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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뷰 아파트' 입주…후손 손탄 獨계곡은 세계유산 박탈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포 장릉 반경 500m 이내에 위치한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의 신축 아파트에 주민 입주가 시작됐다. 장릉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위가 어떻게 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연합뉴스]

김포 장릉 반경 500m 이내에 위치한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의 신축 아파트에 주민 입주가 시작됐다. 장릉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위가 어떻게 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연합뉴스]

'왕릉뷰 아파트'가 경관을 해친다는 주장이 제기된 김포 장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지위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까. 지난달 30일 검단 신도시 내 대광로제비앙 735세대에 대한 인천 서구청의 사용검사 확인증 발급으로 주민 입주가 가시화되면서 문화유산으로서 장릉의 운명에 관심이 쏠린다.

남은 단추는 법원·검찰… 러시아 탓에 회의 기약없어 #되돌리지 못하면? '삭제'까지는 여러 단계 거쳐 #

유네스코 “장릉‧서오릉‧태릉 정보 달라”

2022년 4월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조선왕릉과 관련된 개발현황을 정리해 보고한 문서 요약본. [사진 유네스코]

2022년 4월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조선왕릉과 관련된 개발현황을 정리해 보고한 문서 요약본. [사진 유네스코]

문화재청은 지난 4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조선왕릉 보전현황 보고서를 제출한 상태다. 김포 장릉과 고양의 서오릉, 서울 태릉 인근에서 진행 중인 주택 건설, 개발 추진 등에 관한 정보를 담은 보고서다. 장릉 경관 등을 둘러싼 갈등 사실을 접한 유네스코 측이 지난해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고 한다.

보고서 검토 결과 보전·관리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되면 ‘보전 의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전체 회의에 올라간다. 지금까지 한국의 세계유산이 보전 의제에 오른 적은 없었다.

‘보전 의제’-회의-실사-회의-‘위험에 처한 유산’… 그래도 안 되면 삭제

물론 보전 의제에 올랐다고 해서 곧바로 세계유산의 지위가 박탈되는 건 아니다. 보전 의제를 검토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등 자문기구에서 전문가를 파견해 실사를 진행한다. 이 결과에 따라 실제로 위험에 처해있다는 점이 입증되면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분류된다. 이후 정부의 보전 및 개선 노력에 따라 세계유산 리스트에서 퇴출당하지 않고 ‘위험에 처한 유산’ 지위를 상당 기간 유지하거나, 보전 성과가 뚜렷할 경우 위험에 처한 유산 리스트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10~20년간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독일 드레스덴도, 영국 리버풀도… 사람들 편의 따르고 세계유산 멀어졌다

18~19세기 무역항구의 모습을 간직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던 영국 리버풀은 지난해 세계유산에서 삭제됐다. [Xinhua=연합뉴스]

18~19세기 무역항구의 모습을 간직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던 영국 리버풀은 지난해 세계유산에서 삭제됐다. [Xinhua=연합뉴스]

세계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서 박탈된 경우가 없지 않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16~18세기 왕궁과 어우러진 경관이 뛰어나 2004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뒤 ‘주민의 편의를 위해’ 다리 건설을 시작했다. 교통체증은 해소됐지만, 세계유산 지정 2년만인 2006년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분류됐고 2009년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됐다. 2004년 '해양 무역도시'로 세계유산에 올랐던 영국 리버풀은 재개발이 진행되며 18~19세기 무역 항구의 모습이 사라졌고, 지난해 세계유산 지위를 박탈당했다.

'문화재보호법 위반' 대표 3인… 서구청 직원은 '무혐의' 아니고 '증거 불충분'

31일 경기 김포 장릉에서 바라본 '왕릉뷰 아파트' 모습. 사진 오른쪽에 장릉의 세계유산 지정 전 건축된 아파트 건물이 보인다. 그 뒤로 인천 검단 신도시의 29층짜리 신축 아파트가 병풍처럼 서있다. [뉴스1]

31일 경기 김포 장릉에서 바라본 '왕릉뷰 아파트' 모습. 사진 오른쪽에 장릉의 세계유산 지정 전 건축된 아파트 건물이 보인다. 그 뒤로 인천 검단 신도시의 29층짜리 신축 아파트가 병풍처럼 서있다. [뉴스1]

한국의 장릉 보전 노력과 관련해, 지난해 건설사 측이 문화재청을 대상으로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공사중지명령 처분취소소송의 결과가 유네스코의 판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난달 20일 변론을 마친 이 소송은 다음달 8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19 등으로 소송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는데, 올 초 문화재청이 정부법무공단을 통해 법무법인 화우에 소송 대리를 맡기면서 본격 대응에 나섰다. 건설사(대광건영) 측 소송대리는 법무법인 광장이 맡았다.

지난달 31일 인천 서부경찰서가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건설사 3곳 대표를 검찰에 송치한 점도 고려 요인이다. 바뀐 문화재보호법 조항을 반영하지 않은 채 아파트 건설을 승인한 서구청 직원의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무혐의’가 아닌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론이 났다. 직무유기 혐의가 있긴 하지만 재판까지 갈 만한 직접적인 증거는 부족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은 ‘장릉의 경관 변화는 관람객이 들어갈 수 없는 부분에서의 뷰’이고, ‘건설사의 손해를 희생해 공공복리를 옹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건설사 측이 제기한 건설중지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바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당시 언급된 ‘왕릉에서 보이는 경관’이 ‘관람객이 들어갈 수 있는’ 부분에 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과 유네스코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법원이 ‘괜찮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 유네스코 측은 ‘괜찮지 않다’고 여길 여지가 남아있는 셈이다.

뜻밖의 ‘러시아 변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유산위원회 회의가 기약 없이 미뤄진 점도 뜻밖의 변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연례 회의는 해마다 6월에 열린다. 2022~2023년 의장국은 러시아로, 올해는 이달 19~30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지난달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무기한 연기하면서 다음 회의가 언제 열릴지 알 수 없게 됐다. 올해 안에 열리지 않을 공산도 있다. 회의 자체가 늦어지는 만큼 한국으로서는 시간을 벌게 된 셈이 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다른 나라의 경우를 참고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릉을 포함한 조선왕릉의 등재 과정에 참여했던 상지영서대 이창환 교수는 "세계유산을 갖는 것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국민적 자긍심이 걸린 이슈"라며 "세계유산 보전과 개발을 둘러싼 충돌이 앞으로도 계속 있을 텐데 이번 장릉 대처가 나쁜 선례가 되지 않도록 정부가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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