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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안하는 것도 의견"…MZ 투표 포기족 이유있는 변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검정초등학교에 마련된 부암동 제2투표소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검정초등학교에 마련된 부암동 제2투표소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고, 와 닿는 공약도 없고….”
지난 1일 이재성(29)씨는 “난생처음으로 투표권을 포기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전투표를 앞두고 ‘벼락치기’로 공약집을 펼쳤다가 투표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정당만 보고 후보자를 뽑을 수는 없지 않냐”는 이유에서다.

“이번엔 패스” 늘어난 ‘선거포기족’

이씨처럼 이번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20대와 30대들이 부쩍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지상파 3사가 출구조사 등을 바탕으로 추정한 20대와 30대 투표율은 30%대였다. 20대 남성의 경우 29.7%로 가장 낮았다. 중앙선관위가 분석한 7회 지방선거 당시 20대와 30대 투표율은 52%와 54.3%였다.

이번에 처음으로 투표권을 포기했다는 MZ들이 적지 않았다. 한모(28)씨는 “처음으로 투표를 포기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대선에서 지지했던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는데, 바로 선거가 치러져 선거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던 거 같다”고 말했다. 20대 직장인 김모씨도 “지난 지방선거 때 몰표를 줬는데 4년 동안 바뀐 게 없었다.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효능감이 중요한 기준인 MZ세대에게 이번 지방선거는 투표할 이유가 없었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30대 직장인 채모씨는 “대선과 달리 이번 선거로 내 삶이 바뀔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투표소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은평구에 거주하는 이모(29)씨는 효능감을 못 느끼면서도 투표를 한 경우다. “지지하는 후보는 없지만, 2030대들이 정치에 관심 없다는 오명이 싫어 투표했다”고 했다. 그는 “공약집을 꼼꼼하게 살폈지만, 의무감을 제외하곤 사실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며 “양당 후보간 공약 차이가 크지도 않았고, 두 후보의 공약 모두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공약이 많았다.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설명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2일 울산 북구 명촌사거리에 각 정당의 지방선거 후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지난달 22일 울산 북구 명촌사거리에 각 정당의 지방선거 후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지난 1일 한 대학 커뮤니티에선 “총학생회장 뽑는 선거도 아니고 다음엔 투표 참여하자”란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진짜 대학교 총학생회장 투표율과 비슷하다” “이러니 20대들을 봉으로 보는 것”이라는 자조적인 댓글이 달렸다. 대학 사회의 관심 밖으로 사라진 총학생회와 기성 정치권이 비슷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MZ들에게 선거는 의무가 아닌 권리”

전문가들은 낮은 투표율에 대해 선거를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 2030세대들이 선거 피로감을 더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동열 글로벌리서치 부장은 “대선 직후에 치러지면서 유권자들은 피로감을 느꼈을 것이고, 대선 직후 치러진 만큼 정치효능감이 낮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선거를 의무라고 생각하는 고령층과 달리 2030세대들은 투표 행위를 소비자로서의 하나의 정치적 주권을 소비하고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피로감이어도 2030에게 훨씬 큰 변수였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선이 끝난 다음 3개월도 안 돼서 치러진 선거인데, 양당이 들고나온 이슈도 똑같았다. 지방선거가 대선과 구분되는 특징이 없는 상황에서 선거에 대한 피로감이 높았을 것”이라며 “젊은 세대일수록 지루하고 싫증 나는 건 기피한다. 선거를 안 하는 것도 하나의 정치적 의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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