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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성과, 여성 장관 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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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한국 성차별이 그렇게 심각해?”

한·미 정상회담과 공동 기자회견이 열린 다음 날 백악관 동행 취재단 소속 기자가 내게 물었다. 기자회견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남성 장관이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 내각의 성비 불균형을 지적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질문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한국 언론과 국민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받아들였느냐고 묻길래 “진보는 물론 보수 성향 언론도 수없이 지적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고 설명해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첫 한ㆍ미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첫 한ㆍ미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장관 인선이 남성들로 채워졌고,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으며, 여성의 대표성과 성 평등 수준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공동 기자회견은 전 세계로 실시간 중계됐다. 백악관 기자들 사이에선 질문은 좋았는데 답변이 실망스러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윤 대통령이 “각 직역에서 여성의 공정한 기회가 더 적극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장관)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질 못했다”고 한 말이 변명처럼 들렸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한국 경제력과 세계로 뻗어 나가는 소프트 파워로 미뤄볼 때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짐작한 것 같았다.

정작 놀라운 건 기자회견 이후 윤 대통령의 태도 변화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면서 여성에게 기회를 주겠다더니 4명의 장·차관급 추가 인선에 전원 여성을 발탁했다. 장관급 직을 맡을 준비된 여성이 부족해 기용하지 못했다는 기자회견 답변에서 180도 달라졌다. 닷새만이다. 국내 언론 지적과 여론에는 꿈쩍 않던 대통령이 외신 지적에 즉각 입장을 바꾼 모양새가 됐다. 윤 대통령의 외교 데뷔 무대였던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받은 성과가 여성 장관 추가 지명으로 인한 장관 성비 불균형 개선이 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렇게라도 대통령 시야가 넓어지면 좋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결론에 이른 과정을 짚어볼 필요는 있다. 외신이 한국을 보는 시각이나 평가에만 유독 민감하고, 국내 여론은 등한시하는 태도는 구시대적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 후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미국의 소리(VOA)와, 취임 후 처음으로 CNN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 국내 언론과는 아직 한 번도 마주 앉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 주요국 정상이 당선이나 취임 후 자국 매체를 배제하고 외신부터 인터뷰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의 위상에 맞게 외교정책을 강화해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출범했다. 그럴 수 있는 힘은 밖이 아닌, 안으로부터 나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