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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 달리, 文 왜 규제개혁 못했나…임종룡이 짚은 딱 두 가지 [규제 STO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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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때 규제를 50% 줄인다고 했던 것처럼 명확하고 단순한 기준을 제시해라. 그리고 당장 시작해야 한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규제 개혁 방향을 얘기하며 강조한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였다. ‘단순하게’ 그리고 ‘빠르게’다. 중앙일보가 14일 임 전 위원장에게 “규제 개혁은 어떻게 해야 실패하지 않느냐”고 던진 질문에 답하면서다. 그는 “어느 정부에서나 규제 개혁을 추진했지만 잘되지 않았다”며 “그나마 효과가 있었던 건 김대중 정부였다고 생각하는데, 규제 50% 철폐란 단순한 기준을 제시하고 빠르게 실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9개월만인 1998년 11월 중앙정부 기존규제 1만1000여 건 중 48%인 5300여 건을 없애고, 나머지 2400여 건은 완화하거나 개선하기로 결정한다. 관련 법안 처리도 속전속결이었다. 연말 국회 통과를 위해 그해 11월 19일 국무회의에서 단 50분 만에 195건의 법안을 처리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규제 개혁을 총괄하는 행정규제기본법도 그해 생겼다. 물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란 국란의 시기여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도 “모래 주머니를 없애겠다”며 여느 정부처럼 출범 초기 규제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이전 정부를 돌아보면 성공보다 실패의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전봇대 뽑기’, 박근혜 정부 ‘손톱 밑 가시 뽑기’, 문재인 정부 ‘붉은 깃발법(적기조례) 철폐’ 등 저마다 구호를 내세우며 규제 철폐를 외쳤지만, 시작만 창대했을 뿐 결과는 미약했다.

임 전 위원장은 “어느 정부나 규제 개혁을 하려고 했지만 목표를 잘 정하지 않았던 게 문제”라며 “담당자로선 어느 수준에서 얼마만큼 규제를 풀어야 하는지 굉장히 혼란스럽고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기업으로부터 건의를 받아 규제를 푸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 스스로도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목표를 정하는 게 중요한 포인트”라며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한 게 기준국가제”라고 했다.

 책 『경제정책 어젠다 2022』 표지. 중앙DB

책 『경제정책 어젠다 2022』 표지. 중앙DB

그는 변양호 전 금융정보분석원장, 최상목 현 대통령실 경제수석,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김낙회 전 관세청장과 함께 지난해 책 『경제정책 어젠다 2022』를 출간했다. 저자들이 윤 대통령의 경제 참모로 속속 발탁되며 화제를 모은 책이다.

임 전 위원장은 이 책의 규제 개혁 부분을 맡아 썼다. 거기서 제안한 구체적 방안이 기준국가제다. 그는 “한국보다 앞서나가는 경쟁력 있는 국가를 기준국가로 정하고 규제를 그 국가 수준에 맞춰 풀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최상위로 랭크되는 미국이나 스웨덴 같은 나라를 기준국가로 지정하고 각종 규제를 이들 국가 수준으로 맞추는 방향이다. 해당 국가에 없는 규제면 과감하게 철폐하는 식이다.

목표를 세웠다면 다음은 실행이다. 그는 “업계 의견을 부처에서 쭉 수렴하고 골라서 하는 방식은 어느 정부에서나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라며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으니 서로 양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양쪽에서 같이 움직여줘야 가능하다. 큰 틀로 보면 사회적 합의”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규제 개혁은 곧 기득권과의 싸움”이라며 “대표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여소야대에, 노동조합ㆍ사회단체의 조직력을 비춰볼 때 쉽지 않다”며 “기존 근로자가 양보할 수 있도록 복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대안을 제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입법도, 여론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시간은 없다. “규제 개혁을 하기에 여소야대 입법 여건이 워낙 나쁘지만 그렇다고 다음 총선 이후, 입법 환경이 나아지면 이것저것을 하겠다는 식으로 하면 못 한다”며 “당장 시작해야지 더 늦어지면 규제 개혁 성공 가능성만 작아질 뿐”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임종룡(63) 전 금융위원장은=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과 제1차관, 국무총리실장,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거쳐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도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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