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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3번 광폭행보에도 "김건희 조용한 내조"…野 "공약 파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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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조용한 내조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 13일 기자들과 만난 대통령실 관계자는 ‘권 여사를 만나는 게 조용한 내조의 범주를 벗어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배우자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였다. 이날 오전엔 개 식용 논란 등 동물권에 관한 김 여사의 언론 인터뷰도 공개됐다. 이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 대해선 “대통령 손길이 닿지 않는 먼 곳, 그런 곳을 살피겠다는 뜻에서 인터뷰를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가 13일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서 권양숙 여사를 예방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김건희 여사가 13일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서 권양숙 여사를 예방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선 때만 해도 김건희 여사는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다. ‘허위 이력’ 의혹 등 자신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지난해 12월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직접 밝힌 게 계기였다. 그 뒤 윤 대통령은 “제2부속실을 폐지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전통적으로 제1부속실은 대통령, 제2부속실은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기능을 해왔다. 제2부속실 폐지는 ‘영부인으로서의 공식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2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송강호) 수상작 영화 '브로커'를 관람하기 전 팝콘을 구매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2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송강호) 수상작 영화 '브로커'를 관람하기 전 팝콘을 구매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그랬던 김건희 여사는 지난달 10일 윤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이후 연일 ‘광폭 행보’로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김 여사는 최근 일주일 사이에만 ▶현충일 추념식(6일) ▶중앙보훈병원 방문(6일) ▶영화 ‘브로커’ 관람(12일) 등 3개의 부부 동반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5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로 취소되긴 했지만 ‘환경의 날’을 기념한 쓰레기 줍기 행사에도 윤 대통령과 동행 예정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 여사는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인스타그램 계정을 다시 열고 다양한 사진을 올리고 있고, 때로는 동물 보호와 관련한 의견도 덧붙이고 있다.

“조용한 내조의 범주”로 보고 있는 대통령실 입장과 달리 정치권에선 김 여사의 활동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조용한 내조의 수준은 이미 벗어났다”고 보는 시선이 우세하다.

그런 연장선에서 국민의힘 내부에선 “김 여사를 공식적으로 보좌할 인력이 대통령실에 충원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대통령실 부속비서관실에서 김 여사를 돕는 인력은 3명 정도다. 이들은 평소 윤 대통령 관련 업무를 주로 하다가 필요할 경우 김 여사를 돕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양금희 원내대변인은 “의원들이나 ‘동행의힘(국민의힘 의원 배우자 모임)’ 얘기를 들어봐도 김 여사를 지원할 인력이 증원돼야 한다는 데 뜻이 모이더라”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은 “영부인의 활동이 사적으로 방치되면 오히려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가 나오고 측근 조직을 둘러싼 문고리 권력 논란 등 또 다른 잡음이 나올 수 있다”며 “국격 관리 측면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부인의 ‘격(格)’을 고려하고, 혹시나 모를 정치적 잡음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공식적으로 보좌할 제2부속비서관실 등의 신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김 여사의 팬카페 ‘건희 사랑’을 둘러싼 논란은 여권의 이러한 시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달 29일 ‘건희 사랑’ 등에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대통령 집무실에서 찍은 미공개 사진이 올라와 논란이 커졌다. 대통령실 공식 라인에선 누가 사진을 찍었는지조차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혼선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지난 12일 영화 관람 뒤에도 반복됐다. 대통령실을 통해 공식 사진이 배포됐지만 팬카페에는 미공개 사진이 따로 올라왔다. 그러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3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차라리 공적인 조직을 통해서 (소통)하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공개적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김 여사의 보폭이 넓어질수록 “공약 파기” 논란이 커지는 문제점도 있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김 여사의 요즘 행보를 보면 대선 때 했던 ‘내조만 하겠다’는 발언이나 ‘제2부속실 폐지’ 같은 공약은 당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썼던 것 아닌지 의심된다”며 “사실상 공약을 파기하고 국민을 속이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공약을 번복하는 것보다 차라리 공개 활동 횟수를 지금보다 줄이는 게 손 쉬운 방법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김 여사의 공개 행보에 대해선 여론이 여전히 냉랭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넥스트리서치가 SBS 의뢰로 지난 8~9일 조사해 10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가 어떤 행보를 하는 게 바람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10명 중 6명은 “내조에만 집중해야 한다”(60.6%)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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