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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조 묶였다…정부 규제에 발목 잡힌 기업 투자 [규제 STOP]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A사는 해외 생산 공장을 팔고 국내에 설비 투자를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까다로운 규정 때문에 유턴 지원 제도 혜택을 못 받게 생겼다. 해외 공장 철수 후 2년 안에 국내 증설을 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대규모 장치 산업이라 2년 내 증설을 마무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기존 국내 사업장 안에 추가로 투자하는 것도 유턴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수송 기계 공장을 새로 세울 예정이었던 B사도 발이 묶였다. B사가 보유한 토지가 맞닿은 곳이 국유지라 공장부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어서다. 이동형 로봇 생산설비를 구축한다는 C사 계획은 도로교통법에 가로막혔다. 자율주행로봇의 보도 주행 자체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은 가능하지만, 현장 요원 채용 의무 등 과도한 추가 비용이 걸림돌이었다.

정부세종청사 내 산업통상자원부. 뉴스1

정부세종청사 내 산업통상자원부. 뉴스1

이처럼 정부 규제와 인허가 지연으로 발목 잡힌 기업 투자가 53건, 총 337조원 규모에 이른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2일까지 10대 그룹을 포함한 국내 기업의 투자 계획과 애로 사항에 대해 실태 조사를 한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우선 용적률, 산업단지 입주 업종 제한 같은 입지 규제로 공장이나 연구시설을 신ㆍ증설이 막힌 사례는 26건으로 총 239조원 규모(이하 중복 계산)였다. 늑장 행정 절차로 투자가 지연된 사업도 14건, 71조원 규모로 조사됐다. 국유지 인허가, 교육환경평가 등 인허가에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투자 자체가 차질을 빚는 문제가 컸다. 폐수ㆍ용수ㆍ전력 등 기반 시설이 부족하거나 초기 정부 투자가 부족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25건, 288조원에 달했다.

이런 기업 현장 목소리에 산업부는 지방자치단체, 관련 부처와 협의해 부지 용도 변경, 산단 개발계획 변경, 시행령 개정 등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산단 입주 업종 규제를 지금의 포지티브 방식(허용 업종 지정)에서 네거티브 방식(특정 업종 외 모두 허용)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유턴법, 경제자유구역법 등도 기업의 국내 투자를 더 촉진하는 방향으로 개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소상공인 대상 로봇바우처 등을 운영해 서비스로봇 초기 시장 창출을 지원한다는 구상도 마련했다.

주영준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관련된 규제 개선, 신속한 처리 등은 여러 부처가 걸려 있는 사안”이라며 “산업부 소관 사항에 대해선 신속히 규제 개선을 추진하고 나머지는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해결 방안을 모색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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