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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모래주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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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사회에디터

장주영 사회에디터

체력단련을 위해 발목에 차는 중량 밴드, 모래주머니가 요즘 자주 언급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규제를 이 모래주머니에 비유하면서다. 지난달 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윤 대통령은 “모래주머니를 달고선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뛰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현대차·SK·롯데 등 대기업이 잇따라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한 뒤에 나온 발언이다. 규제 철폐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규제를 모래주머니에 빗댄 표현력은 참신하지만, 따지고 보면 규제 철폐 구호는 역대 정권에서 늘상 있어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전봇대 뽑기’를 내세웠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손톱 밑 가시’를 빼주겠다고 했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규제샌드박스’를 만들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규제가 계속 화두가 된 이유는 유독 한국에 규제가 많거나, 없앤 것 이상으로 새 규제를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구호만 외쳤지 규제 철폐를 제대로 못했다는 뜻도 된다.

윤 대통령의 모래주머니 없애기는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 윤 대통령은 “법령과 관계없는 행정 규제 같은 그림자 규제는 확실하게 개선하고 법령개선 등 필요한 것 중에 대통령령과 부령으로 할 수 있는 규제들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며 “법률개정이 필요한 것은 국회와 협조해서 규제 철폐를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빨리 없앨 수 있는 규제는 빨리 없애고, 법률 개정이 걸린 규제는 야당 설득을 잘하겠다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사실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전담 조직과 회의 몇 개 만드는 수준이어선 곤란하다. 구둣발이 닳을 만큼, 기업의 애로를 청취하고 현장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속전속결로 두 달 만에 이뤄진 대통령실 이전, 통상 40일인 입법예고 기간을 이틀로 줄여서 추진한 법무부 인사검증 조직 신설 등 임기 초 윤 대통령이 보여준 특유의 추진력을 국민이 진짜 체감할 수 있는 데에 써야 한다. 규제 철폐가 딱 그런 분야다.

규제 철폐는 우리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다. 기업과 근로자, 즉 국민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더 이상 늦춰서도 안되고, 늦출 이유도 없다. 전봇대→손톱 및 가시→모래주머니… 그다음 더 그럴싸한 표현이 나온대도, 이젠 너무 식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