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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한반도의 지정학적 약점 돌파해온 ‘외교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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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준규 한국외교협회 회장·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이준규 한국외교협회 회장·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놓인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이후 원조받던 나라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제공하는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그 과정에서 외교의 숨은 역할이 있었다.

전·현직 외교관 2000여 명이 회원인 한국외교협회가 지난 8일 창립 50주년 행사를 치렀다. 1971년 12월에 창립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1년 늦어졌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등 전직 외교부 장관을 포함해 참석한 200여 명의 외교관 대부분은 30년 이상 외교 일선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분들이다.

한·미동맹과 북방외교 등 큰 성과
외교자산 활용해 현재 위기 넘어야

이날 필자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글로벌 중추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외교가 선도적 역할을 해왔고 수많은 외교관의 피땀 어린 헌신·희생·노고가 있었다. 우리가 이룩한 성과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며 외교의 기여를 회고하고 평가했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1945년 8월 해방 당시의 한반도 상황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혼돈 그 자체였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한반도 신탁통치안이 철회되고,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 총선거가 실시돼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할 때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반탁운동이 큰 역할을 했지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치열한 대미·대유엔 외교전의 효과가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은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주둔이 미국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해방 이후 남한에 주둔하던 미군은 주둔 기간을 연장할 생각이 없었다.

이를 간파한 이 대통령은 1949년 미군 철수 이전부터 한국 방위를 약속해 달라고 미국에 집요하게 요구했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의 휴전 교섭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반공 포로 석방 조치 등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로 미국을 압박해 마침내 1953년 7월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성사시켰다.

이후 1970년대 초까지 미·소 냉전 시대에 한국은 확고한 자유 진영의 일원으로서 반공 전선의 보루 역할을 수행했다. 유엔에서 표 대결을 위해 중남미와 아프리카로 외교 영역을 넓혔고, 북한의 위세가 컸던 비동맹 회의에서도 비회원국 자격으로 고군분투했다. 일본과는 10여 년 힘겨운 교섭을 거쳐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수교했는데, 이는 한국 경제 발전의 발판이 됐다.

냉전 해체 이후 한국은 북방외교를 추진해 동유럽 공산 국가들은 물론 소련·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반면 같은 기간 북한의 미국·일본 등 서방과의 관계 개선 노력에는 거의 성과가 없었다.

만약 호주나 뉴질랜드 근처에 한국이 위치했다면 지금의 국력으로도 충분히 역내 강국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이 세계 10위권 국력을 보유했지만, 강대국들에 둘러 싸여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국제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많다. 이런 지정학적 약점 때문에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외교의 중요성이 클 수밖에 없다. 외교에 대한 투자 효율성이 매우 크고, 외교의 실패에 따른 피해도 매우 큰 것이 사실이다.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북한의 7차 핵실험 도발 가능성 등 불확실성 증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출범에 따른 새로운 경제·외교 영역의 출현으로 외교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크다. 우리의 외교적 자산을 십분 활용해 총력을 경주해야 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기간 축적해온 전문 외교관들의 경험과 지혜를 잘 활용하고 그들의 사기를 진작해줄 필요가 있다. 정부 예산의 1%도 안 되는 외교 예산의 증액, 외교 인프라 정비와 확충도 시급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준규 한국외교협회 회장·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