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대북 방역 지원으로 신뢰 쌓아야... 백신보다 치료제 급해

중앙일보

입력 2022.05.19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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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북한 사회 코로나19 위기
 북한 내 코로나19 환자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속도로 폭증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돌발 변수가 될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북한에는 백신도 마스크도 없어 통일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올지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코로나 환자 폭증이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면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다.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이런 시나리오가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따져볼 일이지만 적어도 꽉 막힌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는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북한의 코로나는 얼마나 심각하며, 이로 인해 어떤 상황이 닥칠지, 우리 정부의 바람직한 대응책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봤다.

사흘 만에 확진자 20배나 늘기도
체제붕괴로 이어질 공산은 적어
낮은 치사율로 3만여 명 숨질 듯
조건 없는 지원으로 대화 재개를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국무위원장이 지난 14일 마스크를 쓴 채 중앙위원회 정치국 협의회를 주재하며 코로나19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뉴시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국무위원장이 지난 14일 마스크를 쓴 채 중앙위원회 정치국 협의회를 주재하며 코로나19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뉴시스

갈수록 심각한 북한 내 코로나
 북한 내 코로나는 표면상 수치만으로도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요 며칠 주춤해지긴 했지만 지난 12일 하루 1만8000여 명에 불과했던 유열자(확진자로 추정) 수가 15일에는 39만2000여 명으로 뛰었다. 3일 만에 20배 넘게 폭증한 셈이다. 17일까지 희생된 북한 주민은 모두 62명. 하지만 감염 후 사망까지 이어지는 기간이 2~4주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희생자 수도 머잖아 폭발적으로 늘 게 확실하다.
 특히 북한은 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와 함께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단 두 나라 중 하나다. 백신을 맞으면 감염 피해가 확연히 적은 반면 미접종자는 중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북한의 의료시설은 형편없는 데다 치료제는 물론 진단 세트와 마스크마저 턱없이 부족한 터라 확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많은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을 통해 해열제 등 상비약을 구해왔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코로나 확산을 우려해 장마당을 금지하고 있다. 북한 주민으로서는 기본적인 상비약도 구할 길이 막힌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북한 체제 붕괴론이 나오는 또 다른 이유다.

 코로나19가 북한을 강타한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마스크 두 장을 겹쳐 쓴 채 평양 시내 약국을 시찰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코로나19가 북한을 강타한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마스크 두 장을 겹쳐 쓴 채 평양 시내 약국을 시찰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체제 붕괴까진 안 갈 듯
하지만 실증적 데이터를 적용해 북한 상황을 예측해 보면 북한 붕괴론은 너무 나간 것임을 알 수 있다. 의료 상황이 열악한 북한이지만 인명 피해가 체제를 전복시킬 만큼 심각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홍콩 내 미접종자의 치사율 데이터를 적용해 볼 때 북한 내 사망자 수는 3만4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이는 홍콩의 의료시설이 북한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따라서 북한 내 사망자는 크게 늘 수 있다. 오 교수는 또 북한 주민의 30%가 감염되면 42만 명, 50%가 걸리면 70만 명이 입원해야 한다고 봤다.
  그럼에도 이 정도로 북한 체제가 무너지긴 힘들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피해가 상대적으로 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선 100만 명 넘게 숨졌으며,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 사망자도 10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들 나라는 주로 치사율이 높은 초기 코로나에 당했기 때문에 희생이 컸다.  초기 코로나 치사율은 7.3%나 됐다. 반면 지금 북한에서 번지고 있는 오미크론 변종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증화율 및 치사율이 낮아 피해가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 세계적인 치사율은 0.25%에 불과하다. 초기에 비해 30분의 1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또 북한은 지독한 통제사회의 특성으로 막대한 인적 피해가 나도 견뎌내는 체제다. 실제로 최악의 식량난으로 최소 100만 명, 최대 300만 명이 숨졌다는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때에도 체제가 유지됐다. 이런 북한 사회가 10~20만 명이 희생된다고 무너질 가능성은 적다.

