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한·미 정상회담, 북·중도 배려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스웨덴과 핀란드가 지난 18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두 나라는 70여년간 군사적 비동맹주의 정책에 따라 중립 노선을 지키며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협력 관계만 유지해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나토 가입을 결정했다. 나토 가입이 최종 승인되려면 두 나라의 나토 가입에 부정적인 터키를 포함해 나토 회원 30개국이 모두 찬성해야 해 실제 가입까지는 변수가 많다.

반면 영세중립국 오스트리아의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외교장관은 지난 16일 유럽연합(EU) 외교장관 회의에서 “우리의 지리적 상황과 역사는 전혀 다르다”며 “오스트리아는 나토에 들어갈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스웨덴·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신청한 반면, 오스트리아가 이를 하지 않는 건 모두 국익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스웨덴·핀란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호전성에 안보 불안을 느끼지만, 러시아와 멀리 떨어진 데다 사이가 좋은 편인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와 관계가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정상회담 메시지에 북·중도 촉각
미·중 모두와 원만한 관계 이끄는
국익 최우선 외교안보정책 절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지구촌 국가들은 이처럼 국익을 고려해 외교안보정책을 세운다. 국익을 무시한 외교안보정책은 국력을 갉아먹고 국가를 위태롭게 만든다. 청나라의 부상에 무지했던 조선왕조의 친명 사대 정책은 정묘호란·병자호란을 불러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다.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구한말의 쇄국정책은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시켰다.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미·중 전략경쟁 시대를 맞아 안보와 경제 번영을 동시에 이루려면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안보정책이 절실하다. 과거 한국의 외교안보정책은 미국에 편승하는 전략으로 충분했으나 지금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미·중 전략경쟁으로 인해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됐다.

한국의 외교안보정책은 한·미 동맹이 근간이다. 한·미 동맹은 북한의 위협을 억제했고 한국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거세고 중국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은 앞으로도 중요하다. 한·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 등의 가치를 공유한다. 한국의 커진 덩치에 맞게 한·미 동맹도 진화할 필요가 있다.

오는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동맹의 진화 문제는 중요하게 다뤄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회담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IPEF는 공급망 위기 국면에선 세계적 분업화가 약점이 될 수 있는 만큼 미국이 동맹국들과 핵심 산업 분야에서 ‘경제안보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취지여서 중국 견제 의도가 담겼다. 한국은 한·미 동맹 발전 차원에서 IPEF에 가입할 수 있으나 반도체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중국과의 교역을 단절하는 건 국익에 반한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남북 관계에서도 중요한 나라다. 그런 중국과 관계를 끊는다는 건 한국에 재앙이다. 결국 미국에 한국의 처지를 잘 설득해 미·중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한국으로선 최선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선 대북 대응 방안도 주요하게 논의될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하는 확장억제 정책의 강화가 시급하다. 북한의 심각한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지원책도 논의돼야 한다. 북한이 자존심을 내세워 한·미의 도움을 거절하고 있으나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노력은 지속할 필요가 있다. 남북은 통일 국가가 돼야 한다는 장기 목표 아래 인내심을 갖고 북한과의 대화 협력에 나설 필요가 있다. 보수 성향의 윤석열 행정부가 진보적 대북 정책을 펼친다면 진보·보수의 지지를 받는 힘 있는 정책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과 중국은 한·미 정상회담을 주시한다. 이 회담에서 어떤 메시지가 나오는가에 따라 북·중의 대응도 달라질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중도 보이지 않는 참여자라는 생각으로 두 국가를 배려하는 언행이 필요하다. 이념·진영을 내세워 외교안보정책을 정하면 지지자들만 환호할 뿐 국가는 그에 따른 후유증에 시달린다. 외교는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다. 국내 정치용 반일 정책으로 한·일 관계를 최악으로 만든 전임 행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북·중도 한반도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라는 걸 고려해 두 나라와도 장기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