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려죽을 뻔" 10시간 줄선다…'할미 학번'도 달렸던 대학축제 [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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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청춘을 만났습니다. 그것도 자유로운 청춘을. 3년 만에 열린 ‘대동제(大同祭)’에서였습니다. 대학 친구들과 줌(Zoom)으로 만난 시간이 어쩌면 더 길었을, 비운의 코로나 학번들의 숨겨왔던 에너지가 마침내 ‘봉인해제’ 됐습니다. 고요했던 광장도 돌변했습니다. 무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노랫소리, 학생들의 환호성과 웃음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한양대 축제 '2022 라치오스'가 열린 27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뉴시스

한양대 축제 '2022 라치오스'가 열린 27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뉴시스

‘MZ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밀실팀이 대학 축제를 놓칠 순 없었습니다.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주요 대학 축제가 몰려있는 ‘슈퍼위크’ 기간,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지 3년 만에 첫 축제를 맞은 20학번 인턴 기자, 6년 만에 축제를 간 13학번 ‘할미’ 기자가 현장의 감동을 체험기로 재구성했습니다.

[밀실]<제91화> #2022 대학 축제를 가다

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나만 알고 있는 MZ 트렌드, 모두와 공유하고 싶은 MZ의 이야기 등을 메일로 보내주세요.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으러 가겠습니다.

“깔려 죽을까 무섭지만 신나요” 콘서트 뺨쳤다 

25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 재학생이 재학생존(재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은 돗자리를 펴고 양산 등을 들고 뙤약볕에서 대기했다. 함민정 기자

25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 재학생이 재학생존(재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은 돗자리를 펴고 양산 등을 들고 뙤약볕에서 대기했다. 함민정 기자

사람 이렇게 많은 거 처음 봐. 이러다 깔려 죽는 거 아냐?

2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민주광장에 있던 밀실 팀원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입니다. 축제가 열리는 광장이 미어터질 것 같았거든요. 특히 학교 곳곳에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날 저녁 고려대에는 아이돌 가수 ‘에스파’의 축하 공연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무대 앞쪽에 있는 ‘재학생존(재학생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가려고 학생들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입장줄의 맨 앞쪽은 공연 시작 10시간 전부터 온 학생들이 차지했습니다. 학생들은 돗자리를 펴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우산과 선글라스를 쓰기도 했습니다.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 장면은 13학번 ‘할미’ 기자에게도 생소했습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줄을 섰다는 고려대 의대생 3인방은 응원 플래카드를 만들며 “불태울 각오로 왔다. 재밌고 설렌다”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대동제가 열린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이 26일 저녁에 열릴 축하 공연을 보기 위해 뙤약볕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대동제가 열린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이 26일 저녁에 열릴 축하 공연을 보기 위해 뙤약볕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려대 18학번인 김찬희 석탑대동제 준비위원장은 “이렇게까지 줄을 길게 선 건 1905년 개교 이래 처음”이라며 “1만5000명까지 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날 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며 “압사당할 것 같다”는 내용의 신고를 받고 119가 출동하는 등 소란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연하게 누렸던 학교 축제가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2번의 축제를 경험해봤지만, 올해 축제 참여율이 코로나 전보다 훨씬 높아진 것 같아요. (18학번 조혜민씨)

코로나 전후 축제를 모두 겪어본 고학번들은 ‘인파’를 피부로 느꼈다고 합니다. 2년 간 중단됐던 대규모 교내 행사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 올해 축제에 참여한 인원이 코로나 이전보다 늘어난 것 같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습니다. 서울 성동구 한양대 캠퍼스에서 미니 바이킹을 탔던 17학번 박종호(26·남)씨는 “코로나 전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진 것 같다. 과거에 부스·주점은 있었지만 놀이기구는 없었는데 재밌었다”고 했습니다.

