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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보드에 받친 차 쾌유 빕니다"..1년만에 10만건 '킥라니 경보'

중앙일보

입력

4년 차 전동킥보드 이용자인 대학생 심모(24)씨는 차도 위를 달리다 자동차 운전자에게 욕설을 듣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심씨는 자전거 도로가 아닌 경우엔 가장 오른쪽 차도를 이용한다. 그런데 심씨에게 “도로에서 나가라”며 위협을 가하는 운전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일부 몰지각한 킥보드 이용자 사진이 자주 올라와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킥보드 이용자가 늘면서 도로 상에서 자동차 운전자와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킥보드 이용자를 차도에 뛰어드는 고라니에 빗대 ‘킥라니’라는 조롱성 표현으로 부르기도 한다. 관련 사고도 증가하는 추세여서 예방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거리에서 전동킥보드 이용자가 안전모를 쓰지 않고 주행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거리에서 전동킥보드 이용자가 안전모를 쓰지 않고 주행을 하고 있다. 뉴스1

킥보드 사망 사고에 싸늘한 반응

지난 12일 새벽 2시쯤 서울 강남구 포스코사거리에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가던 20대 남성 2명이 차도에 진입하다 차에 치여 숨졌다. 이들은 안전모를 쓰지 않은 채 1인용 킥보드에 동승하고 있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온라인 등에선 사고로 사망한 킥보드 이용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사고 당시 상황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 게시물에는 “킥보드에 치인 운전자와 자동차의 쾌유를 빈다”는 반응이 올라오기도 했다.

일부 차량 운전자들 사이에선 인도와 차도를 빠르게 오가는 킥보드가 도로 위의 ‘혐오종(種)’처럼 인식된다. 한 택시 운전사는 “보행자 신호가 끝나갈 때쯤 갑자기 횡단보도로 튀어나오는 킥보드 때문에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며 “운전면허를 따고 몇 년 이상 지난 사람한테만 킥보드를 빌려주든지 규제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 남성 2명이 차에 치여 사망했다. JTBC 뉴스룸 캡처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 남성 2명이 차에 치여 사망했다. JTBC 뉴스룸 캡처

안전모·면허 단속 1년 만에 10만 건

킥보드 관련 사고가 늘어난 건 최근 공유 킥보드 시장이 급속하게 활성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퍼스널모빌리티산업협의회에 따르면 2019년 12월 전국에 1만 8130대였던 공유 킥보드는 지난해 3월 기준 9만 1028대로 5배 이상 증가했다. 킥보드 교통사고 건수는 2019년 447건에서 지난해 1735건으로 4배 가까이 늘어났다.

관련 사고가 급증하자 경찰은 지난해 5월부터 안전모를 쓰지 않았거나 면허를 소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킥보드를 운전할 경우 범칙금을 물리기 시작했다. 법 시행 이후 지난달까지 1년간 단속된 건수만 약 10만 건에 달한다. 그러나 단속만으로는 사고를 줄이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경찰도 토로한다. 서울의 한 교통경찰은 “킥보드는 인도와 차도를 넘나드는 경우가 많아 차량처럼 정지시키고 단속하기가 어렵다”며 “무리하게 단속하다 다른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개인형 이동장치 운전자의 안전 강화를 위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난해 6월 서울 시내에서 경찰이 헬멧을 미착용한 공유형 전동 킥보드 이용자를 단속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개인형 이동장치 운전자의 안전 강화를 위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난해 6월 서울 시내에서 경찰이 헬멧을 미착용한 공유형 전동 킥보드 이용자를 단속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킥보드 이용자·차량 운전자 인식 바뀌어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킥보드 이용자들의 안전운전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킥보드 이용자 중 저연령층이 많고, 이동수단보다는 잠깐 빌려 쓰는 놀이기구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법이나 제도를 강화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차량 운전자들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킥보드는 ‘자전거 등’으로 분류돼 자전거 전용도로를 우선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자전거 도로가 없으면 차도 가장 오른쪽으로 주행하는 게 허용된다. 박 교수는 “서울 시내에 자전거 도로가 없거나 관리가 잘 안 되는 곳이 많아 불가피하게 차도로 다니는 킥보드도 많다”며 “이들이 교통약자라는 인식을 갖고 차량 운전자들이 방어운전을 습관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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