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두팔 잃었는데 지장 '꾹'…엉터리 문서에 상이연금 날렸다

중앙일보

입력 2022.06.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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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군 복무 중 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은 군인의 의무기록에 지장(指章)이 찍힌 사실이 현충일을 앞두고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심지어 해당 상이용사는 전시동원 인력으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런데도 군 당국은 “사실 확인이 어렵다”며 진상조사를 거부한 상황이다.

사연의 주인공은 지난 4월 세계상이군인 체육대회(인빅터스)에서 사이클 경기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나형윤(38ㆍ예비역 중사) 선수다. 나 선수는 지난 2006년 11월 강원도의 22사단 최전방 GOP(일반전초) 부대 근무 시절 사고를 당했고, 8차례 수술 끝에 양팔을 절단했다. 현재 의수를 달고 생활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상이군인 체육대회(인빅터스) 사이클 남자 3.3㎞ 개인독주 로드 바이크1에 출전한 나형윤 선수가 의수를 착용하고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2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상이군인 체육대회(인빅터스) 사이클 남자 3.3㎞ 개인독주 로드 바이크1에 출전한 나형윤 선수가 의수를 착용하고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재활 끝에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태권도로 운동에 입문했다. 이후 육상, 철인 3종, 알파인 스키 등을 경험한 뒤 사이클로 전향한 지 3년 만에 인빅터스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선 한국신기록(1㎞ 트랙 독주)까지 세웠다.

나 선수는 5일 중앙일보에 사고 당시 상황을 자세히 밝혔다. 그는 “사고가 발생한 날 강풍으로 고압선이 끊어지면서 전기가 나가자 철책 경계등이 꺼지는 등 부대원들의 야간 경계작전에 문제가 생겼다”며 “부대 지휘관의 명령으로 전봇대에 올라가 고압선 수리 작업을 하다가 감전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양쪽 손목과 양 겨드랑이, 왼쪽 허벅지, 오른쪽 발바닥이 고압전기로 터졌고 튼튼한 군화마저 터져나간 상태였다”고 말했다.

나형윤 선수의 군 복무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나형윤 선수의 군 복무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나 선수는 사고 직후 국군강릉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이곳에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이후 민간병원인 강릉아산병원을 거쳐 화상 전문병원인 서울의 한강성심병원까지 옮긴 뒤에야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하루 200만원에 이르는 병원비 부담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양팔에 괴사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하루하루 팔이 검게 썩어 들어가다 드레싱 도중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며 “의사 선생님이 더 기다렸다간 패혈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며 빨리 절단할 것을 권했다”고 밝혔다.

결국 절단 수술을 받은 그는 2007년 4월 재활 치료를 위해 군 병원(강릉병원)으로 복귀했고, 두 달여 뒤 의병 전역했다.

“전시근로역도 15년 만에 알아”

그런데 상이용사인 나 선수는 전역 이후 15년간 상이연금의 존재를 몰랐다. “군에서 어느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이번 인빅터스에 참가하면서 동료들로부터 뒤늦게 상이연금에 대해 알고 수소문했지만, 정부로부터 “군인재해보상법상 장애 발생일로부터 5년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는 답변만 받았다.

나 선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로 사고 당시 의무기록을 받아본 뒤 큰 충격을 받았다. 군 병원이 장애 상태를 최종 확인하는 ‘의무조사 의결서’(2007년 5월 2일 작성)의 동의란에 양팔이 없는 그의 지장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형윤 선수가 최근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의무조사 의결서. 나 선수가 양팔 절단 수술을 받고 군 병원에 재활 치료를 위해 복귀한 이후 작성(2007년 5월 2일)된 이 서류의 동의란에 그의 지장이 찍혀 있다. 병원장이 최종 결재한 이 서류에는 상이등급은 공란으로 비워져 있고, '전시근로역'에 해당하는 심신장애 5급이 부여돼 있다.

나형윤 선수가 최근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의무조사 의결서. 나 선수가 양팔 절단 수술을 받고 군 병원에 재활 치료를 위해 복귀한 이후 작성(2007년 5월 2일)된 이 서류의 동의란에 그의 지장이 찍혀 있다. 병원장이 최종 결재한 이 서류에는 상이등급은 공란으로 비워져 있고, '전시근로역'에 해당하는 심신장애 5급이 부여돼 있다.

게다가 의결서엔 신체등급(심신장애등급 5급)과 보상등급(장애보상등급 1급)은 부여하면서도 상이듭급은 공란으로 비워둔 상태였다. 당시 의무조사에 참석한 국군강릉병원의 진료부장과 정형외과장, 신경외과장, 등록과장 등이 서명하고 병원장이 결재한 서류였다.

나 선수는 “실제로 저나 가족이 서류를 보고 서명을 했다면 공란인 상이등급에 관해 물어보고 연금도 신청했을 것”이라며 “당사자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내린 그런 결정부터가 불법”이라고 말했다.

나 선수가 받은 신체등급도 문제다. 병역법에 따르면 심신장애 5급은 “현역 또는 보충역 복무를 할 수 없으나 전시근로역 복무를 할 수 있는 사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나 선수는 “전시 동원 인력에 해당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며 “다수의 군의관이 그런 사실에 동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상이군인 체육대회(인빅터스)에서 사이클 남자 3.3㎞ 개인독주 로드 바이크1에 출전한 나형윤 선수가 지난 4월 22일(현지시간) 금메달을 목에 건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상이군인 체육대회(인빅터스)에서 사이클 남자 3.3㎞ 개인독주 로드 바이크1에 출전한 나형윤 선수가 지난 4월 22일(현지시간) 금메달을 목에 건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와 국군의무사령부는 이같은 허위 날인과 관련한 중앙일보의 질문에 “시간이 많이 경과해 사실확인이 어렵다”고만 답했다. 따로 진상조사를 벌이기 어렵다면서다.

국방부는 나 선수의 상이연금 재심 가능성에 대해선 “나 선수가 복무했던 22사단에서 관련 부서(국방부 군인재해보상과)로 청구절차를 문의한 상황”이라며 “번복 가능성에 대해선 최종 심의를 진행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상이연금 문제는 비단 나 선수의 일만이 아니다. 천안함 폭침 당시 부상으로 온몸에 장애가 발생한 신은총 예비역 하사 등 천안함 생존 장병도 최근에야 상이연금 제도를 알고 뒤늦게 신청하기 시작했을 정도로 상당수 상이용사가 존재를 모르고 지내왔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선 "군 당국이 제대로 알리지 않은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일보 2021년 8월 25일자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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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나 선수는 “정부가 매번 국가유공자에 대한 지원과 예우를 얘기하면서도, 정작 이렇게 있는 제도조차 고지하지 않는다”며 “군 복무 중 다친 것이 확실한데도 소멸시효 운운하며 연금 신청조차 안 받아들이는 상황을 보며 어느 누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무지해 생긴 제 잘못을 인정하고 평생 후회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라고 반문했다. 6월 6일인 오늘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현충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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