26일 고려대학교 축제 무대에서 걸그룹 에스파가 공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고려대학교 축제 무대에서 걸그룹 에스파가 공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서울 고려대학교 축제에서 걸그룹 에스파의 공연이 끝나자 마자 무대 앞쪽에 사람이 몰려 사고가 일어나 공연이 잠시 중단되고 있다. 뉴스1

지난 26일 서울 고려대학교 축제에서 걸그룹 에스파의 공연이 끝나자 마자 무대 앞쪽에 사람이 몰려 사고가 일어나 공연이 잠시 중단되고 있다. 뉴스1

“축제는 처음이라…” 코로나 학번의 첫 경험

2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 재학생과 외부인 등이 학교 축제를 즐기는 모습. 함민정 기자

2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 재학생과 외부인 등이 학교 축제를 즐기는 모습. 함민정 기자

축제가 처음이라서 이런 건지 몰랐어요. 막상 겪으니 ‘이게 대학 생활이구나’를 느꼈어요.

올해 주인공은 단연 ‘코로나 학번’이었습니다. 입학 이후 맞은 첫 축제였기 때문인데요, 축제 부스에서 만난 고려대 20학번 김민경(21·여)씨는 “2년간 축제를 못해 억울하지 않았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게 대학 생활이구나’를 느꼈다. 소속감과 애교심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느덧 3학년이 됐지만, 첫 축제를 맞은 강민지(21) 밀실 인턴은 “응원 구호를 1학년 때부터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나도 몰라서 아쉬웠다. 하지만, 기다렸던 만큼 불태웠다”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한국외대 동아리 부스 앞에서 혼자 음식을 먹고 있던 김모(21·여)씨는 “나도 새로운 경험이지만, 2년 후배인 새내기들처럼 마냥 마음 놓고 놀 수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2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대동제에 참여한 학생들의 모습. 축하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입장 전 긴 줄이 늘어선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함민정 기자

2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대동제에 참여한 학생들의 모습. 축하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입장 전 긴 줄이 늘어선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함민정 기자

돌아온 부스·주점…‘시행착오’도

축제에 발맞춰 동아리 부스와 주점도 부활했습니다. 회오리감자, 닭꼬치, 김치전 등은 학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부스와 푸드트럭 앞에서 1시간 이상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주점에서 오코노미야키를 만들던 고려대 21학번 조재영(21·여)씨는 “첫날만 100장을 팔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 가장 맛있는 요리법으로 준비했다”며 웃었습니다.

주점 부스를 둘러본 결과, 대부분의 스텝은 신입생과 코로나 학번이었습니다, 첫 축제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축제 경험자’ 선배들은 졸업을 했거나 취업 준비로 바쁜 탓입니다. 한국외대 18학번 조혜민(24·여)씨는 “운영진 다수가 처음 축제를 경험해 운영이 다소 미숙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험적인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대학 축제에서 판매하는 음식들. 밀실팀은 닭강정, 회오리감자, 스테이크, 볶음밥을 구입했다. 김민수 인턴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대학 축제에서 판매하는 음식들. 밀실팀은 닭강정, 회오리감자, 스테이크, 볶음밥을 구입했다. 김민수 인턴

부스에서 안주만 팔고 술은 다른 곳에서 사라고 안내하는 ‘술 없는 주점’이 대다수였지만, ‘꼼수’ 부스도 등장했습니다. “소주병으로는 판매가 안 된다”며 플라스틱 컵에 얼음과 술을 소분해 파는 곳이 있었는데요, 부스 운영진에게 ‘축제 주점에서 술을 판매하는 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컵에 담아 파는 건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2018년 교육부는 “주세법상 주류판매업 면허가 없는 대학생이 술을 판매하는 것은 위법 행위이며, 이를 준수해 달라”는 협조 공문을 각 대학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고려대 주점 앞에서 만난 연세대생 손의한(20·남)씨와 조아영(20·여)씨는 “주점에서 술을 팔면 안 되는 걸 몰랐다”고 했습니다.

