기했다는 공소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다. 법조계 안팎에선 “결국 최대 쟁점이던 ‘바꿔치기 수법’을 재판을 통해 밝혀내지 못한다면 공소유지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 16일 미성년자 약취와 사체은닉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49)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전자 감정 결과만으로 미성년자 약취라는 쟁점 공소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숨진 아이 외할머니→친모 반전 ‘미스터리’

구미 여아 사건은 1,2심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바꿔치기 한 수법이나 시기, 공범 여부 등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많았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약취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의 목적과 의도, 행위 당시의 정황, 행위의 태양(양태)과 종류, 수단과 방법, 피해자의 상태 등에 관한 추가적인 심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지난해 2월 경북 구미시 한 집에서 3세 여아가 홀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발견 당시만 해도 여아를 키우던 20대 엄마가 집에 홀로 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으로 전해졌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유전자(DNA) 검사를 한 결과 외할머니인 A씨가 숨진 아이 친모로 드러났다.

당초 외할머니로 알려진 A씨가 숨진 아이의 친모라는 반전은 곧 여러가지 의문점을 낳게 된다. 우선 ‘숨진 아이의 친부가 누구냐’는 의문이 쏟아졌다. A씨의 딸 B씨(23)가 친모로 알려졌을 때 친부는 당연히 B씨와 2020년 이혼한 전 남편으로 여겨졌다.

지난해 8월 17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열린 경북 구미 3세 여아 사망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은 '친모' A씨가 법원을 떠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8월 17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열린 경북 구미 3세 여아 사망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은 '친모' A씨가 법원을 떠나고 있다. 뉴스1

정황증거만 상당수…‘직접증거’는 없어

하지만 DNA 검사 결과 친모가 B씨의 모친인 A씨로 밝혀지면서 수사는 반전을 맞게 된다. 경찰은 우선 친부를 찾기 위해 주변 남성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DNA 검사를 진행했다. 구미와 인근 지자체 산부인과 100여 곳도 압수수색했지만 특별한 단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A씨가 B씨의 딸과 자신의 딸을 바꿔치기했다면 B씨가 낳은 자식이 어디에 있는지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경찰은 B씨가 낳은 자식의 행방을 찾는 데도 수사력을 쏟았지만 이마저도 밝혀내지 못했다. A씨 남편이나 딸 B씨 등 가족들도 모두 A씨가 숨진 아이의 친모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더구나 A씨는 DNA 검사 결과가 나온 뒤에도 “나는 딸을 낳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가족과의 면회에서도 “DNA 검사든, 혈액형 검사든, 거짓말탐지기든 어떠한 검사를 다 받아도 좋다”며 “(내가) 임신과 아이 바꿔치기를 하지 않았다는 게 밝혀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몇 번이든 다 하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경찰 안팎에선 DNA 검사 결과 자체에 오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이에 검·경은 모두 4차례에 걸쳐 DNA 검사를 실시했지만 모두 A씨가 숨진 아이와 모녀 관계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다.

수사당국은 A씨가 아이를 바꿔치기했다는 정황 증거들은 상당수 찾아냈다. DNA 검사 결과 외에 숨진 아이의 혈액형이 B씨와 B씨 전 남편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결과라는 점과 ▶B씨가 아이를 낳은 직후 신생아 인식표가 아이의 몸에서 분리돼 있었다는 점 ▶출산 직후의 몸무게와 산부인과 퇴원 당시 몸무게가 크게 차이 난다는 점 ▶출산이 임박한 시점에 ‘혼자 아이 낳는 방법’을 검색한 기록 등이다.

하지만 이런 단서들이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못한 데다 A씨가 B씨 모르게 여아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바꿔치기했는 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공소장에 아이 바꿔치기에 대해선 ‘불상의 방법’이라고 기재를 했다.

구미 3세 여아 출생 직후 신생아때 사진. 노란색으로 표시된 게 신생아 인식표인 발찌다. 사진 구미 여아 친모 가족

구미 3세 여아 출생 직후 신생아때 사진. 노란색으로 표시된 게 신생아 인식표인 발찌다. 사진 구미 여아 친모 가족

유죄 선고한 1·2심…“바뀌치기는 필연적” 

다만 A씨는 자신에게 적용된 또 다른 혐의인 (여아) 사체은닉미수는 인정했다. 지난해 2월 B씨가 살던 집에 홀로 남겨져 숨진 채 발견된 아이를 이불과 종이박스에 넣어 버리려고 시도한 혐의다. A씨는 “시신을 상자에 담아 어딘가로 옮기려고 했지만 갑자기 바람 소리가 크게 나 공포감을 느끼고 시신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고 진술했다.

결국 수사당국이 A씨의 아이 바꿔치기 수법에 대해선 밝혀내지 못한 채 재판이 진행됐다. 1, 2심에서는 직접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도 A씨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대구지법 김천지원 형사2단독 서청운 판사는 지난해 8월 17일 진행된 1심 선고공판에서 미성년자 약취 및 사체은닉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A씨)은 B씨가 출산한 2018년 3월 31일과 가까운 시점에 바꿔치기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숨진 여아의 친모가 맞다고 인정된다면 실제 피해자가 바꿔치기됐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성립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이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사라진 피해자의 행방에 대해 알 수 있는 객관적·직접적 증거가 없는 상황이지만 이에 대해 빠짐없이 연결고리를 요구한다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며 “사실 관계를 일일이 증명할 수 없는 상황이고 세부적 범행 경위와 방법을 모르더라도 앞선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피고인의 아이 바꿔치기가 충분히 증명된다”고 판시했다.

A씨가 아닌 제3자에 의해 아이 바꿔치기가 일어났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배제할 수 있다”고 봤다. A씨의 협조가 없이는 A씨가 낳은 아이와 B씨가 낳은 아이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선 “대법원이 결국 쟁점이던 아이 바꿔치기 방법을 명확히 밝히기 위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우석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사당국이 추가 증거를 내세우지 못할 경우 이 사건 공소 유지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현재로선 사체은닉미수 혐의만 유죄로 인정되고 (아이를 바꿔치기 한) 미성년자약취 혐의는 무죄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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