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차이나 글로벌 아이

만다린 외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워아이구궁(我愛故宮, 자금성을 사랑합니다).”

니콜라스 번스 주중 미국 대사의 만다린(표준 중국어) 영상이 인기다. 지난 10일 대사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오르자 중국 네티즌이 환영했다. “친강(秦剛) 대사는 비호대(飛虎隊, 2차대전 말기 중국을 도왔던 미군 항공대대) 점퍼를 입고, 번스 대사는 장성과 자금성을 참관했다. 사상과 격조가 흐른다. 중·미 우의 만세.” 지난 4월 9일 친강 주미 중국대사는 워싱턴 항공우주박물관에서 열린 비호대 80주년 행사를 트위터로 알렸다.

유엔 ‘중국어의 날’인 4월 20일 캐롤라인 윌슨 주중 영국대사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쉬즈모의 시를 낭독하고 있다. [웨이보 캡처]

유엔 ‘중국어의 날’인 4월 20일 캐롤라인 윌슨 주중 영국대사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쉬즈모의 시를 낭독하고 있다. [웨이보 캡처]

중국어와 SNS로 14억 민심을 파고드는 만다린 외교의 고수는 우뤄란(吳若蘭)으로 알려진 캐롤라인 윌슨 주중 영국 대사다. 베이징 연수로 익힌 만다린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4월 20일에는 유엔이 문화 다양성을 기념해 제정한 중국어의 날을 맞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을 찾았다. 케임브리지 유학생인 시인 쉬즈모(徐志摩)의 시를 읊었다. 그는 영국산 SUV 레인지로버로 베이징을 누빈다. 쑤저우·샤먼·구이저우·쿤밍을 찾아 올린 영상에는 중국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양국 간 팽팽한 정치적 긴장에도 윌슨 대사의 웨이보는 오아시스다.

이미 SNS는 외교 전쟁터다. 올봄 중국 웨이보에서는 반전(反戰) 여론을 놓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 대사관이 다퉜다. 친강 대사처럼 트위터에는 중국 목소리를 전하는 외교부 대변인과 해외 대사의 게시물이 넘친다.

중국에서 SNS 외교는 검열이라는 복병도 만난다. 지난달 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대중국 정책 연설의 공식 중국어 번역문은 미국 대사관 웨이보에서 삭제당했다. 중국 SNS는 영사 보호 무풍지대여서다. 윌슨 영국 대사 역시 지난해 3월 언론 자유를 언급했다가 외교부 유럽국장에게 초치됐다. 반면 한국의 만다린 외교는 걸음마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공식 중국어 번역조차 찾을 수 없다. 인프라 부실이다.

최근 14대 주중 대사에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내정됐다. 네 번째 교수 대사다. 중국 반응은 우호적이다. 사회과학원은 정 내정자의 최신 저서를 SNS에 소개하며 환영했다. 국가이익을 다룬 11장은 거의 전문을 중국어로 번역했다.

만다린 외교의 바탕은 상호존중이다. 신정부의 대중국 외교 키워드 역시 상호존중이다. 중국식 외교용어로 상호존중은 사회주의 발전경로, 핵심 이익, 전통풍속을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양국 정상은 이미 전화로 상호존중 기조에 합의했다. 한국은 중국에 무엇을 어떻게 존중받을 것인가. 수교 30년을 앞둔 정 신임대사의 첫 번째 과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