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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삼성·현대차 투자 유치하며 ‘노조 협력’ 꺼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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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20~22일) 기간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미국 노조와의 협력을 당부했다.

방한 후 첫 일정이었던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이나 다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해 우리의 가장 숙련되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미국 노조원들과 파트너십을 일구기 바란다”고 말했다.

22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공동연설에서도 “미국 노조 조합원들과 협력함으로써 큰 혜택을 볼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투자를 유치하려는 국가는 노조 리스크를 덜어주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언급하지 않는 게 관례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노조를 투자유치 전선의 전면에 내세웠다. 글로벌 통상과 기술 동맹을 꾀하려는 방한 목적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노조를 끌어안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며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국 내 정치적 실리를 챙기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해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노조 친화적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지난해 미국 내 전기자동차 업계 관계자를 초청하면서 테슬라를 제외하기도 했다. 노조가 없어서다. 이런 기조가 해외 순방을 통한 경제외교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바이든 정부는 법으로 노조 우대 정책을 집행하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지난해 낸 미국 재건법안이 그것이다. 노조가 있는 전기차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현대차에 “큰 혜택”이라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외국계 완성차 업체와 테슬라 등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하원에서 통과된 뒤 상원의 반대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바이든 정부는 늦어도 오는 7월까지 타결을 목표로 협상 중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명예교수는 “과거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투쟁적인 노조였지만, 지금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파트너십이 형성돼 있고, 생산성을 높이는데 노조가 상당히 협력적”이라고 말했다. 인력 배치전환이나 해외 공장 설립 등을 파업으로 저지하려 드는 한국 노조와 다르다는 얘기다. 미국에는 또 노조의 투명성을 강제하는 ‘랜드럼 그리핀법’ 등 노조의 책임을 강조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기업은 여전히 노조를 경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 내 외국계 자동차 회사는 UAW 세력권 밖인 선 벨트(Sun Belt, 일조량이 많은 미국 남부)에 집중돼 있다. 근로자의 노조 가입을 강제할 수 없게 하는 ‘일할 권리(right to work)’라는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벤츠·BMW·기아·혼다 등의 공장엔 노조가 없다.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도 마찬가지다. 폴크스바겐에선 2014년 근로자 투표로 노조 설립이 부결되기도 했다. 따라서 바이든의 노조와 관련된 당부는 권고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편으론 노조를 활용한 중산층 늘리기와 사회안전망 확충 의도가 바이든 행정부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특히 미국 민주당 정부는 단체협약을 통한 사회복지망 구축과 중산층 형성에 노조가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여겨 국가가 예산을 퍼붓기보다 미국 노조가 가진 비즈니스 유니온 체계에 기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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