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586 용퇴"에 野 발칵…친문은 "이재명 면피용" 의심

중앙일보

입력 2022.05.25 15:46

업데이트 2022.05.25 20:28

“586의 사명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이 땅에 정착시키는 거였다. 그 역할을 거의 완수했다.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  
1996년생인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25일 선거대책위원회 공개발언에서 다시 ‘586 용퇴론’을 꺼냈다.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과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민석ㆍ조승래ㆍ김성환 등 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즐비한 자리였다. 박 위원장은 “2022년의 대한민국 정치는 586 정치인들이 상상도 못했던 격차,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게 목표이고 2030 청년들이 그 최대 피해자이자 해결의 주체”라며 “586 세대의 남은 역할은 2030 청년들이 이런 이슈를 해결하고 더 젊은 민주당을 만들 수 있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균형과 민생안정을 위한 선대위 합동회의에서 '586용퇴론'을 주장하자 윤호중 위원장의 표정이 굳었다. 김성룡 기자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균형과 민생안정을 위한 선대위 합동회의에서 '586용퇴론'을 주장하자 윤호중 위원장의 표정이 굳었다. 김성룡 기자

전날 “백번이고 천번이고 더 사과드린다”는 대국민 호소문 발표 이후 기자들과 만나 “586 세대 용퇴와 관련해 더 젊은 민주당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지금의 기득권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우리 민주당이 반성과 쇄신 모습 보여드릴 수 있을지 논의하겠다”고 말한 것에서 한걸음 더 나간 것이다. 다른 지도부 구성원들이 “개인 의견”(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금시초문”(박홍근 원내대표) 등 전날 발언의 파장을 잠재우려들자 박 위원장이 한번 더 치받은 모양새다.

이날 비공개로 전환된 이후 회의장 밖으로 고성이 새어나왔다. 복수에 참석자에 따르면, 윤호중 위원장은 “비대위 회의 안 해”“이게 지도부냐”고 격분했고, 다른 참석자들에게서도 “지도부와 상의하고 공개 발언하라”(전해철 의원), “여기가 개인으로 있는 자리가 아니지 않느냐”(박홍근 원내대표)는 등 불쾌감 섞인 반응이 나왔다.

그러자 박 위원장도 “봉하 다녀와서 느낀 거 없느냐, 노무현 정신 어디갔냐”“저를 왜 뽑아서 여기다 앉혀 놓으셨냐”고 맞섰다고 한다. 박 위원장은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지도부 내에서 협의된 내용도 물론 중요하지만 뭐가 맞는지에 대해선 윤 위원장도 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선 “어느 당의 대표가 자신의 기자회견문을 당내 합의를 거쳐 작성하는지 모르겠다”며 “지엽적인 문제로 트집잡을 것이 아니라 혁신의 비전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책임 회피 시동” VS “개인 족적 위한 것”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과 박지현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오전 인천 계양역 광장에서 열린 인천 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에서 만났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과 박지현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오전 인천 계양역 광장에서 열린 인천 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에서 만났다. [국회사진기자단]

박 위원장의 ‘586 용퇴론’ 드라이브에 대해 지도부 내부에선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다수다. 한 비대위원은 “지난 23일 봉하마을에서 김민석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선거 진행 상황을 비대위원들과 공유하는 자리에서 박 위원장이 반성과 사과를 주장했지만 586 용퇴론을 언급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김민석 본부장도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지도부 안에서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본인이 평소 생각한 걸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범친문그룹에선 박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노골적 불쾌감을 표출했다. 이 그룹에 속한 재선 의원은 “지방선거는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과 이재명 상임고문의 계양을 출마로 망가졌다”며 “이 고문이 추천한 박 위원장이 나서 선거 패배시 책임론의 물꼬를 미리 돌려놓으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당직자는 “8월 전당대회는 이재명계와 친문+86그룹의 사생결단식의 승부가 될 것”이라며 “의도가 어찌됐든 박 위원장이 선거국면이라 숨 죽어 있는 계파갈등을 조기에 점화시킨 셈”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 위원장의 ‘마이웨이’라는 해석도 만만찮다. 이 고문과 가까운 재선 의원은 “지금 이 고문이 박 위원장에게 그런 주문을 할 여력이나 어디 있겠느냐”며 “그냥 개인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계파색이 엷은 수도권 재선 의원도 “이 고문이 박 위원장을 발탁하긴 했지만 박 위원장은 누구 주문대로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다”라며 “지방선거 국면에서 바른말과 쓴소리로 족적을 남겨야 정치적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본인 욕심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팬덤 개딸과 척진 박지현…국힘은 “콩가루 집안” 조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이 지난 20일 인천광역시 계양구 귤현동 일대를 돌며 유세도중 여성 지지자의 사진촬영 요청에 응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이 지난 20일 인천광역시 계양구 귤현동 일대를 돌며 유세도중 여성 지지자의 사진촬영 요청에 응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고문과 박 위원장이 공유했던 정치적 기반이 틀어지고 있다는 점도 ‘마이웨이’론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이 고문의 팬덤을 형성한 열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개이모’그룹은 한때 박 위원장을 “불꽃대장”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최근엔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까지 열었다. 당원게시판 등에는 “박지현이 김건희보다 더 싫다”는 등의 독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검수완박 국면에서 열린 당내 회의에서 부적절한 성적 표현으로 문제가 된 최강욱 의원에 대해 박 위원장이 징계를 요청한 게 화근이었다. 박 위원장은 이날도 “비대위의 징계권한을 발동해서라도 (지방선거 전에) 최 의원에 대한 징계절차를 밟겠다”며 “온정주의와 결별하고 내로남불의 오명 벗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고문은 논란과 거리를 두고 있다. 박 위원장이 “민주당을 팬덤 정당이 아닌 대중 정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24일에도 이 고문은 트위터에 지지자의 팬아트를 공유하며 “우리 개딸님의 애정이 담~뿍 담겨서겠지요.정말 고맙잔아”라고 적었다. 박 위원장의 호소에 대해선 “민주당의 반성과 쇄신이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그 밖의 확대해석은 경계한다”는 캠프 차원의 메시지만 냈다. 이 고문의 측근 인사는 “이 고문도 굉장히 난감해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자중지란 양상에 국민의힘 인사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조롱을 쏟아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대선 직전에 2030여성 표 좀 얻어보려는 심산으로 박 위원장을 영입했다”며 “그때는 영웅 대접을 하더니 지금은 토사구팽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대출 중앙선대위 메시지본부장은 “‘친문 반문’, ‘친명 반명’ 하더니 ‘개딸 반개딸’ ‘친현 반현’으로도 쪼개지는 형국”이라며 “콩가루 집안 같다”고 적었다. 김용태 최고위원도 “민주당 스스로 무엇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는지 모르니, 어제 박지현 비대위원장의 읍소를 두고도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지도부 회의가 아사리판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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