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민석의 Mr.밀리터리

"서울 지키려 뉴욕 희생할 수 있나?" 한반도판 드골의 의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북핵 위협 , 실질적 대응은 무엇인가

"파리 위해 뉴욕 희생할 수 있습니까" 미 핵우산 의심한 드골, 결국 핵개발

한국군 핵무장은 최후의 선택지
확장억제 실행력 계속 높여가야

도발 응징 못하면 ‘찢어진 핵우산’
킬체인 등 한국군 3축체제 다져야

김민석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김민석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습니까?”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1961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했던 말이다. 당시 미국은 소련 핵 공격을 핵우산으로 막아주겠다며 프랑스의 핵 개발을 만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골은 핵 개발한 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탈퇴했다. 미국 핵우산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다.
 한반도가 핵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8∼10일 노동당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자위권은 곧 국권 수호 문제”라며 “강 대 강, 정면승부"를 천명했다. 앞서 지난 4월 열병식에선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겠고 했다. 핵전략을 방어에서 공세적으로 바꿨다.

박진 외교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 있는 미 국무부에서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 장관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7차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조기 재가동하는 데 합의했다. [연합]

박진 외교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 있는 미 국무부에서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 장관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7차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조기 재가동하는 데 합의했다. [연합]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핵 대응’을 성명에 명시했다. 미국의 핵우산이 포함된 확장억제력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는 '핵에는 핵' 전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북한 미사일 발사 때엔 확장억제력의 실질적인 조치를 하라고 지시했다.

북, 전술핵 공격하면 방어 어려워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지난 13일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20개의 핵탄두를 조립했고, 45~55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핵탄두를 쏠 탄도미사일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에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해 탄도미사일을 18차례나 발사했다. ICBM은 미국을 겨냥한다.
 북한이 조만간 7차 핵실험을 마치면 중량 200㎏ 이내의 전술핵탄두도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소형 핵탄두를 올해에도 몇 차례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M(KN-23) 미사일에 장착하면 방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KN-23은 사거리 600㎞로 한반도 전체를 사정권에 넣는데 기동이 불규칙해 요격이 어렵다.
 북한은 머지않아 100개 이상의 다양한 핵탄두를 확보할 전망이다. 핵탄두를 단거리 탄도미사일에는 물론, 미국을 위협할 ICBM과 SLBM(잠수함용 미사일) 등에도 장착된다. 북한의 목표는 1차 핵공격을 하고 난 뒤, 한·미 연합군의 응징을 받아도 2차 핵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 확보다. 누구도 북한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은 핵전력을 다른 핵보유국과 달리 공격용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대상은 한국과 미국, 일본이다.

리비어 대사 "북핵은 한반도 통일용"
 북한 핵문제에 오랫동안 관여해온 에번스 리비어 전 주한 미국 대리대사는 지난 5월 19일 한미협회 세미나에서 “북한 핵은 (김정은) 정권 유지가 아니라 한반도 통일”이라고 말했다. 리비어 전 대리대사는 “이제 북한 비핵화는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핵을 보유한 북한에 대처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선택권은 두 가지 중 하나라고 했다. 북한 핵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반드시 파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면 돌파다.
 북핵 대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안은 한국의 핵무장이다. 지난 2월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CCGA)가 우리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71%가 핵무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까지 핵으로 무장한 마당에 미국도 한국의 핵무장을 고민할 때라는 주장도 있지만, 당장은 선택하기 쉽지 않은 카드다. 핵무장엔 큰 손해와 단단한 각오가 필요해서다. 그래도 최후 옵션으론 남겨둬야 한다.
 한국이 핵무장하지 않으면 미국 핵무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제공한다는 확장억제력이다. 핵우산, 미사일 방어체계, 지휘통제시스템 등으로 구성돼 있다. 미 국방부가 정의하는 확장억제는 ‘(적이)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더 큰 손해를 감수하고 핵 도발에 나설 때 미국이 주저하면 확장억제는 실패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재래식전이지만 전쟁 억제에 실패한 사례다.

