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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민주당 쇄신 아이템: 진실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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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지난달 20일 오후 9시30분쯤 인천시 계양구 까치공원 입구 상가 앞에서 이재명 후보가 봉변을 당했다. 치킨집에서 손님들이 닭뼈를 버리는 데 쓰는 스테인리스 그릇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 후보가 뒤통수에 뭔가가 떨어진 것에 놀라 뒤로 돌아 위쪽을 응시하는 모습이 영상에 찍혔다. 그 그릇이 머리를 때린 것은 아니었고 그릇 안에 있다가 공중에서 흩어진 닭뼈 또는 다른 오물이 머리와 어깨 쪽에 낙하했던 것으로 화면에 나타난다.

그 그릇을 던진 60대 자영업자(간판 설치업) 원모씨는 이틀 뒤에 구속됐다. 공직선거법 위반(선거방해)과 특수폭행(도구를 사용한 폭행) 혐의가 적용됐다. “도주 우려가 있다”는 게 법원의 영장 발부 사유였다. 심각한 범죄가 아니어도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으면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사례가 많아 알아보니 그 경우는 아니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집이 있고, 가게도 하나 가지고 있다고 인천 계양경찰서 수사 책임자가 말했다.

60대 구속된 ‘계양 투척 사건’ 보니
팩트 교묘히 비튼 거짓이 실상 왜곡
민주당 실패의 원인은 이런 눈속임

그 수사 책임자는 “선거운동을 할 자유를 방해한 것은 중한 범죄다. 엄격한 법 적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구속영장 신청 이유를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자영업자 원씨는 정당 가입이나 정치 활동 이력이 없다. 그는 경찰에서 “(선거 유세 때문에) 시끄러워서 술김에 앞에 있는 그릇을 던졌다”고 말했다. 법원에서의 영장심사 때는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경찰의 영장 신청, 그것을 그대로 법원으로 넘긴 검사의 영장 청구, 법원의 영장 발부가 과연 옳았느냐에 대한 판단은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원씨 구속이 과하다고 보는 사람들은 최근의 여러 사건과 비교한다. 상당히 무거운 혐의로 수사를 받고 기소된 권력자들(이상직·이용구·윤미향 등)은 대부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거나 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기억 속에 있다.

원씨가 법원에서 영장심사를 받은 지난달 22일 오후 이재명 후보 측은 입장문을 냈다. ‘이 후보는 자신에게 철제 그릇을 던진 가해자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과 관련해 선처를 바란다고 밝혔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밝혔다’는 과거형 서술어 때문에 경찰에 ‘처벌불원서’를 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계양경찰서 수사 책임자는 이 후보가 선처 요구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입장문에 대한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이 후보 측이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경찰에 한 조처는 아무것도 없었다.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법원에서 영장심사가 열리자 부랴부랴 이 후보가 바라는 게 아니라고 밝힌 것으로 짐작된다.

원씨의 구속으로 ‘다친 사람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민주당 지지자들은 문제의 스테인리스 그릇이 ‘옥상에서 던져진 것’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발원지는 김어준 방송이었다. 건물 옥상이 투척 지점이 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험성이 커진다. 위해 고의성 의심도 증가한다. 관련 영상 중 하나에는 원씨가 1층의 치킨집 문밖 테이블 위에 있던 그릇을 집어 위로 휙 던지는 모습이 뚜렷이 나온다. 그 어떤 표적을 겨냥한 투척이 아니었다. 그릇은 수직 낙하가 아니라 포물선 낙하를 했다.

‘옥상에서 쇠 그릇을 던졌고, 이 후보는 그런 행위를 한 사람에게까지 선처를 요청했다.’ 사실과 거짓이 뒤섞여 이런 엉터리 진실이 창조됐다. 사실을 교묘히 비튼, 지난 정권에서 무수히 목격한 민주당식 날조다. 며칠 전에 영화 ‘그대가 조국’을 봤다. 후반부 한 시간은 정경심씨가 동양대에서 썼던 컴퓨터에 저장된 문서는 위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라는 주장을 전하는 영상으로 채워졌다. 조민씨의 스펙이 허위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는 그 컴퓨터 말고도 많은데, 그 부분은 영화에서 일절 거론되지 않았다. 허구의 세계에서 진실의 땅으로 건너오길 권한다. 그게 민주당과 주변 인사들의 쇄신 길이다. 많은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