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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기대 반, 우려 반 ‘한국식 고향사랑기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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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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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내면 세금을 깎아준다. 보너스로 선물도 챙긴다. 1인당 10만원까지는 한 푼도 손해 볼 일이 없다. 원하는 선물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납세자 입장에선 ‘꿩(세액공제) 먹고 알(선물) 먹기’다. 내년부터 시행하는 ‘고향사랑기부금’을 요약한 것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관련 법률을 통과시켰다. 일본이 2008년부터 운영 중인 ‘후루사토(고향) 납세’를 한국식으로 바꿨다.

사실 ‘고향사랑’이란 말은 멋있게 보이기 위한 수식어에 불과하다. 기부 지역을 정할 때 개인적인 연고는 전혀 따지지 않는다. 납세자가 생판 모르는 곳이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현재 사는 동네만 아니면 된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포인트는 선물이다. 선물의 종류는 소고기·쌀·과일 같은 농축산물에 지역 상품권, 지역축제 입장권 등으로 다양할 것이다. 내년에 제도를 시행하면 선물의 ‘가성비’나 ‘가심비’를 따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선 물품을 주는 대신 1일 역장, 농가 민박 등 체험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일본 고향납세 본따 내년에 도입
10만원까지 세금공제 기부 유도
선물 제공…지역별 과열경쟁 우려

지난 1일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시·도지사와 시·군·구청장에겐 새로운 임무가 생겼다. 기부금을 최대한 많이 유치하는 일이다. 어떤 지역에는 ‘돈벼락’이 떨어질 수도 있다. 전국에서 기부자들이 몰려드는 경우다.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시쳇말로 국물도 없다. 지역별로 기부금을 모집한 성적표도 공개한다. “옆 동네는 얼마를 모았는데 우리 동네는 이게 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연고가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기부를 강요할 순 없다. 걸리면 중앙정부에서 기부금 모집 중단 같은 징계를 받는다.

새 제도에 대한 전망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운영을 잘하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묘수가 될 수 있다. 반면 선물을 둘러싼 과열 경쟁으로 치달을 우려도 있다. 자칫 고향사랑이란 취지는 사라지고 선물 뽑기만 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만일 선물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납품 비리가 발생한다면 최악이다.

고향사랑기부금은 일본의 고향납세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선물의 상한선이 기부액의 30%라는 점은 같다. 납세자 입장에선 본인부담금이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큰 차이다. 일본은 1인당 2000엔(약 2만원)씩 부담금을 물린다. 예컨대 고향납세로 20만원을 내고 6만원짜리 선물을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본인부담금을 빼면 4만원이 남는 셈이다. 세액공제 한도 안에선 돈을 많이 낼수록 유리하다. 세금도 돌려받고 더 비싼 선물도 챙길 수 있어서다. 2020년 기준으로 고향납세에 참여한 인원은 350만 명이었다.

한국의 고향사랑기부금에는 본인부담금이 없다. 대신 세액공제 한도액이 상대적으로 작다. 1인당 10만원까지는 연말정산에서 기부금 전액을 돌려준다. 하지만 10만원 초과액은 16.5%의 세액공제율을 적용한다. 예컨대 20만원을 냈다면 11만6500원을 돌려주는 식이다. 확실한 건 뚜껑을 열어봐야겠지만 10만원짜리 소액 기부가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 10만원까지는 기부금도 전액 돌려받고 3만원짜리 선물 만큼 절세 효과도 있어서다. 일종의 ‘문턱 효과’가 클 것이란 얘기다.

지방자치단체에선 기부자 유치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무턱대고 가성비 좋은 선물을 내세워 기부자를 끌어들이려는 건 하수다. 선물만 보고 찾아온 사람들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다른 동네에서 더 좋은 선물을 제시하면 언제라도 떠날 사람들이다. 다른 곳도 많은데 하필 우리 동네에 관심을 보내준 사람들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동네에 사는 ‘거주인구’는 아니지만 우리 동네와 좋은 인연을 맺는 ‘관계인구’를 만드는 일이다.

기부금으로 모은 돈을 어디에 쓰느냐도 중요하다. 일본에선 원어민 교사를 채용해 마을 어린이들에게 영어 교육을 제공하기도 한다. 거동이 어려운 노약자에게 교통편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지진 등으로 피해를 본 지역에 기부금이 몰리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기부자가 특별한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을 때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

올해도 벌써 절반가량 지나간다. 남들이 하는 걸 흉내만 낸다면 하루 이틀에도 가능하겠지만 착실히 준비해서 차별화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할 수 없다. 지자체장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사업이다. 기부금 모집이나 마케팅 등에서 민간 전문가의 도움도 받아야 할 것이다. 일본도 지난 14년간 수많은 시행착오와 부작용을 겪었다. 시행 초기에 이런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가 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