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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현영의 워싱턴 살롱

지지율 최저, 인플레이션 최고, 불출마론…위기의 바이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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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지난 10일(현지시간) 오전 8시 30분. 미국 5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8.6% 올랐다는 노동부 발표가 나왔다. 1981년 12월 이후 가장 빠른 속도다. 미국인들은 이런 수치 발표 없이도 가파르게 뛰는 물가를 매일 체감한다. 고깃값은 13.8%, 밀가루는 14.2% 올랐다. 값이 오른 닭고기 대신 냉동 햄버거 패티를 사는 소비자들이 뉴스에 나온다.

트리플 악재에 빠진 바이든 #1977년이래 가장 낮은 지지율 #야당과 협치, 총기규제도 실패 #'젊고 경쟁력있는 후보론' 대두

#약 두 시간 뒤인 10시 51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LA) 항구에서 ‘최우선 경제 과제,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주제로 연설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물가 상승은 “푸틴이 음식과 휘발유, 양쪽에 부과한 세금”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세계 최대 정유회사를 가리켜 “엑손(모빌)은 올해 신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며 기업의 탐욕을 기름값 인상 주범으로 지목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로스앤젤레스를 떠나기 위해 에어포스원에 오르기 전 기자들과 문답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로스앤젤레스를 떠나기 위해 에어포스원에 오르기 전 기자들과 문답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음날인 11일 미국자동차협회(AAA)는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사상 처음 갤런당 5달러를 넘었다고 발표했다. 갤런당 5.004달러(인플레이션 미반영)는 역대 최고가다. 1년 전 갤런당 3.077달러에서 62.6% 올랐다.

임기 3분의 1을 지난 바이든 대통령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세 장면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역대 최고 휘발유 가격을 포함,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취임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지율은 하락세다. 가장 인기 없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제치고 1977년 이후 재임한 대통령 8명 가운데 꼴찌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승리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은 가운데 2024년 대선 출마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민주당에서 나온다.

1981년 이후 최고 인플레이션

소비자물가가 1년 만에 8.6% 오르면서 인플레이션 장기화와 경제 충격에 대한 우려가 한층 커졌다.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월 8.5%에서 4월 8.3%로 떨어지자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정점이 지났을 수 있다고 기대했으나 빗나갔다. 바이든 행정부가 단기간에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 로스앤젤레스 항구에서 인플레이션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 로스앤젤레스 항구에서 인플레이션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코로나19로부터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추진했다. 지난해 3월 1조9000억 달러(약 2430조원) 규모 경기부양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당시 바이든은 역사적으로 낮은 금리를 활용해 투자하면 더 많은 성장, 더 높은 소득, 더 강한 경제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상원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이 골치 아픈 수준으로 상승하는 상황에 부닥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며 반대하지 않았다.

바이든은 지난해 7월 물가가 빠르게 오르던 시기에도 “물가 상승은 일시적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금 물가상승률은 Fed 목표치(2%)를 4배 넘게 웃도는 수준이 됐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는 오르는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을 세계은행은 경고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여전히 사상 최저 수준인 실업률(3.6%)을 거론하며 “미국인은 더 나은 일자리, 더 좋은 임금으로 갈아타고 있다”면서 과거와 양상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사상 최고 휘발윳값… “계속 오를 것” 

소비자물가 상승은 휘발윳값이 견인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준중형차 56L급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는 데 드는 비용은 코로나19 이전 2020년 2월 37.96달러에서 코로나가 한창인 그해 4월 29.10달러, 지금은 74.85달러로 뛰었다.

대중교통이 취약한 미국에서 기름값은 곧 민심이다. 지속적인 유가 상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에 최대 정치적 난제다. 추세를 반전시킬 뚜렷한 해결책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고 정치전문매체 더 힐은 전했다.

코로나19에서 벗어나면서 이동 수요가 증가했지만, 석유 공급을 제때 충분히 늘리지 못한 게 유가 상승 시작이었다. 세계 3위 원유 생산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면서 공급난이 가중됐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기로 한 조치는 올 연말께 시행 예정이어서 앞으로도 유가 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위기 돌파 방법을 놓고 민주당 안에서 의견이 갈린다. 민주당 내 진보 진영은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책임을 대형 정유회사 등 기업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은 정유회사를 포퓰리즘적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의회 내 진보 진영과 그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경제전문가 사이에 끼어있다”고 전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중간선거 패배, 대선 불출마론 솔솔 

취임 507일째인 지난 10일 바이든 대통령 평균 지지율은 40.2%였다. (파이브서티에이트) 가장 인기 없던 트럼프 전 대통령을 누르고 꼴찌다. 같은 시점에 트럼프 지지율은 41.5%,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47.4%, 빌 클린턴 전 대통령 49.6%였다. 9ㆍ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70.5%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대선에서 이긴 정당은 대체로 이듬해 중간선거에서 의회 다수당 지위를 잃었다. 트럼프 대통령 때 공화당은 2018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42석을, 오바마 전 대통령의 민주당은 2010년 하원에서 무려 63석을 내줬다. 올해 중간선거도 민주당이 의석을 얼마만큼 내주며 지느냐에 관심이 쏠릴 정도다.

바이든에게 더 큰 충격은 2024년 대선 출마를 포기해야 한다는 민주당 내 목소리다. 인플레이션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라는 점을 고려해도 국정 과제 실천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고령인 나이가 부담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1일 전했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1942년생·80세)을 공개 지지한 NYT가 민주당 인사 50명을 인터뷰한 기획 기사라는 점이 주목된다. 재선 취임 때 82세, 퇴임 때 86세인 대통령보다는 젊고 경쟁력 있는 후보가 나서야 한다는 취지다.

바이든 대통령이 36년 상원의원 경력을 앞세워 공화당과 협치를 선보이겠다는 기대감을 줬지만, 간판 공약인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법안을 비롯해 투표권 확대, 총기 규제 등을 입법하는 데 실패한 점도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