화이저, 모더나 같은 mRNA 백신은 보관을 위해 초저온 냉동고가 필요하나 북한에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대전 중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용 초저온 냉동고를 정리하는 모습. 사진=김성태 프리랜서

화이저, 모더나 같은 mRNA 백신은 보관을 위해 초저온 냉동고가 필요하나 북한에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대전 중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용 초저온 냉동고를 정리하는 모습. 사진=김성태 프리랜서

때 놓친 백신 지원

물론 북한 사회의 고통이 심각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북한 역시 중국식 '제로 감염 정책'을 채택해온 터라 상하이 등지에서 목격되고 있는 무지막지한 봉쇄 및 인적 이동 금지가 지속할 게 뻔하다. 이럴 경우 한참 이뤄져야 할 모내기조차 불가능해져 코로나 피해는 물론 향후 식량난까지 덮칠 공산이 크다.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북 방역 지원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뜯어보면 방역 지원도 여러 방면으로 추진될 수 있다. 크게 보면 진단키트, 백신, 예방 및 치료 물품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현 단계에서 가장 시급한 건 팍스로비드 등 치료제 및 유전자 증폭기 같은 예방 물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백신 공급이 유용할 거라는 주장도 있으나 시간과 여건 등을 고려하면 너무 늦었다.
 무엇보다 협상 및 배달 시간 등을 생각하면 백신이 북한에 도달할 때까지는 적어도 한 달은 족히 걸린다. 게다가 주사를 맞더라도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는 2주가 걸려 백신 공급은 큰 의미가 없게 된다. 또 백신 보관 및 전파에 필요한 냉장시설과 냉동차가 부족해 받아도 제대로 사용할지 의문이다. 화이자·모더나와 같은 mRNA 백신의 경우 영하 20~70도에 이르는 초저온 냉동시설이 있어야 하나 북한 내에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붐비는 북한 약국의 모습.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8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특별명령에 따라 조선인민군 군의부문(의료부문) 전투원이 약품 보장 전투에 돌입했다″고 보도하며 이 사진을 실었다. 사진=뉴스1

코로나19 확산으로 붐비는 북한 약국의 모습.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8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특별명령에 따라 조선인민군 군의부문(의료부문) 전투원이 약품 보장 전투에 돌입했다″고 보도하며 이 사진을 실었다. 사진=뉴스1

북한의 자존심 꺾지 말아야
 역설적이나 대역병은 평화를 부른다. 예로부터 전쟁 중인 나라들도 페스트·콜레라 등이 덮치면 어쩔 수 없이 휴전을 맺곤 했다. 괴질을 막는 게 전쟁보다 더 시급했다. 코로나 역시 평화의 사도 노릇을 했다. 2020년 코로나 발발 이후 17개 분쟁국에서 총성이 멈췄다. 북녘땅을 덮친 코로나도 어느 정도 이런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정권 역시 코로나 방역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온 체제 역량을 여기에 쏟아붓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에 방역 지원을 하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꼬리표가 달려있다. "북한이 원한다면"이란 조건이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도 16일 시정연설에서 "북한 당국이 호응한다면 코로나 백신을 포함한 의약품·의료기구·보건 인력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방침을 두고 많은 전문가는 조건 없이 돕는 것이 장기적으로 현명한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북한 당국의 호응"이란 조건은 김정은 체제의 명시적인 방역 지원 요청으로 읽힌다. 김정은 정권이 "치료제나 백신을 달라"고 해야 주겠다는 얘기 같다. 하지만 대북 협상 경험이 많은 전문가는 북한의 자존심을 꺾지 않으면서도 지원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하는 방식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북한 전달을 조건으로 금전적·물적 지원을 하면 큰 소리를 안 내고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꽉 막힌 대화 채널 열릴까 
물론 북한이 안 받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은 그간 811만명분에 달하는 국제사회의 백신 지원 제의를 거부해 왔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는 터라 물밑 협상을 통해 조용히 수용 의사를 확인하면 방역 지원도 이뤄질 공산이 있다.
 현재 남북 관계의 최대 과제 중 하나는 꽉 막힌 대화 채널을 다시 뚫는 일이다. 그래야 북한 비핵화든 남북 교류든 평화 추진이 가능하다. 코로나로 북한 체제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백신 공급을 비핵화와 연계하자는 이야기 역시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다. 차라리 인도적 차원에서 어려움에 부닥친 북한에 손길을 내밀어 소통과 교류의 물꼬를 트는 게 현명한 대처방안이다.
 게다가 과거 전염병에 신음하는 북한을 남쪽에서 지원한 사례는 꽤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든, 아니면 WHO 등을 통해서든 직간접적으로 10여 차례 도운 바 있다. 특히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렸던 2009년에는 167억원에다 50만명분의 타미플루 치료제를 제공한 전례가 있어 코로나 방역을 위한 백신과 치료제를 준다고 해서 이례적인 일이라고 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대화뿐 아니라 남북한 의료인 간 소통이 이뤄져야 하고 성사될 경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수많은 코로나 환자 치료를 통해 축적된 남측 노하우를 북한 의료진에게 나눠주면 큰 도움이 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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