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서봉수의 노림수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 . 서 봉 수 9단 ● .천야오예 5단

노림수는 은밀하고 짜릿하며 위험하다. 당하는 쪽도 위험하지만 여기에 목을 매는 것은 더 위험하다. 그러나 노림수가 성공해 깨끗하게 승리할 때의 기분이 너무 근사해 무릇 바둑 두는 사람이라면 그 유혹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노림수는 식도락가가 즐기는 복어의 독과 같다.

장면도(144~150)=백△로 붙이자 흑▲로 반발했다. 금방 수가 난다고 봤으면 이렇게 반발할 사람은 없다. 천야오예(陳耀燁)는 귀에서 수 내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형세가 안 좋기 때문에 흑?의 도전을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여기서 한판 붙고 싶었을 것이다.

147로 막았을 때가 이 판의 클라이맥스. 서 9단은 148로 1선에 가만히 뻗었는데 아마 이 수를 본 천야오예의 가슴은 쿵하고 내려앉았을 것이다. 이 수가 서 9단이 오래전부터 노리던 수였다.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천야오예는 까마득히 몰랐다. 어쩌면 상대가 노장이라서 경시했는지도 모른다.

서 9단은 재미있고 행복했을 것이다. 최고로 잘나가는 중국의 신예에게 한 수 가르쳐 주는 기분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148이 놓인 이상 이제 귀의 백을 잡는 수는 없다. '참고도'흑1로 차단하면 백2로 살아버린다. 흑이 더욱 억울한 것은 백이 속을 다 도려내는 바람에 흑대마의 목숨이 거꾸로 위험해졌다는 것이다. 평소 소림사 동자승처럼 차분하던 천야오예지만 이때는 아마도 미쳐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흑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