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줌마 집에 가면 안돼요?" 밤길 헤매던 아이가 내뱉은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동학대 [pixabay]

아동학대 [pixabay]

“길을 가고 있는데 모르는 아이가 와서 우리 집에 가도 되는지를 묻네요?”

지난 2월 23일 밤 10시쯤 서울 도봉경찰서 112상황실로 아동 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길 가던 행인을 붙잡은 A(12)양이 “아줌마 집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윤정 서울 도봉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위가 A양을 처음 만난 날이다.

신고 다음 날 도봉서 APO(학대전담경찰관)팀이 A양이 살고 있는 다가구 주택을 찾았다. 17평 규모의 투룸 내부는 정리 정돈이 잘 돼 있었다. 냉장고에는 최근에 새로 만든 반찬이 들어있었다. 별다른 학대 정황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APO팀이 다녀간 후로도 A양에 대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친구 집에서 놀다가 밤늦은 시간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자 이를 수상하게 여긴 친구 부모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아빠가 집에 안 와요” 경찰에 실종 신고까지 

APO팀에 따르면 A양은 편부모 가정의 자녀였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밥을 차려 놓고 출근하는 등 A양을 챙겼지만 아이는 홀로 있는 시간에 외로움을 느꼈다. 이 경위는 “아버지가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기 때문에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이는 혼자 있는 것에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외로워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회식 등으로 귀가가 늦어지자 A양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경우도 있었다.

월 30만원 장학금 지원...“금쪽이 지켜보고 있다” 신호 

이 경위는 A양을 이대로 두면 방임에 의한 학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지역아동센터 등에 도움을 구했다. A양은 또래보다 학습능력이 뒤처지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구청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다. 구청에서 월 5만원의 간식비도 부담하기로 했다. 도봉서도 A양에게 매달 3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A양 아버지에게 “경찰이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를 주기 위해서다. 이 경위는 “아직도 방임이 학대가 될 수 있다고 잘 생각하지 않는다”며 “경찰이 적극적으로 상황에 개입할수록 아동 학대 예방에도 효과적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구청 연계로 가정폭력·아동학대 예방

A양은 도봉서 APO들 사이에서 ‘금쪽이’로 불린다. 프로젝트명인 ‘금쪽 케어팀’이 선정한 ‘금쪽 1호’다. 도봉서 관내 APO들은 매주 모여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범죄 피해자들을 도울 방안을 고민한다. 이 회의에서 모니터링할 대상이 선정되면 이들을 도와줄 기관들을 찾아 협력하는 식이다. ‘금쪽 4호’까지 나왔다. 이 경위는 “복지기관 입장에서는 돕고 싶어도 도울 사람들을 찾을 경로가 많지 않은데 경찰에서는 범죄 피해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소개해줄 수 있어 상호보완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도봉서 주관으로 도봉구청과 힘을 합쳐 ‘꽃길만’ 가족지원 프로그램이 출범했다. 도봉서 신고 사건의 5분의 1은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등 가족 문제 관련이라고 한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A양 사건에 대해 “아동학대 여부를 판단할 때 위험 상황에서 아동이 자기 보호 능력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절대적 연령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며 “부모가 여건이 안된다면 지역사회의 돌봄 기관과 연계 등을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