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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소리 없는 아우성, 소리 있는 메마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사계절의 무쌍한 변화를 겪어야 온전히 한 해가 지나가는 땅에서 벌써 꽤 살아와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어제와 오늘의 온도 차가 조금만 나도 어깨가 움츠러듭니다. 그래도 완연히 봄이 채워진 볕 좋은 5월에는 게으르기만 한 저도 방안에만 있기 미안해집니다. 겨우내 타지 않던 자전거를 꺼내 바퀴에 공기를 채우고 탄천변 도로를 따라 동네 마실을 나섭니다. 바람과 물을 머금은 풀잎 냄새로 콧속을 채우며 힘차게 페달을 차고 다다른 길의 끝자락엔 휴일의 한적한 관공서 건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분 좋은 땀을 흘리고 목을 축이러 들른 카페에서도 한껏 햇볕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 자리를 고릅니다.

휴일의 도로변은 한가로워 보였지만 자동차 엔진 소리는 모처럼의 휴식을 방해합니다. 먼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권과 누구의 시선으로부터도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 생활의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적막함은 밀집된 도시에 살면 좀처럼 누리기 어려운 특권입니다. TV에 나오는 두꺼운 이중창 광고에서 시연되는 단열과 방음의 혜택은 5월 풀숲의 싱그러운 공기와 양립할 순 없습니다.

가로수 사이마다 펼쳐진 현수막
AI소리로 나오는 행상의 스피커
우리가 원하는 건 정보보다 진심

자장면과 짬뽕 중 어떤 것을 고를까 한참 동안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짬짜면처럼 선택의 고통을 줄여주는 선물 하나가 있습니다. 작업하기 좋은 카페는 주말엔 나들이를 즐기는 분들의 반가운 환담으로 평일의 한가로움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이럴 때 군중 속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입니다. 혼자 있으면 외롭지만 함께 있으면 누군가의 작은 기척에도 신경이 쓰입니다. 이때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비눗방울 방호막처럼 나를 감싸, 공유의 공간과 독립된 사고의 효율적인 동거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주말과 평일의 차이를 상쇄해주는 소음제거의 놀라운 기술을 만들어준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도로변 시끄러운 차의 소음을 제거하기 위해 이어폰으로 무장한 내게 더 큰 목소리로 다가온 것이 있었습니다. 관공서 앞 어지럽게 가로수 사이마다 펼쳐진 현수막이었습니다. 핏빛 물감으로 거친 손글씨로 쓴 저마다의 사연들은 누군가의 절절한 심정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다급해 보이는 글씨체와 선명한 색상의 문자들은 이어폰 속 달콤한 음악들로 채워진 나의 귀에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날카롭게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언어로 전달되는 정보는 채 오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합니다. 만나서 이야기하더라도 음성뿐 아니라 상대의 표정과 몸짓, 눈빛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더욱 크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문장 속 단어가 아니라 그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절실한 감각이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친구들 사이의 오해로 억울한 아이가 한마디도 못 하고 흘리는 구슬 같은 눈물이, 거대한 군중 앞에 선 순수한 행동가가 자기 뜻을 펼치기 전 숨을 가다듬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몇초 간의 정적이 달변의 방송 진행자보다 훨씬 더 큰 울림을 전함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어지러운 현수막을 바라보며 먹먹한 마음에 이어폰을 빼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 과일과 푸성귀를 판매하는 트럭이 도로변에 정차했습니다. 여기저기 이동하는 행상은 으레 자신이 왔음을 차에 달린 스피커로 알리기 마련인데 오늘은 그 소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싱싱한 토마토가 왔습니다”라는 문장은 예전과 같았지만 그 발음과 표현이 전문 방송인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아나운서와 같은 음성으로 재생하고 있었습니다. 똑똑하고 명료하게 전달하는 문장은 더 알아듣기 쉬웠지만 왠지 하나씩 싱싱한 채소를 골라 정성껏 권하는 상인의 살가운 마음은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겨울밤 출출할 때 골목을 채우던 “찹쌀~떡, 메밀~묵”의 반가운 소리에는 메뉴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단순한 메시지라도 수천 번 넘게 연습하고, 수만 번 이상 목청껏 외치던 파는 이의 소박한 마음을 담고 있었습니다. 말하는 단어를 모두 또렷이 알아듣지 못해도, 표현의 솜씨가 서툴고 부족해도 결국 전달되는 것은 정보를 넘어 따뜻한 그의 마음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낸 적확하고 예쁜 발음보다 거칠고 순박한 상인의 목소리가 그리운 것은 저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라 믿는, 상쾌하지만 조금은 서글픈 주말 아침입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