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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수익률 72%…러시아 펀드 비상은 루블 강세 '착시 효과'

중앙일보

입력

홍모(32)씨는 러시아 펀드에 투자했다가 속앓이 중이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가 이뤄진 직후 “전쟁이 끝나면 크게 오르겠지”라는 생각에 투자한 게 패착이었다. 단숨에 40%까지 손실이 난데다 전쟁이 장기화하며 환매도 중단됐다. 그나마 최근 펀드 손실 폭이 -10%로 준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안도하기엔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된 러시아 펀드는 총 9개다. 설정액은 약 1500억원에 달한다. 지난 3월 초부터 신규 설정은 물론 환매도 금지됐다. 한 운용사는 “현재 러시아 펀드에 편입한 주식을 팔 수도 살 수도 없다”고 했다. 자산운용사들은 러시아 펀드 투자자의 수익자총회도 지난 4월 말 이후 열지 않고 있다. 환매 연기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어서다.

최근 러시아 펀드 수익률 고공행진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럼에도 '포성에 사라'는 증시 격언이 옳았던 것일까. 러시아 주식에 투자한 펀드 수익률이 최근 고공행진 중이다. 8일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해외 주식형 펀드의 3개월 수익률 1~4위가 모두 러시아 펀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부터 최근까지의 수익률이다.

최근 3개월 해외 주식형 펀드 수익률 1위는 신한 더드림 러시아 펀드로 72.5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키움러시아익스플로러 펀드(55.96%)와 KB러시아대표성장주 펀드(51.79%)도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수익률 고공행진을 ‘착시효과’라고 지적했다. 박정호 신한자산운용 팀장은 “최근 러시아 펀드 수익률 상승은 실제 주가가 올라서가 아닌 루블화 강세에 의한 ‘착시효과’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투자자가 러시아 주식을 사고팔 때는 루블화로 표시된 가격을 달러로 결재해야 한다. 펀드의 루블화 자산도 달러로 환전돼 수익률이 계산된다. 루블화에 대한 환 헤지(위험 회피)가 이뤄지지 않아 루블화 변동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의미다. 루블화 가치가 오르면 수익률도 덩달아 오르는 셈이다.

루블화 강세에 의한 "착시 효과"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달러당 140루블까지 떨어졌던 루블화 가치는 8일 오후 3시 달러당 61.04루블에 거래되고 있다. 루블화 가치가 2배 이상 오르며 전쟁 직전의 달러당 50루블에 근접했다. 이런 루블화 강세는 러시아 정부가 개입한 결과물이다. 러시아 정부는 가스대금을 루블로만 받는 등 인위적으로 루블화 가치를 떠받치고 있다.

루블화 강세로 인한 착시 효과를 보여주는 예가 러시아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두 지수인 RTS와 MOEX 지수(IMOEX) 간의 괴리다. 러시아 증시를 추종하는 IMOEX는 루블화 기준이다. 반면 RTS는 MOEX의 우량 기업 50개를 산출해 달러로 지수를 산출한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 3000선이던 IMOEX는 전쟁이 터지자 2058까지 떨어진 뒤 최근 2200대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반면, RTS 지수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한때 700선까지 떨어졌다가 8일 기준 1180.47로 전쟁 직전 수준까지 회복했다. 두 지수 간의 괴리가 곧 환율에 따른 착시인 셈이다.

주가가 비실대더라도 환율 덕에 수익률이 좋아지면 투자자 입장에서 나쁠 게 없다. 문제는 루블화 강세도 ‘사상누각’이란 데 있다. 박 팀장은 “현재 러시아 주식 시장은 외국인 거래가 금지된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외국인 투자자가 돌아오는 등 시장이 정상화 됐을 때도 이처럼 루블화 강세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외국계 은행 로스뱅크도 로이터에 "러시아 정부의 자본통제 조치로 루블화 가치가 크게 올랐지만, 연말까지 루블화 가치가 다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슷한 달러당 90루블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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