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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외로워" 개 키우더니…유기견 쏟아지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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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경기도 고양시 사설 보호소 '고유거'의 개들이 심장 사상충 백신 접종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 수의사회는 지난달 사설 보호소 개들을 대상으로 심장사상충 검진·백신 접종을 하는 ‘세이브어스챌린지’를 진행했다. 이수민 기자

경기도 고양시 사설 보호소 '고유거'의 개들이 심장 사상충 백신 접종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 수의사회는 지난달 사설 보호소 개들을 대상으로 심장사상충 검진·백신 접종을 하는 ‘세이브어스챌린지’를 진행했다. 이수민 기자

지난달 1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유기동물보호소 ‘㈔고유거’. 경기도수의사회 소속 수의사 7명이 심장사상충 예방을 위한 백신 접종을 했다. 기생충 일종인 심장사상충은 감염되면 유기견의 폐혈관, 심장 등에 심각한 손상을 준다. 모기를 매개로 하다 보니 동물보호소 같은 집단 사육 시설일수록 예방에 더욱 취약하다는 게 수의사들의 설명이다. 통상 보호소에 있는 유기견 중 5~10%는 심장사상충에 감염된다고 한다.

고유거에서는 유기견 47마리가 보호를 받고 있다. 이중엔 강아지 때부터 열악한 환경의 사육장에 갇혀 지내던 도사견 ‘둥이’도 있다. 최근 동물권 보호 단체의 손에 구조된 둥이는 이번 접종을 마지막으로 해외 입양 준비를 마쳤다. 이달 둥이가 가게 될 미국 시애틀엔 이미 새로운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사설 보호소 '고유거'의 도사견 둥이. 이달 시애틀로 입양될 예정이다. 이수민 기자

경기도 고양시 사설 보호소 '고유거'의 도사견 둥이. 이달 시애틀로 입양될 예정이다. 이수민 기자

‘견생역전’보단 상당수가 ‘안락사’ 위기

관계자들은 “둥이처럼 건강 검진 후 해외로 입양을 가는 이른바 ‘견생역전’ 사례는 고유거처럼 일부 관리가 잘 된 사설 보호소에 한정된 이야기”라고 입을 모았다. 지자체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상당수 시·군 보호소는 밀려드는 유기동물 규모를 감당하지 못해 안락사를 선택한다.

특히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로는 반려동물 유기 사례가 급증하는 추세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 조처가 강화됐을 땐 외로움을 달래려 입양에 나섰던 견주들이 잦아진 외출·여행에 다시 반려동물을 버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따르면 5월 현재 전국의 유기동물은 1만1785마리로 4월(9383마리)보다 25.6% 증가했다.

한병진 수의사는 “지자체 위탁 보호소는 10일 공고 후 안락사를 시키는 것으로 안다”며 “위탁보호소 개들도 (사설 보호소처럼) 똑같이 백신을 놔주고 싶지만, 어차피 안락사 될 운명이라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죽어야 나가는 지자체 유기동물 보호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기견 수부터 줄이는 게 급선무”라고 조언한다. 지자체 보호소에선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유기동물이 안락사 처리가 되고 있어서다. 유실·유기동물 입양 플랫폼 포인핸드에 따르면 경기도에서는 지난해 2만3856마리의 유기동물이 발생했다. 이 중 안락사(22%)·자연사(21%) 비율은 총 43%로 입양률(33%)을 웃돈다. 자연사 원인으론 심장사상충 감염 등이 꼽힌다.

서울과 인천 역시 지난해 자연사·안락사를 합한 비율이 각각 31%(1687마리), 41%(2416마리)에 달했다. 서울·인천지역 보호소에서만 4000마리에 가까운 개체 수가 죽어 나갔다. 권영진 고유거 센터장은 “수도권은 그나마 유기견 수를 집계할 만큼의 시스템을 갖춰 통계가 잡힌 것이고 비수도권은 상황이 더욱 심각할 것”이라며 “안락사·자연사한 유기견 처리에 또다시 예산이 소요되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시골개 중성화사업·동물등록제 정상화 급선무

전문가들은 유기견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이른바 ‘시골개’·‘마당개’의 개체 수 조절을 꼽는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유기견 중 비품종견이 78.3%를 차지했다. 또 2년생 미만 개체가 전체의 70%에 달했다. 집에서 묶어서 기르는 마당개의 유실과 들개의 자연 번식이 유기동물 발생의 주요 원인임을 뒷받침하는 자료다. 반면 유기견 중 품종견의 비율은 전년 대비 2.2% 포인트 줄어든 21.7%로 줄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비품종견의 비율이 높다는 건 시골개·마당개가 많은 도외 지역에서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는 뜻”이라며 “외곽지역에서 풀어놓고 키우는 개들이 묶여 있는 마당개와 교배해 새끼를 낳는데 이 중 ‘유기견’으로 포획돼 보호소에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설 보호소 고유거의 진도 믹스. 진도 믹스와 같은 비품종견이 전체 유기견의 78.3%를 차지한다. 이수민 기자

사설 보호소 고유거의 진도 믹스. 진도 믹스와 같은 비품종견이 전체 유기견의 78.3%를 차지한다. 이수민 기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3월부터 실외 사육견을 대상으로 중성화 수술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6년까지 32만 마리를 중성화하는 게 목표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은 “중성화 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마을 단위 집중 수술’과 ‘인식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당개 주인들이 자발적으로 주민센터에 가 사업 참여를 신청하고 동물병원에 가기를 기대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권 센터장은 “마당개를 키우시는 어르신들에게 ‘우리가 직접 수술 후 회복까지 시켜오겠다’고 약속해도 될까 말까”라며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구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물등록제는 등록 대상동물의 소유자가 동물 보호와 유실 방지를 위해 가까운 시·군·구청에서 보호자 정보를 등록해야 하는 제도다. [사진 동물보호관리시스템]

동물등록제는 등록 대상동물의 소유자가 동물 보호와 유실 방지를 위해 가까운 시·군·구청에서 보호자 정보를 등록해야 하는 제도다. [사진 동물보호관리시스템]

유명무실한 동물등록제도 유기견을 효율적으로 줄이기 어려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동물등록제는 등록대상 동물의 소유자가 동물 보호와 유실 방지를 위해 가까운 시·군·구청에서 보호자 정보를 등록하는 제도다. 반려견에 내장형 마이크로칩을 삽입하거나 외장형 목걸이를 거는 방식으로 2014년부터 의무시행 중이다.

문제는 등록대상 동물이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개로 한정된 데다 등록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이를 단속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등록된 동물의 보호자 정보를 외장형 목걸이에 적을 땐 목걸이가 끊어지는 등 유실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병진 수의사는 “등록제를 철저히 하면 유기견이 발생해도 (소유자를) 금방 찾을 수 있다”며 “선진국 수준(70%대)으로 등록 비율을 높인다면 안락사하거나 유기견을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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