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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3배까지 오른 신재생 손보기…한전 적자 막기엔 역부족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한국전력이 발전사에 전력을 구매하는 비용까지 제한하는 ‘극약 처방’을 꺼낸 이유는 그만큼 한전 재정 상황이 심각해서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한전 적자 폭이 30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문제는 전기요금 인상이나 재정지원으로 한전 적자를 모두 감당하기엔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번 조치는 별도 외부 지원 없이, 내부 정산 구조 변경을 통해 재무 부담을 일부라도 줄이겠다는 ‘고육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과도하게 이윤을 보장해줬다고 비판을 받은 신재생에너지와 일부 민간발전사 정산 단가가 주로 제한될 것으로 예상한다.

신재생·민간 발전사 정조준

전남 신안군 안좌면 구대리에 태양광 발전 집적화 시설이 설치돼 있다. 중앙포토

전남 신안군 안좌면 구대리에 태양광 발전 집적화 시설이 설치돼 있다. 중앙포토

24일 산업통상자원부가 행정 예고한 ‘전력거래가격 상한제’ 적용 대상이 주로 신재생에너지와 일부 민간 발전사 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는 독특한 현행 정산 구조 때문이다. 한전은 각 발전사에 전력을 구매할 때 ‘전력시장가격(SMP)’을 기준으로 가격을 정한다. SMP는 전력시장에서 거래되는 전력 중 연료비가 가장 비싼 발전원의 단가다. 예를 들어 원자력ㆍ석탄ㆍLNG(천연액화가스) 발전소에서 동시에 전력을 사면, 가장 비싼 LNG 발전소 단가가 SMP가 된다.

SMP가 정산 가격 기준이 되지만 연료비가 저렴한 발전원은 별도의 조정계수를 적용해 단가를 일부 깎는다. 대표적인 것이 연료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자력 발전이다. 문제는 신재생에너지는 연료비가 들지 않지만, SMP에다가 일종의 보조금 격인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newable Energy Certificate) 판매 수익까지 함께 보전해 주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올라서 SMP 가격이 치솟으면, 연료비가 들지 않는 신재생에너지 정상 단가까지 오른다.

원자력 3배까지 벌어진 신재생

2월 발전원별 전력 구입단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월 발전원별 전력 구입단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실제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한전에 입수한 ‘발전원별 전력 구매 단가’에 따르면 지난 2월 신재생에너지(대수력 제외) 구매 단가는 킬로와트시당(㎾h) 202.78원이었다. 같은 기간 원자력(67.99원/㎾h) 구매 단가의 약 297% 수준이다.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평균 구매 단가(103.48원/㎾h)는 원자력(56.28원/㎾h)과 비교해 약 183.8%에 불과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LNG 가격이 치솟은 지난 2월에는 3배 수준인 297%까지 벌어졌다. 이 기간 신재생에너지 평균 정산 단가는 유연탄(154.32원/㎾h) 보다 높았고, LNG(248.05원/㎾h) 보다는 낮았지만 비슷한 수준까지 올랐다.

정산 단가가 오르면서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구매하는 비용도 늘었다. 한전이 지난 2월 신재생에너지를 사들이는데 쓴 총 정산 비용은 7472억원으로 원자력(1조3307억원)의 절반이 넘었다. 하지만 이 기간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의 구매량(3585GWh)은 원자력(1만3307GWh)의 4분의 1 수준(26.9%)에 불과했다. 적은 전력을 그만큼 비싼 돈을 주고 샀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SMP 상한을 두면, 조정계수 없이 SMP를 그대로 수익으로 받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자 이윤이 줄 수밖에 없다. 또 장기계약 등을 통해 미리 연료를 싸게 구매한 일부 민간 발전사업자 이익도 제한될 수 있다.

신재생·민간 발전사 반발…“적자 근본책 아냐”

다만 에너지 업계에서는 정부 이번 조치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기존 에너지 정책 방향에 역행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재생에너지는 연료비가 들진 않지만, 초기 사업 투자 비용이 많아 고정적인 이윤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사업 참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SMP가 급격히 떨어졌던 2020년과 지난해에는 구제책을 마련해 주지 않아놓고, 비용 부담이 커진 지금에서야 가격을 제한하는 게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같은 이유로 민간 발전 사업자도 이윤을 과도하게 침해받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번 정부 조치가 한전 적자를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전력거래가격 상한제를 시행하는 조건 자체가 까다롭다. 정부 개정 고시에 따르면 지금 상황에서 상한제를 시행하려면 이번 달 SMP가 ㎾h 당 155.80이 넘어야 하는데, 올해 2~4월을 빼고 지난 10년간 월간 SMP 평균이 이 가격을 넘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설사 시행을 해도, 발전사 이윤을 줄여 한전의 재무 부담을 낮추는 데 그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결국 전기요금을 연료비 원가 수준 정도까지 보전해 주지 않으면 한전 적자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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