2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축제 현장에 설치된 흰 천막의 주점 부스 앞에서 학생들이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먹고 있다. 함민정 기자

2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축제 현장에 설치된 흰 천막의 주점 부스 앞에서 학생들이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먹고 있다. 함민정 기자

“외부인 NO” 재학생존 논란

등록금으로 운영하는 축제인 만큼 재학생에게 특권을 주는 게 정당하다고 봐요. 공평한 것 같아서 좋아요. (익명 요청한 한양대 재학생)

‘재학생존’ 논란도 재점화됐습니다. 고려대는 올해 처음 ‘고대생존’을 도입했고, ‘한양존’은 2018년부터 운영해왔다고 하는데요, 27일 한양존 입장줄의 맨 앞에 서 있던 학생들에게 묻자 답을 피했고, 일행 중 익명을 요청한 여학생은 “정당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연예인 축하 공연의 ‘초호화 라인업’이 공개되자, 팬 등 외부인의 관심이 폭발했습니다. 돈을 받고 학생증을 양도하거나, 입장권을 불법 거래하는 움직임이 있었죠. 학교 측은 QR코드와 신분증을 통해 확인하는 등 본인 인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SNS에 고려대 축제 입실렌티 양도 거래글이 올라왔다. 트위터 캡처

SNS에 고려대 축제 입실렌티 양도 거래글이 올라왔다. 트위터 캡처

밀실팀과 SNS 메시지를 주고 받은 A씨는 입실렌티(고려대 축제) 티켓을 양도한다며 “15만원까지 나왔다. 얼마를 주실 수 있냐”고 했습니다. 학생증을 인증한 그가 제시한 가격은 외부인 티켓가 1만5000원의 10배 이상이었는데요, 고려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3년 만에 열린 축제에 대한 갈증이 있다보니, 암표가 성행한 게 아닌가 싶다. 신분증을 주고받으며 거래할 경우 막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습니다.

SNS에 한양대 축제 학생증 양도 거래글이 올라왔다. 트위터 캡처

SNS에 한양대 축제 학생증 양도 거래글이 올라왔다. 트위터 캡처

익명을 요청한 총학생회 관계자는 “총학생회 회원이 재·휴학생이라 혜택을 주기 위해 재학생존을 만든 것”이라며 “교환학생, 졸업생 등 항의가 있었고 그 마음은 공감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학교의 총학생회 관계자는 “3년간 축제를 못 열다 보니 축제를 못 즐기고 졸업하는 이들도 있는데, 외부인을 받는 건 재학생을 위한 축제가 아닌 것 같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27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입실렌티'에서 학생들이 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강민지 인턴

27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입실렌티'에서 학생들이 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강민지 인턴

‘대학 축제=동네 축제’는 옛말?

19학번 이민지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은 “과거 대학이 지역에 환원하는 역할을 했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학생들도 학교 공간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가 낸 등록금으로 축제를 하는데 왜 공간을 내어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고려대 축제 부스에 놀러 온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라서 좋다”고 했고, 한국외대를 찾은 지역 주민 김태윤(37·남)씨는 “차별하는 건 느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재학생존 이슈에 대해 그는 “현장 통제 인력에 한계가 있어, 외부인과 재학생을 구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2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 축제 부스에서 학생들이 게임 이벤트를 진행하고, 음식 판매를 하고 있다. 함민정 기자

2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 축제 부스에서 학생들이 게임 이벤트를 진행하고, 음식 판매를 하고 있다. 함민정 기자

올해 축제 기사에서 “연예인 축제로 변질된 게 안타깝다” “등록금 아깝다”는 댓글이 가장 많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선 “연예인 공연이 좋다고 생각한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앞으로 여러 고민이 이어지겠죠. 어쨌든 올해의 대학 축제가 지난 2년의 아쉬움과 갑갑함을 털어내는 자리였길 바라고, 다시는 축제가 멈추지 않길 소망합니다. 코로나 학번 후배들이 청춘을 만끽하는 모습에 13학번 할미 기자는 몸도 마음도 회춘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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