적 도발 때 응징 못 하면 확장억제 실패
 확장억제전략에 성공하려면 적이 도발했을 때 확장억제력에 동원된 핵무기 등으로 즉각 응징해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다. 바로 '드골의 의심'이다. 미국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북한 ICBM에 뉴욕을 희생할 각오가 서 있는지 여부다. 북한은 핵미사일로 일본을 위협해 미국이 주일미군기지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훼방할 수도 있다. 한국 때문에 미국과 일본이 인질이 되는 딜레마 상황이다.
 이와 함께 미국이 실제 군사작전에 핵옵션을 넣은 적도 없다고 한다. 1991년 걸프전 때도 핵옵션을 검토했다가 곧바로 포기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도 미국이 핵무기가 포함된 군사공격 옵션을 시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송승종 대전대 교수) 이처럼 실행 가능성이 떨어지는 핵옵션을 '찢어진 핵우산'이라 한다.
'힐리의 정리'도 있다. 1964년 영국 국방부 장관이었던 데니스 힐리 경이 소련 위협으로부터 NATO 방어와 관련된 회의에 수없이 참여한 뒤 내린 결론이다. “미국 (핵)보복능력의 신뢰성에서 5%는 소련 억제에, 나머지 95%는 유럽인을 안심시키는 데 사용된다.”
 결국 미국은 유럽인의 의심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전술핵을 나토의 5개 나라에 전진 배치했다. 미국 전술핵이 유럽에 있으니 언제든 작동할 수 있다는 담보다.
 그렇다면 같은 방식으로 미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으냐는 질문이 나온다. CCGA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56%가 미 전술핵의 한반도 배치에 찬성했다. 미국은 1958년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했다가 1991년 모두 철수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다시 재배치하는 것은 오히려 한반도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1991년 이전에 전술핵을 배치했을 때엔 북한에 핵무기가 없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면 북한이 핵으로 먼저 타격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설 확보와 유지도 쉽지 않다. 현재 전술핵 재배치는 한·미 정부 모두 채택하지 않고 있다.

단계적 적응식 확장억제전략
 그래서 고려할 수 있는 맞춤형 대안이 단계적 적응(Phased and Adaptive) 방식이다. 확장억제에 대한 의심을 줄이고 북핵에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판단된다. 미 국방대학교 대량살상무기센터 선임연구원인 쉐인 스미스 박사가 안보전문사이트 ‘38 North’에서 제시한 논리다. (‘Renewing US Extended Deterrence Commitments Against North Korea’) 스미스 박사는 한때 윌리엄 페리 미 국방부 장관과 함께 일했다.
 단계적 적응 방식은 북한의 핵 공격이 고조 또는 임박한 상황에 대비해 핵우산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사전에 충족시켜 놓는 것이다. 이 준비를 완료해두면 유사시 한반도에 미 핵무기 전개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 준비 과정에서 미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력의 신뢰성과 실행력을 높일 수 있다.
 단계적 적응식 확장억제전략의 준비과정은 ▶1단계로 유사시 미 전술핵을 배치할 한국 내 장소와 환경을 물색 ▶2단계는 한·미 부대가 핵무기 보관소 외곽 경계와 사고 대응, 회수작전 등을 훈련 ▶3단계는 한·미 공군 전투기 F-16 또는 F-35에 핵임무를 부여해 평시에 연합훈련을 실시 ▶4단계로 유사시 미 핵무기를 보관할 시설을 미리 구축하는 등이다. 이 방식은 미 전술핵을 평시에는 한반도에 배치하지 않고 유사시에만 들여온다는 점에서 나토식 핵공유체계와 다르다.
 한·미는 이런 준비를 천천히 추진하면서 북한에 확장억제력의 실체와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 부담을 줘 북한을 압박할 수 있다. 또 한·미의 전술핵 보관시설 확보와 훈련을 통해 확장억제력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한·미는 미국 단독으로 해왔던 확장억제력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소통이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나 미국의 확장억제력으로 가랑비는 막을 수 있지만 소나기까지 가리긴 어렵다. 한국군의 자체 능력 강화가 필수다. 국방부가 추진해온 3축체제(킬체인·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대량응징보복)를 지금보다 훨씬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북한 미사일이 한 발이라도 날아오면 그 미사일 기지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능력을 갖춰야 한다.

☞확장억제(미 국방부 정의)=(적이)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