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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수호' 나섰던 제주 해녀들…강치 품에 안고 사진 찍었다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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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들 광복절 전후 '독도행' 예고 

# 통 넓은 바지에 머리에 헝겊을 두른 한 여성이 동물 목덜미를 쓰다듬는다. 1950년~60년대 독도 앞바다를 누빈 제주 해녀 김공자씨가 강치(바다사자)를 안는 모습이다. 김씨의 젊은 시절이 담긴 흑백사진에는 지금은 사라진 독도 강치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강치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독도에서 대규모 남획이 이뤄졌다. 1904년 한 해 동안에만 3200마리가 일본에 의해 남획됐다는 기록이 남을 정도다.

[e즐펀한 토크] 김윤호의 달구벌 이바구

#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한쪽에는 '울릉도 출어 부인 기념비'가 있다. 제주 협재리 대한부인회가 1956년에 비석을 세웠다는 내용과 함께 뒷면엔 해녀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1950년대 독도와 울릉도에 출어했던 제주 해녀들의 실제 이름이다. 이 비석에서 660㎞ 이상 떨어진 독도 동도 앞바다에 있는 바위도 해녀와 인연이 깊다. 과거 독도에 출어(出漁)한 협재리 제주 해녀들이 물질 전후 올라앉아 쉬던 독도 '해녀 바위'다.

광복절 77주년 맞아 독도 찾는 제주 해녀들

제주 해녀가 독도에서 강치와 함께 앉아있다. 사진 독도의병대

제주 해녀가 독도에서 강치와 함께 앉아있다. 사진 독도의병대

옛 독도 앞바다를 누빈 '제주 해녀'들의 삶이 77주년 8·15 광복절을 앞두고 재조명받고 있다. 독도 앞에서 물질을 했던 제주 해녀들이 광복절을 전후해 독도를 찾을 예정이어서다.

경북도는 10일 "1950년대와 60년대 독도에서 물질을 한 해녀들을 비롯해 제주 해녀 40여 명이 오는 8월 17일 울릉도를 거쳐 독도를 찾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독도행에는 과거 독도에서 실제 물질을 한 제주 해녀 김공자·홍순옥·고정순씨가 동행한다. 독도와 제주 해녀 간 역사성 등을 보전·기념키 위한 행사다.

경북도 등에 따르면 제주 해녀들의 첫 독도행은 1930년대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수산자원에 대한 수탈이 이뤄진 시기다. 해녀들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들은 독도 앞바다의 전복 등을 채취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아가 해녀들을 고용했다고 한다.

독도의용수비대, 해녀 모집…'물골'서 생활 

제주 해녀가 독도 물골로 보이는 '숙소' 앞에 서 있다. 사진 독도의병대

제주 해녀가 독도 물골로 보이는 '숙소' 앞에 서 있다. 사진 독도의병대

장시간 독도에서 머물며 물질을 한 제주 해녀의 기록은 1950년대부터 나온다. 김남일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장은 "1950년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독도 미역 등의 채취를 위해 제주 해녀 수십 여명을 모집해 울릉도를 거쳐 독도로 물질을 갔다는 기록이 있다"며 "제주 해녀의 원정 물질인 셈이고, 그 현장이 독도 앞바다였던 셈이다"고 말했다.

1950~60년대 제주 해녀들은 일정한 급여를 받고 울릉도 주민 등의 요청에 따라 여러 차례 독도로 원정 물질을 나섰다. 한 번에 30~40명의 해녀가 팀을 꾸려 독도를 찾아 바닷속을 누볐다고 한다.

이들은 독도 서도의 '물골'에서 몇달씩 머무르며 물질을 했다고 한다. 물골은 독도에서 유일하게 '빗물 고인 물'이 있는 천연 동굴이다. 당시 독도를 찾은 해녀들이 숙박시설이 전혀 없던 독도에서 씻고 마실 수 있는 물이 있는 동굴에 머물며 물질을 했다. 물질 후 물골로 추정되는 한 동굴 앞에 서 있는 제주 해녀의 모습이 찍힌 사진도 남아있다.

김윤배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박사는 "제주 해녀들은 1960년대 후반 경북도의 지원을 받아 지은 독도 서도의 '어업인 숙소'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며 "숙소는 옮겼지만, 물골은 물탱크를 설치하는 등 그대로 정비해 계속 활용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말했다.

사라진 독도 강치 만나고, 사진도 촬영도

제주도에 있는 울릉도 출어 부인 기념비. 사진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김윤배 박사

제주도에 있는 울릉도 출어 부인 기념비. 사진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김윤배 박사

제주 해녀들은 지금은 사라진 독도 강치(바다사자)를 만나기도 했다. 강치를 품에 안고 찍은 제주 해녀의 사진이 남아있다.

강치는 19세기 초쯤에는 “한 마리 값이 소 10마리 값과 맞먹었다”는 말도 있다. 독도에서는 1976년까지 발견됐다는 보고 이후 서식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강치 가죽은 최고급 핸드백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고 한다. 피하지방은 기름으로, 살과 뼈는 비료로 썼다.

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 독도 앞바다에 가득 

독도 서도에 있는 해녀바위. 사진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김윤배 박사

독도 서도에 있는 해녀바위. 사진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김윤배 박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제주 해녀의 수는 감소 추세다. 지난해 말 현재 3437명으로 1년 전인 2020년(3613명)에 비해 4.9%(176명) 줄었다. 1970년대 1만4000여 명이던 제주 해녀는 1980년대 7800여 명대로 줄어든 뒤 2017년에는 3985명까지 줄면서 4000명 선이 무너졌다.

제주 해녀 절반 이상이 70세 이상일 정도로 고령화도 진행 중이다. 70대 이상 해녀가 전체 3437명 중 절반 이상인 2146명에 달한다. 연령별로는 30세 이하 젊은 해녀가 3명,  30~39세 27명, 40~49세 53명, 50~59세가 218명이다. 60~69세가 990명, 70~79세가 1516명으로 가장 많다. 80세 이상 해녀도 630명에 이른다.

제주 해녀들이 물질할 때는 특유의 소리가 바다에 울려 퍼진다. ‘호오이~ 호오이~ 호오이~.’ 돌고래가 내는 듯한 높은 톤의 숨비소리다. 숨비소리는 해녀가 물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며 숨을 참은 후 물 밖으로 나와 순간 내뱉는 소리다. 잠수하면서 생긴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공기 중 산소를 들이마시는 생명의 소리이기도 하다.

"경상북도 귀어 해녀학교 설치 계획"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 서북쪽 해안에서 해녀가 소라를 채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 서북쪽 해안에서 해녀가 소라를 채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도는 해녀 문화유산 보존 사업에 나섰다. 숨비소리 등 해녀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독도와 제주 해녀의 인연 등을 전승·보존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경상북도 해녀 문화 전승‧보전에 관한 조례'도 만들었다.

올 하반기는 포항에 ‘수산창업지원센터’가 문을 연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시설 내에는 ‘경상북도 귀어 해녀학교’를 설치한다. 포항은 경북에서 울릉도를 거쳐 독도로 가는 유일한 뱃길이 열려있는 곳이다. 남건 경북도 독도해양정책 과장은 "이달 말 추경예산이 확정되면 다양한 해녀 관련 사업이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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